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여섯 살 재형이와의 일이다.에미는 아직 강의에 땀을 흘릴 오후 두어 시경, 재형이가 노란 유치원 가방을 마루에 집어 던지면서 왕왕 울어댔다.늘 명랑한 아이가 “할머니, 제가 이 세상에서 없어야 하는 존재예요”라고 소리쳤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저 작은 입에 담기로는 말 자체가 무척 컸다.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보았다.“재형아,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무슨 말이니”“할머니, 제 짝꿍 피터가 절 보고 넌 세상에서 없어야 하는 존재라고 했어요”
[이코노뉴스=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임진왜란 종전 무렵인 1597년 30세의 젊은 선비 수은 강항은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다.그의 학문적 재능은 당시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며 승려인 6년 연상의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를 감복케 했다.그는 강항이 퇴계의 ‘제자의 제자’라는 이야기를 듣고 승복을 벗어던지고 퇴계학의 신봉자가 되었다. 이후 새로 출범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막부의 스승이 되어 막부가 문치로 흐르는 단초를 열어 놓았다. 이후 퇴계학은 일본에서도 면면히 이어졌다. 일본인
[이코노뉴스=서수용 박약회 간사] 도산서원(陶山書院)은 한국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서원이다.이 서원은 고종 당시 단행되었던 서원철폐령에서도 벗어났고,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9개의 대표적 서원에도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그 가르침을 계승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1574년 선생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되었다. 서원은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을 마련해 학문과 후진을 양성하던 공간인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위치하고 있다.도산서원은 1969
[이코노뉴스=김민정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학예사] 은평역사한옥박물관(관장 김시업)은 실학박물관과 함께 ‘다산의 하피첩, 은평에 오다’란 주제의 협력전시회를 6월 11일까지 진행한다.이번 전시회에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 중, 부인 홍씨가 보낸 붉은 비단치마에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적은 서첩인 ‘하피첩’과 시집가는 딸에게 선물했던 ‘매화병제도’, 다산의 대표작인 ‘목민심서’ 등이 전시된다.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전시회와 관련해 5월 21일 오후 2시 ‘다산과 하피첩 이야기’ 주제의 강연(박석
[이코노뉴스=김병인 성균관 전례위원장] 우리나라에도 사단법인 한국공자연구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이다. ‘공자님 말씀’을 그렇게 입에 달고 살면서도 최근까지 우리나라에 그런 연구단체가 없었다는 게 의아스러울 뿐이다.하도 어릴 때부터 공자라는 이름을 귀에 따갑도록 듣다보니 공자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듯해서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공자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었을까.하지만 천주교와 기독교가 꽃을 피운 것은 이스라엘이 아닌 로마였다.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했지만 찬란하게 번성한 것은 주변국가였다.한국은 퇴
[이코노뉴스=김병인 성균관 전례위원장] 예전에 우리는 그랬다.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 웃어른이나 선생님, 친구들이 훈계를 할 때면 속으로 말했다. ‘또 공자님 말씀 하고 계시네.’‘공자님 말씀’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모르면서도 그 한 마디로 듣기 싫은 소리는 중동무이할 수 있었고, 좋은 충고도 한 귀로 흘려버렸다.이처럼 ‘공자님 말씀’은 고리타분한 말이라는 느낌과 더불어 약간은 냉소적인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같은 말이라도 ‘예수님 말씀하고 있네’ 라든가, ‘부처님 말씀하고 있네’ 라든가 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예수님
[이코노뉴스=김형섭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 조선 후기 ‘입시 지옥’은 과거제의 폐단으로 나타났다.“근래 부유한 서울 사대부 집 자제들은 평소에 한가롭게 지내다가 아무 날에 과거를 본다는 사실을 알면 “거벽과 사수는 어디에 있느냐” 하고 소리친다.과거 시험장에서 글을 대신 짓는 자를 ‘거벽(巨擘)’이라 하며, 글씨를 대신 쓰는 자를 ‘사수(寫手)’라고 한다. 이들은 모두 시골의 가난한 선비들이다.그래서 시험 감독관이 비록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선발된 사람들은 모두 부귀가의 자제들이었다.” 《매천야록》, 황현)책을 덮고 세상 속으로조선
