[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시조카가 아기를 낳아 ‘알현’하러 갔다. 혼자 사나 했더니 마흔 넘어 결혼해 어렵사리 아기를 낳았으니 집안의 경사다. 둘째 시누 아들 딸이 척척 결혼하고 아기 낳아 도합 다섯 명이나 안겨줬으니 아기에 대한 어른들의 갈급함은 많이 해소되었으나 자기 자식만 하겠는가.약사 일 접고 부부가 손잡고 댄스를 배우네 중국어를 배우네 하며 즐겁게 지내는 것도 잠시, 칠십 줄에 접어들며 여기저기 잘 다치고 아프더니 급기야 병까지 얻어 우울이 감돌던 큰 시누 집이었다.일년에 한두 번이나 할까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제사를 지낸다 하면 제삿상을 차리는 수고만 떠올리지 집을 정기적으로 오픈하는 부담은 미처 생각들을 못한다. 나의 경우 두 번의 기제사까지 일 년에 네 번 제사를 지내는데 상차림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 몇 가지 조리하고 갖가지 과일로 드넓은 상을 채우는 식이어서 많이 힘들지는 않다. 가장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게 전이었는데 여러 가지 많이 부쳐 이집 저집 싸줘 봐야 먹지도 않고 냉장고에서 굴러 다닌다고들 하여 올해부터는 고기 생선 야채 세 가지만 상에 올릴 양만 딱 만들었다.사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나이 든다는 것은 전에 모르던 새로운 감각/통증을 나의 생활에 하나씩 등재하는 것일지 모른다. 아픈 이력은 상처로 몸에 등재되고 통증은 주기적으로 그 종류를 다채롭게 하면서 나의 생활에 한자리씩 차지한다. 여기 아프고 저기 쑤시고. 내 보기에 말짱한 엄마가 매일 늘어놓는 한탄을 지겨워한 벌인가, 나도 어느 새 여기 아프고 저기 쑤신다는 말을 달고 산다. 내 아이들은 귀담아 듣지도 않으니 지겨워하지도 않는 것이 그 중 다행.여간해선 감기도 안 걸리고 (보약 포함 일체의) 약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을 봤다.칸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영화. 태생에 의해 지정되는 가족이 아니지만 가족이랄 수도 있는 가족. 좋아서 모여 사는 것이기에 더 정겹고 더 진짜라고 강변하지는 않는 프로젝트 팀 같은 가족.아버지의 아버지의 전처, 그래서 할머니이기도 하고 할머니 아니기도 한 이와 살기를 선택한 스무살 남짓 여성이 있다. 아마도 공부나 예술 분야에서 잘나기를 끝없이 종용했을 중산층 부모에게서 숨쉬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해 달아났을 그녀. 이제 계층하강의 위험한 길로 담담히 들어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훤한 이마에 해맑은 미소. 아름답기에 슬픈 영정.딴 놈들은 멀쩡히 잘 사는데, 하는 말은 그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엇따 비교해! 두 시간 줄 설 각오로 운동화를 신었다. 화요일인 24일 다녀온 사람들 말로 국회의원이건 뭐건 무조건 하나의 대열로 줄을 서야 하고 한 두어 시간 기다렸다고 하여. 이날 오후, 점심 먹으러 지나간 연세대 앞이 혼잡했다. 더위에 모든 것이 스톱한 듯 차량도 적었는데. 아 그가 있지. 그랬군.여름 초상이 많지. 몇 해 전 산 검정 블라우스가 자주 징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손님(customer) 받으려 열어 놓은 문으로 손님(guest)이 몰려왔다. 정확히는 불청객(guest uninvited).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문을 열어 놓은 ‘우리’가 누구이며 들어온 ‘그들’이 누구인가/ 누구로 볼 것인가에 달려 있다. 가게에 들어온 손님이라고 다 물건 팔아주는 것도 아니고 화장품 이것저것 발라보고 시식코너 거덜내고 공짜로 주는 샘플만 챙겨서 나가는 이도 많다. 영양가 없는 손님. 최악으로는 무전취식이 있다.그렇다고 가게 문 열고서 손님 가려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요즘 같아서야 기자들은 신났고 나 같은 B급 칼럼니스트는 고민이 다대하다. 북미 정상회담이니 월드컵이니 6.13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니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이니 해서 하나만도 빅 뉴스감인 것이 겹쳐서 일어나니 몸은 좀 고달파도 기자 할 맛 나겠다. 