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성산대교를 타려고 교통 정체 속에 묻혀 있다면 고개를 왼 편으로 돌려 반듯하게 서있는 차콜 그레이 건물을 찾아보자.

마포중앙도서관이라는 것이 생겼다. 지난 해 공사 중일 때는 왕복 6~8차선 도로 앞이라 그런지 왜소해 보여, 아니 모처럼 짓는데 좀 크게 짓지 했는데 막상 완공되니 작지 않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초라한 마포도서관 아현 분관의 기억이 여전한데 저 위풍당당한 마포중앙도서관이라니. 작년 12월 처음 갔을 때는 새 건물 특유의 먼지와 건조함 때문에 책 몇 권만 대출해 급히 탈출했다.

그 와중의 첫 인상은 왜 이리 상업공간이 많아? 임대료 받아 책 사려나? 였다. 버스 내려 도로에서 들어가면 건물 뒷면이고 지하 1층인데 그 층은 몽땅 주차장과 상업공간이고 게다가 정면에 떡하니 이마트편의점이 있더란 말이지.

4000원 짜리 백반을 파는 구내식당에서부터 김밥천국을 지나 1만원 넘는 돈까스집까지 있고 아이스크림 가게, 프레즐 가게에 층층이 커피집이 두 군데나 있으니 돈이 없지 먹을 게 없진 않겠다. 뒷 라인에 문구점과 뜨개질 공방도 있다.

한 달 만에 연체된 책 뱉어내러 갔더니 그새 사람들 체온이 웜 업 해 새 건물의 을씨년스러움이 많이 가시고 숨쉬기가 괜찮아서 찬찬히 둘러보았다. 국내 최신 도서관은 어떤 컨셉과 야심을 가지고 있을까나.

무엇보다 도서관은 책(종이책) 보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한 것 같다. 세련된 문화 센터 느낌? 얻어온 브로셔에는 “지역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리터러시 문화공간”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니 장서량은 빈약하다. 지하에 보존서고가 있다지만 보이는 공간의 많다 할 수 없는 책꽂이들이 반절 아래로 차 있다. 헐렁헐렁. 그 와중에 번역되어 나온 줄도 몰랐던 데이비드 그레이버 책이 떡 하니 꽂혀 있는 반전도 선사한다.

반면 책 읽는 포즈는 다양하게 마련해 주었다. 천편일률의 딱딱한 걸상(!)에서 벗어나 갖가지 모양의 의자와 소파가 있고(교보문고 필?) 몸을 깊이 파묻을 수 있는 토토로 배 같은 의자도 12개나 있다. 거기 앉은 사람 대부분 자더라. 뭐 책보다 자는 건 인지상정, 그러나 신발만은 벗지 말기를.

열람실은 3층과 4층을 거의 다 차지하는데 그 두 층이 가운데서 뚫렸다. 오호 공공도서관에서 좀체 볼 수 없는 과감한 구도로고. 조명이 아늑하다. 카펫도 깔았다. 공간 배치도 세련되고 정감 어려 있다. 공기정화 식물이 심겨진 커다란 화분이 곳곳에 있다. (개관 선물일진데 모쪼록 말려 죽이지 않기를.) 통화는 거기서 하시라고 공중전화부스를 마련했다. 전화기는 없는, 빨갛고 꺼멓고 한 잉글랜드풍 디자인. 여러 면의 벽을 예쁘게 책으로 장식했다.

▲ 서울 마포구 성산로의 '마포중앙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이 IT체험실에서 라이브 스케치북을 경험하고 있다. 서울 자치구 도서관 중에선 가장 큰 규모인 마포중앙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빌리는 도서관을 넘어 문화와 IT가 함께하는 체험도서관으로 꾸며졌다./뉴시스 자료사진

흠…뭐 나쁘진 않군, 에서 어라 이것까지 하며 홀딱 반한 공간이 있으니, 멀티미디어실이다. 영상자료 단체 관람석이라는 게 있어 네 사람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 대형 티브이로 각종 DVD를 볼 수 있다. 중딩인 듯 한 여학생들이 누울 듯 앉아 영화를 보다 내가 기웃거리니 화들짝 자세를 고친다. 어어 편하게들 하시게.

게다가 무려 LP판 감상석이 있다. 그러니 LP도 있다.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언급되어 새삼 기억나 유튜브로 들은 루 리드를 듣고 싶었으나 서양 클래식만 2,300장 구비한 듯. 글렌 굴드의 바하를 걸어놓고 방금 대출한 한창훈의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펼치니 와우 이거 포즈 지대론데. 칸막이 좌석에 가죽(느낌) 쿠션까지 구비해주신 센스. 지나는 이마다 힐끗힐끗. 이럴 줄 알았으면 세수라도 정성스레 하고 올걸.

