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요즘 같아서야 기자들은 신났고 나 같은 B급 칼럼니스트는 고민이 다대하다. 북미 정상회담이니 월드컵이니 6.13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니 사법부의 재판거래 의혹이니 해서 하나만도 빅 뉴스감인 것이 겹쳐서 일어나니 몸은 좀 고달파도 기자 할 맛 나겠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반면 칼럼을 쓰는 입장에선 워낙 픽션을 압도하는 하이퍼 리얼같은 리얼리티가 펼쳐지는 와중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을 글줄 쓰려니 시장스럽기 그지없다. 텔레비전과 함께 한 이틀, 뭐 이런 에세이를 써야 하나.

싱가포르까지 날아가 뙤약볕 속에 볼 빨간 얼굴로 한국 뉴스와 날씨까지 전하는 웃픈 모습을 시전하시고 밤비행기 타고 와 개표 방송을 일고여덟 시간 연속하느라 나중엔 잠들지 않으려 눈을 부릅 뜬 jtbc 안나영 앵커에게 심심한 위로를.

요즘 잘 나가는 sbs는 싱가포르와 서울 이원생중계 하고 개표 방송도 섹시하고 야무지게 잘 하더이다. 손석희님에 대한 의리의 마음을 압도하는 방정맞은 서핑질 끝에 나는 결국 sbs로 안착하는 배반의 장미가 되었다.

무엇보다 경상남도 각 시군 단위를 누르면 그 시각 현재 개표율이 뜨는 터치 스크린의 프로그램은 가히 감동적이었다. 출구조사 결과와 상반되는 개표 결과를 간명하게 설명해 주지 않더이까.

선거 결과에 충격받은 것 같은 자유한국당이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일까(뭐지 이 기시감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인용에 충격받은 모습이랄까, 얼마나 작고 작은 세상에 갇혀 있기에.) 6.13 선거는 바람몰이도 없고 이변도 없이 진행되었다.

사생활을 둘러싼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약간의 피로감을 줄 뿐. 그나마 경상남도 지역의 개표 순서가 마련해 준 14 대 2냐 13대 3이냐의 관전 포인트가 아니었으면 밤 10시에 텔레비전 끄고 잘 뻔 했다.

▲ SBS 방송 화면 캡처

텔레비전에는 잘 나오지 않았으나 내 나름의 관심사는 서울 시장 선거에서 녹색당 신지예의 득표율이었다. 결과는 정의당 후보보다 많은 1.7% 수로는 8만3000여표.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세먼지 문제를 전쟁보다도 더 심각하게 느낀다는데 차량이부제 같은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후보 하나 없는 참 괴이쩍은 풍경 속에서 녹색당에게 시선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

원칙적인 관심 정도에 그쳤을 것에 확 불을 지핀 것은 어떤 남성이 날린 “개시건방진” 이라는 표현이었다.

‘인권 변호사’로 알려진 어느 변호사가 신지예 녹색당 후보의 벽보 사진에 관해 ‘개시건방진’ ‘나조차도 찢어버리고 싶은 벽보’ 등의 거친 표현이 담긴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이다.

▲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 벽보/뉴시스 자료사진

내가 그 말을 들은 것 같은 불쾌감과 모욕감 속에서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시건방지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생각해봤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빠가 딸에게 했어도 지청구 들을 말이다. 하물며 정치 장에서.

시건방지다를 사전을 찾아보니 (비위에 거슬리게) 건방지다라 설명한다. 특이하고 섬세한 비위를 가진 이가 누군지 얼마나 대단한 이이기에 “나조차도”라는 표현을 쓰는지 궁금했는데 그는 인권 변호사란다.

인권 변호사인 저조차도 거슬려서 찢어버리고 싶은 선거 벽보라는 말. 그러니 보통의 어떤 남성들이 벽보 좀 훼손하는 것은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정치 담론에서 대단히 특권적인 지점을 ‘인권 변호사’는 선점하고 있나보다. 선거벽보 훼손이라는 불법행위도 이해할만하다 용서해 주시고 한 공당의 서울시장 후보에게 꼰대 아빠가 중2병 딸에게 와락 분개하여 날리고 향후 석달 열흘을 반목하게 할 멘트를 날려주시다니.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처음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싱가포르=AP/뉴시스】

(원래는 이어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쓰려 했는데 이런 몰상식한 언사에 대해 정치적 올바름 어쩌고 하는 것은 개발에 편자 느낌이라 관둔다.)

그 ‘인권’이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기자회견할 때 기자들이 서너차례나 언급했다는 북한 ‘인권’상황과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같은지 궁금하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아주 특권적인 지점이라는 것은 같은 것 같고.....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대, 홍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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