[이코노뉴스=김형섭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 실학(實學)은 조선 후기 새롭게 일어난 학문이다. 출세를 지향하고 윤리와 관념을 주로 했던 조선의 유생들과 달리, 실학은 자기 시대의 과제에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한 학문이었다.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고 과거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였다. 당시 과거가 출세(出世)의 사다리이자 영광의 길로 인식되었다. 그러면서 현실 생활과 점점 멀어졌다.과거시험은 15~20여 년의 준비 기간, 유교 경전의 암송과 논술로 짜여진 시험 과목 등으로, 가히 ‘시험지옥’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과거시험의 부정이 점점
[이코노뉴스=한기홍 인천인성교육실천추진단 단장] 몇 해 전 우연히 일간지의 문화면에서 신간을 소개하는 글을 접했다.일본의 와타나베 준이치(渡辺淳一)가 쓴 이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의 유명한 의사로 의사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인생의 처세술을 수필 형식으로 쓴 책이다.이 책은 2007년 일본에서 출간 당시 100만부 이상 팔리며 인기를 끌었으며 저자가 2014년 사망하면서 추모 분위기 속에 다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저자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어온 단어 ‘둔감(鈍感)하다’에 ‘힘(力)’을 붙인
[이코노뉴스=이육원 박약회 사무총장] 필자는 중국 알리바바 마윈(馬雲) 회장의 인생역정이 ‘백전백패(百戰百敗)’의 실패로 점철됐다는 뉴스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최고의 갑부가 성공만 했다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겠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했다는 말은 ‘어라, 그런데 어떻게 짧은 시간에 중국 최고 갑부가 되었지’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올해 53세인 마윈 회장은 15년 전 처음으로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빗(CeBIT)에 참가했을 때만 해도 물건을 팔기 위해 작은 부스를 차지한 중소기업인에 불과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세빗은 세
[이코노뉴스=이지양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남자들은 아내를 맞아 결혼을 할 때 ‘내가 이제 한 집의 가장(家長)이 되는구나. 우리 집을 책임져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한다.반면 여자들은 누구의 아내가 된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하기보다는 출산을 경험하면서 ‘아, 내가 이제 아이 엄마구나’라는 것을 점점 의식하게 된다고 한다.그리고 죽음을 의식할 때 남자들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생명보험을 들지만, 여자들은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생명보험을 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남자 후배가 뜻밖의
[이코노뉴스=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맹자』에 ‘고자역자이교지(古者易子而敎之)’라는 말이 있다. 항간에서는 ‘역자교지(易子敎之)’라고 하는데, ‘자식을 서로 바꿔서 가르친다’는 뜻이다.사실 부모의 경우 장차 자신의 지위를 물려받을 자녀에게 강한 성취 욕구를 갖고 있는 까닭에 자녀의 양육에서 감정적인 대응, 곧 질책이 앞서게 마련이다.그러다 보니 자녀는 부모에게 반감을 갖기 쉬우며. 이는 곧 교육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이런 배경에서 유가(儒家)에서는 친척이나 벗 등에게 자녀들을 보내서 가르침을 받도록 하였다
[이코노뉴스=이윤희 퇴계학연구원 연구위원] 퇴계 이황 선생은 유가의 수양론을 총정리하여 경(敬)이란 개념으로 일관된 체계를 세웠다.그리고 그 경을 성취하는 공부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조선 선비 정신문화의 기초를 놓았다.그 덕택으로 우리는 몇 백 년 동안 도덕 높은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살 수 있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어느 친구에게 드린 편지에서 ‘군자는 일신(一身)을 주재(主宰)하려 하지만 그 일을 맡은 마음이라는 것이 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어디로 튈지 모르고 아니 가는 곳이 없다. 무언가 또