한 사람이 주구장창 독점할까봐 그런지 LP, CD, DVD는 하루에 한 장만 된단다.(대출 절차 밟고 듣거나 본다.) 으 용의주도한 것.

▲ '마포중앙도서관'을 찾은 초등학생들이 어린이자료실에서 책을 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또 한 번 반한 곳은 5층 청소년교육센터. 바닥엔 세계지도에 벽엔 다트 게임판이 있는데, 아뿔사 악기 연주실이 있다. 풀세트 드럼이 놓여 있고 각종 국악 악기도 쌓여 있다. 피아노 연주실은 피아노 한 대씩 방이 7개. 거기다 연극 연습실, 무용 연습실, 당연히 탈의실까지. 이름에서 보다시피 청소년을 위한 거지만 그들이 학교 가 있는 동안엔 어른들 대상 강좌가 있다.

피아노 강좌를 당장 등록했다. 시간 당 만원 꼴. 일반 개인 레슨보다 싸지만 역시 주부들이 자기 앞으로 쓰기엔 적지 않은지 자리가 많이 비었다. 마포구민은 깎아준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을 연주한다는 목표로다가 열심히 도레미도파라시레솔 두드릴 것이다. 흐흐.

어린이는 역시 나라의(마포구의?) 보배. 총 6층에서 두 개 층이 그들에게 할애되었다. 1층에는 쁘띠 어쩌고 하는 키즈카페 업소가 있다. 럭셔리해 보이는 게 몇 만원은 좋이 깨질 듯. 2층 어린이 자료실, 유아자료실이 인상적이다.

신발 벗고 들어가 편한 자세로 책보는 것은 물론이고 휑뎅그렁하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여남은 명이 옹기종기 앉게 공간을 구획했고 곳곳에 숨을 곳도 마련. 오우 우리나라 공무원의 정서가 이렇게까지 발달?

‘리터러시 문화공간’이라서 이러저러한 방, 교실, 센터가 즐비하다. 꽤 넓은 영어교육센터, 특기적성교실, 문화강연방, 생각나눔방 등등. 이채로운 것은 작가지망 구민을 위한다는 집필실. 평일 오후라도 방학인데 활용되는 공간이 별로 없다. 차차 활성화되겠지. 까다롭게 지도편달하려 들지 말고 청소년들 몇 명 모여 뭐 하겠다면 다 빌려주면 좋겠다.

현하 소비수준과 시대정신을 보이는 걸 꼽자면, 우선 한겨레신문을 종이로도 볼 수 있고 키오스크라는 전자기계로도 볼 수 있다. 4층 장애인 열람석에는 시각장애인 노트북과 점자 인쇄기가 있고 대활자본(큰글씨 책) 코너도 있다. 커피도 뚜껑 덮으면 오케이. 지하 1층에 ‘환경미화원 휴게실’이 남녀로 있다.

그 와중에 옥의 티. 출입구마다 붙어있는 안내문, “밤 10시 이후에는 도서관 출입을 통제하오니 신속히 퇴관하시기 바랍니다.” 통제? 신속히 퇴관? 이 무슨 군바리체? “우리 도서관은 10시에 닫습니다. 시간을 지켜 주세요.” 정도가 어떨지요?

▲ 갖가지 모양의 의자/뉴시스 자료사진

그리고 녹지공간이 너무 없다. 1층의 그나마 흙바닥을 옥외주차장으로 했던데 지하에도 주차할 곳 많고 반 밖에 안 찼던데? 수요 파악을 거쳐 옥외주차장 갈아엎고 나무나 꽃들 심었으면 좋겠다. 지금 꽂아놓은 나무들이 수십 년 자라 정독도서관 나무처럼 되면 그 근방의 을씨년스러움도 덜고 아름다운 랜드마크가 될텐데.

여하간. 도서관 곳곳에 “지방분권 개헌 1천만 서명운동” 안내 입간판이 서 있고 서명지도 놓여 있더라. 지방분권 개헌을 하면 내 사는 서대문구에도 이런 좋은 도서관이 생기는 거여?

전국의 기초 자치 단체마다 이런 도서관 하나씩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책 안 읽는다 한탄만 말고 돈 들여 정성스럽게 인프라를 마련해주라. 마포도서관 이용객들은 세금 낸 주인이면서도 그 공간이 황감하여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리터러시’를 높이고 있던데.(다녀 본 도서관 중 가장 조용하다. 사서들 목소리도 튀지 않고.)

버리는 컨테이너 주워다 무게 달아 폐지로 팔 수준의 옛날 책 몇 권 늘어놓고 작은 도서관 어쩌고 하며 날로 먹으려 들지 말고.

우리는 이런 번듯한 도서관을 누릴 자격이 있다.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대, 홍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컬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강사를 그만 두고 다양하게 읽고 다니고 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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