반면 칼럼을 쓰는 입장에선 워낙 픽션을 압도하는 하이퍼 리얼같은 리얼리티가 펼쳐지는 와중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글줄 쓰려니 시장스럽기 그지없다. 텔레비전과 함께 한 이틀, 뭐 이런 에세이를 써야 하나.싱가포르까지 날아가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미국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은폐된 홈리스 이야기이다. 홈리스면서 홈리스 아닌 것 같은 홈리스. 홑엄마가 여섯 살 정도 되는 딸을 데리고 싸구려 모텔에서 살며 일주일마다 따박따박 돌아오는 숙박비를 감당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이야기.그 집도 아닌 숙소란 곳은 하필이면 디즈니랜드 근처의, 가당치 않게 예쁜 연두색, 분홍색, 보라색으로 칠한 시멘트 건물 방 한 칸. 침대에선 벼룩이 나오고 침대 위 말고는 앉을 공간도 없는, 온갖 반짝이는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치장하여 집 흉내를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이건 뭐 응팔(응답하라 1988)의 아저씨 판이잖아?!나와 함께 사는 아저씨가 게거품 물고 칭송하는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휴가나온 ‘신삥 아저씨’, 아들과 함께 몰아봤다. 저녁 먹고 시작해 다음 날 아침 5시 반 정도까지 8편을 보고 잠깐 자고 일어나 12편까지 이어봤으니 갑자기 뭔 오덕질인지… “인간이 어찌 한 겹 뿐이겠”으며 드라마라는 예술작품이 유일무이의 제작의도만 있겠으며 그걸 본 감상이 어찌 한 가닥뿐이겠나. 나저씨를 둘러싼 저간의 논란은
[이코노뉴스 글·사진=김미영 칼럼니스트] 뉴질랜드 트레킹을 다녀왔다. 남섬의 밀포드 트렉을 중심으로, 간 김에 쿡 산도 좀 걷고 북섬으로 돌아가 거기서 제일 높은 산도 하루 오르는 것으로 구성된 패키지 상품으로.패키지라 하면 7일간 10개국 돌기 같은 살인적인 일정과 가이드 팁과 쇼핑 강요 등을 연상하지만 요즘은 꽤 깔끔하게 진행된다. 특히 도시 문화 관광이 아니라 자연을 즐기는 여행은 패키지가 안전하게 느껴진다. 뉴질랜드 남섬의 밀포드 트렉은 걷기 편한 길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곳이다. 각종 진균류 낙엽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서울대 미학과 학생회가 농활을 갔다. 고된 일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며칠 지난 뒤 주민과 학생은 술자리를 마련한다. 화기애애하게 술잔이 돌고, 한 노총각이 농활대 대장인 여학생의 벗은 발을 보고 말한다. 너는 발가락이 어쩜 그리 섹시하냐 하얗고 가지런한 것이. 그 학생은 뻗었던 발을 거둬들이는 걸로 의사표시를 했으나 그 남자는 못 알아듣는다. 돌이킬 수 없는 한마디. 내 한번 쪽쪽 빨아보고 잡게 생긴 발가락이다. 순간 좌중은 얼어붙고 술자리는 파토난다. 몇몇 여학생들이 사과를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영하 20도의 한데서 한 사람이 옷을 홀랑 벗고 서 있다. 시베리아보다 춥다는 칼바람의 지난 겨울을 통과한 우리로서는 그 추위가 어떨지, 살랑대는 봄바람이 우리 얄팍한 기억을 교란시키는 와중에도 몸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오싹 바들바들. 그 날씨에 바깥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그는 무엇인가? ①미치광이 ②변태(바바리맨의 진화형) ③동물보호단체회원(“no fur!”) ④선녀 ⑤생물학자 ⑥그 때 그 때 달라요“옷의 보호를 받지 않고 숲의 동물처럼 추위를 경험하고 싶다.” 이것이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지난 화요일(20일)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계주 경기를 보고 왔다. 열망과 돈과 운의 삼위일체. 열망이야 남보다 강렬했다 할 수는 없고 돈이야 항수이니 행운이야말로 그 ‘전설’이 된(신문기사 표현을 따르면) 경기를 현장에서 볼 수 있게 된 주 요인. 와우 우주의 기운이 도왔구나.평창 동계올림픽이야 한반도 긴장해소와 남북 단일팀 문제 등 정치적 차원으로 우선 다가와서인지 운동 경기 자체를 즐긴다는 생각은, 글쎄 그걸 보러 가기엔 너무 멀고 너무 춥고 고생스럽지 않아? 평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성산대교를 타려고 교통 정체 속에 묻혀 있다면 고개를 왼 편으로 돌려 반듯하게 서있는 차콜 그레이 건물을 찾아보자.마포중앙도서관이라는 것이 생겼다. 