[이코노뉴스=권원오 수필가] 이 세상의 문화는 크게 동양을 중심으로 한 정신문화와 서양을 중심으로 한 물질문화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정신문화는 나와 너는 우리이다. 남이 아니다. 서로 남이 아니면 욕심이 줄어들고 본심이 많아진다.나와 네가 우리인 사회에서는 서로가 두렵지 않다. 그래서 법을 앞세우기보다 도리를 앞세운다. 법을 좀 어겨도 우리가 남이 아니기에 적당히 넘어가기를 바란다. 퍽 인간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세계적인 미래학자인 프랑스의 쟈크 아탈리는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인간적이라고 했다. 세계 어느 곳을
[이코노뉴스=이미식 부산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며칠 전 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앞자리에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뒤에 앉아 있는 나에게 연신 말을 건네셨다. 딸을 도우러 가는 길인데, 하차할 정거장 이름을 정확하게 모르니, 가르쳐 달라는 부탁의 말이었다.그 정거장에 도착할 즈음, 나와 같이 내리셔야 한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버스 안에 있던 승객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승객들의 시선은 의구심이 담긴 표정이었다. ‘저 사람이 정말 할머니를 도우려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눈초리였다. 그 시선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방법은 선한
[이코노뉴스=이광호 연세대 명예교수] 유학(儒學])이란 무엇인가. 유학이란 어떠한 학문인가. 유학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한자문화권은 과거 수천 년 동안 유학을 중심으로 살아왔고, 조선 왕조 500년은 유학을 국가적 학문으로 숭상하고 유학의 가르침인 유교를 삶의 표준으로 삼은 유교 국가였다.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유학이 어떤 학문인지 아득하기만 하다.세계 모든 나라의 대학에서는 다양한 현대적 학문이 추구되고 있는데, 유학의 경전을 읽어 보면 유학의 학문관은 현대적 학문과 다른 점이 많다.
[이코노뉴스=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조선의 선비들은 어떻게 양성될 수 있었을까. 먼저 지식을 공부시키기에 앞서 사람을 만들고자 인성공부부터 가르쳤다.어릴 때부터 기본적인 행동규범을 엄격하게 배웠다. 자고난 이부자리부터 스스로 개어 올리고 어른의 부르심에는 즉각 대답하고 쫓아가 가르침을 받고 손님이 오면 나아가 공손히 맞이하여 자리에 모시는 등 일상생활에서의 예절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난 후 비로소 학문에 나아갈 수 있었다. 요즈음의 성적 우선의 자녀 교육과는 출발부터 판이했다.그런
[이코노뉴스=김용자 수필가] 어느 마을 가난한 집에는 물려받은 재산은 없이 제사만 여러 위(位)였다. 그러나 아무리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없어도 단 한 번도 제사는 빠뜨리지 않았다.없는 집 제사 다가오듯 한다는 말이 그냥 생긴 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정성을 드려 제사는 지내야 했다. 깊숙이 간직해 뒀던 떡쌀마저 바닥이 났다. 그 해는 시어른 제사를 어쩔 수 없이 메사로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편 없이 밥만 올리는 제사를 메사라고 한다. 보통 메사란 집안에 우환이 있다든지 흉사가 들면 간단하게
[이코노뉴스=이육원 박약회 사무총장]#1. 과학자들이 어항 속의 물고기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큰 어항 한가운데 유리판을 세워 두었다. 물고기는 유영을 하다 유리판에 자꾸 부딪혔다. 이후 유리판을 제거해도 물고기는 아예 반대쪽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넘지 못할 장벽이 있다”는 고정관념이 습관이 된 것이다.#2. 코끼리는 힘이 세다. 코끼리가 어릴 때 동물원의 사육사는 다리에 쇠사슬을 채워 말뚝에 묶어 둔다. 아기 코끼리는 답답해서 쇠사슬을 끊어보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라면서 쇠사슬을 뽑을 만큼
[이코노뉴스=이성림 칼럼니스트] 이렇게 저렇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남들이 나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가끔 듣게 든다. 그것이 때로는 좋은 말일 수도 있으나 듣기에 거슬리는 거북한 이야기들도 있기 마련이다.대체로 좋은 말을 들었을 때는 별 감흥 없이 넘기어 가슴에 담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밤잠을 설치게 하거나 폐부(肺腑) 속에 깊이 남기게 되는 말들은 대체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럴 때, 장고(長考)에 들어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묵상에 들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