지난 해 공사 중일 때는 왕복 6~8차선 도로 앞이라 그런지 왜소해 보여, 아니 모처럼 짓는데 좀 크게 짓지 했는데 막상 완공되니 작지 않다. 초라한 마포도서관 아현 분관의 기억이 여전한데 저 위풍당당한 마포중앙도서관이라니. 작년 12월 처음 갔을 때는 새 건물 특유의 먼지와 건조함 때문에 책 몇 권만 대출해 급히 탈출했다.그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신문 기사 제목 하나가 직진해 내 가슴에 꽂혔다.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가 새 앨범 쇼케이스에서 한 말. “여섯 멤버가 목숨 걸고 했다고 할 만큼 열심히 했다.” 기사 제목은 “목숨 걸고 열심히 했다.” 아아 제발 목숨 좀 걸지 마. 제발 기사 제목 좀 그렇게 뽑지 마.물론 한 멤버가 탈퇴하고 해체 위기에 놓였다 나머지 여섯 명이 재계약을 하고 새로 정비해 첫 앨범을 냈으니 비장한 마음이야 오죽했겠냐만.샤이니의 종현이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연상인가. 아이돌에 밝지 않은 내게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연말이면 이것 저것 올해의 베스트를 뽑는 게 일이다. 나도 나만의 베스트를 뽑으며 반나절 재미있게 놀았다. 올해의 책 부문에서는 김영민의 이 뒤늦게 나타난 다크호스에 밀렸다. 고민 1도 없이 베스트에 놓은 책은 김승섭의 이다.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의 기분이었다.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을 하염없이 듣기까지 했으니. 넌 참 특별해 근데 난 머저리. 넌 참 잘 사는구나 근데 난 뭐하며 이 나이를 먹었을까.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딸의 씀씀이가 슬금슬금 커지는 것 같아 한마디 했다. 너 그렇게 돈 쓰는 데 맛 들렸다가 나중에 돈 못 버는 남편 만나면 어쩌려고?! 냉큼 날아온 답. 내가 벌어서 쓰지!? 흥 열정 페이가 표준 임금인 다큐멘터리 계에 종사하실 거라면서요, 돈이 퍽이나 벌리시겠어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키고 흐흐 그래라 속없이 웃는다. 새벽 기도 다녀오는 길에 저어기 언덕 위로 한 미친년이 나타나더란다. 심하게 헐벗은 모양이 미친년을 방불케 한 듯. 서로 접근해 식별하니 아이고 이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사람들이 마동석을 좋아한다는 것 하나만은 알겠다. 그가 나오는 매 장면에서 관객들은 실없이 웃어대니 어서 우릴 웃겨 달라고 채근하고 조바심내고 앞질러 웃어 버리는 형국이다. 눈썹을 치켜 뜨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표정이나 믿을 수 없이 우람한 팔근육에도 사람들은 웃는다. 하긴 나도 이런 ‘남자영화’(굵은 눈썹의 남자들이 눈을 희번덕 뜨는 포스터로 판별됨)를 전혀 안 보는데 마동석이 무척 재밌다는 말에 움직였으니.(집단행동론에서 말하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라고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가즈오 이시구로의 을 나는 영화로 먼저 접했다.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이 나온다. 이번 노벨상 수상 소식에 책도 구해 읽어봤다. 남아 있는 나날이 조금 줄어든 나는 이 안겨주는 고요한 슬픔을 좀 정리하고 싶어졌다. 주인공 화자는 스티븐스라는 집사, 때는 2차대전 끝난 지 십여 년. 그가 수십년 집사로 일한 달링턴 성이 미국인 사업가에게 팔려 이제 그는 인생 말년에 새 주인을 모셔야 하는 처지. 한 때 삼 십여 명의 스태프가 일하던 “웅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영화 에서 도드라지는 장면 하나는 김남길이 이런 길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며 설현을 태워주는 것이다. 다 큰 여자가 너무 쉽게 남의 차를 타는구나 쟤 죽겠구나 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왜 그리 스스럼없이 모르는 남자의 차를 탔을까? 그 장면에 있던 제3의 인물(?) 생명체(?)가 사태를 설명해준다. 아주 귀엽게 생긴 강아지를 김남길이 안고 있었던 것. 강아지를 안고 있는 남자란 아기를 안고 있는 남자와 거의 동급의 포스로 상대 여자를 무장해제 시킨다.단독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