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 글·사진=김미영 칼럼니스트] 뉴질랜드 트레킹을 다녀왔다. 남섬의 밀포드 트렉을 중심으로, 간 김에 쿡 산도 좀 걷고 북섬으로 돌아가 거기서 제일 높은 산도 하루 오르는 것으로 구성된 패키지 상품으로.

패키지라 하면 7일간 10개국 돌기 같은 살인적인 일정과 가이드 팁과 쇼핑 강요 등을 연상하지만 요즘은 꽤 깔끔하게 진행된다. 특히 도시 문화 관광이 아니라 자연을 즐기는 여행은 패키지가 안전하게 느껴진다.

▲ 밀포드 트렉의 종료 지점인 샌드플라이 포인트/뉴시스 자료사진

뉴질랜드 남섬의 밀포드 트렉은 걷기 편한 길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곳이다. 각종 진균류 낙엽 등으로 푹신푹신한 길이 태반. 자기 짐을 지고 산 속 롯지에서 자며 33.5마일 약 54㎞를 사흘 반나절에 주파하는 것으로, 짐을 지는 게 문제지 하루에 걷는 거리나 길은 험하지 않다.

그래도 둘째 날은 매키넌 패스라고, 지그재그로 720m를 올라 1155고지를 찍고 다시 880m를 내려오는 길이라 녹록치 않다. 그 트렉이 원래 서덜랜드 폭포를 보기 위해 개발된 곳이라니 그 폭포가 장관일 것이나 그렇게 15㎞를 걷고 롯지에 도착해 짐을 풀고 다시 왕복 4㎞를 걸어야 하니 포기하고 안 간 축들이 꽤 있다.

더구나 내려오는 길이 전 트렉 통틀어 가장 위험하다고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첫 날부터 자꾸 마주쳐 얼굴을 익힌 북섬 여인이 넘어져 다리를 다쳤다. 그는 셋째 날 헬기로 숙소로 옮겨졌다. (1000달러에 달하는 비용은 본인 부담. 넘어진 것이 자기 책임이므로^^;;)

50명 팀 중 한국 패키지로 간 이가 14명, 개인적으로 예약해서 온 부부가 있어 한국인이 16명. 뉴질랜드 북섬과 호주에서 여남은 명씩, 잉글랜드 일고여덟 하여 영연방 국가에서 온 이가 태반이고 미국인 2명 등으로 인종 구성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오로지 한국인만 압도적 다수가 온 것이 특이하다. 일본인은 트레킹 열풍이 지나갔고 중국인에게는 아직 안 왔다? 15년 만에 다시 온 거라는 한국 70대 남성이 그 때는 일본인이 꽤 있었다고 한다. 롯지에 써 있는 한자(세탁실, 건조실 등)는 중국인용이 아니라 일본인 용이었던 듯.

▲ 필자가 뉴질랜드 남섬의 밀포드에서 트레킹을 하고 있다.

휴가철도 아닌데 일주일 이상 시간을 낼 수 있으려면 백수이거나 은퇴한 이들이어야 한다. 그 당연한 생각을 못하고 나는 몹시 걷는다는 데 사로잡혀 체력 좋은 젊은이들이 태반일 거라고 상상했다. 동네 뒷산만 가도 ‘체력 좋은 젊은이들’은 안 뵈고 온통 중년 노년들이건만.

최고령은 79세 호주 여인. 한국인 16명도 75세 전직 교수를 포함해 칠순 기념으로 온 부부 등 칠십대가 5명은 되고 나머지는 60대, 친구끼리 온 50대 여성 둘과 우리 부부가 ‘영계’였다.

숙소 들어간 첫날 얼굴 익힌다고 수다 떠는 중에 북섬에서 왔다는 삼총사가 옆에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밀포드 트렉 오는 것이 버킷 리스트였고 여기 오는 데 70년 걸렸단다. 북섬을 북아일랜드공화국으로 오해해 IRA(아일랜드공화군)까지 떠올리다가 아차 뉴질랜드 북섬이라는 거구나. 그렇게 가까운데, 좀 과장 아니야? 이건 뭐 한라산 가는데 70년 걸렸다는 것도 아니고.

시간 여유와 체력 못지않은 변수가 경비였다. 우리가 한 것은 뉴질랜드 회사가 독점 운영하는 가이드 딸린 트레킹으로, 일인당 2000뉴질랜드 달러(약 158만원) 정도. 거기엔 트레킹 시작 지점까지 가는 배삯, 롯지 숙박비, 식비(저녁은 스테이크 양갈비 등 최고로 나오고 아침은 세계 공통의 아메리카식, 점심은 주어진 재료 활용해서 각자 싸는 샌드위치와 사과 등), 마지막 날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 여행과 퀸스타운까지의 버스비가 포함된다.

▲ 밀포드 트렉 출발 지점

그러니 북섬에서 남섬으로 오는 비행기삯 하며 경비가 꽤 든다. 물론 가이드 없는 독자 여행이 있는데 그것도 예약받아 40인만 허용. 우리 짐은 줄이고 줄여 5㎏ 정도라면 독자 여행객들은 30~40㎏을 지고 다니더라. 우리 자는 숙소가 호텔이라면 그들 숙소는 대피소? 그나마 40달러 정도 내야 한다.

한 부부가 아이 데리고 왔던데 목격자 말로는 아이가 힘들다고 투덜댔다나 애미 애비가 물건 던지며 싸우더라고. 트렉 내내 아빠는 휙 앞질러 가 경치 좋은 데서 폼잡고 쉬고 엄마와 7살 정도 아들이 힘들게 뒤처지는 광경을 여러번 봤다. 예쁜 아드님께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 만들어 주시느라 용쓰는구나.

여하간 60,70대에게 독자여행은 좀 무리일 터. 노령연금 받아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되어 평생 꿈꾸던 밀포드를 왔다는 이야기. 그건 그렇고 잘 걸을까? 환자 수태 발생하는 거 아녀? 비대한 몸집의 70대 호주 여인은 내내 좀 힘들어하던데 그래도 탈 없이 완주했다.

뉴질랜드인들은 어릴 때부터 신체활동을 많이 하여 노인들도 잘 다닌다는 한국 출신 가이드 설명. 뭐 그 와중에 70대 중반 한국인 남성이 내내 압도적 일등을 기록했으니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마지막에 간 북섬의 통가리로 알파인 크로싱에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1100고지에서 시작해 1900까지 오르고 800까지 내려오는 19.4㎞ 산길. 부활절 연휴 마지막 날이라 북한산 미어터지듯 미어터졌다. 봉우리 직전에는 바람이 엄청 세서 스틱이 날아다닐 지경이고 봉우리를 넘자마자 각종 크기의 석회암이 푹푹 빠져 여기서 넘어지고 저기서 자빠지고 아주 난리통.

10대 말 20대 초로 보이는 여성들이 반바지 민소매 차림에 30~40㎏은 되어 보이는 배낭 메고 (세계 어디를 가도 문제 없겠다는 말을 들은) 나를 (감히) 제치고 씩씩하게 잘도 걷더라.

눈부시게 아름답고 가장 부러운 광경이었다. 우리 젊은이들도 저렇게 화사하게 자연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국 사람인듯 한 여학생이 서구 남학생 둘 거느리고(?) 다니는 모습은 봤는데 관광 온 듯 맨손 바람.

사나흘 묵을 자기 짐을 스스로 져 나르며 거친 산야를 돌아다녀 본 이는 자기 몸

▲ 관광객 등이 트레킹 도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나 건사하는 문제에서 좀 먹고 들어가지 않겠나? 노와 예스는 얼마나 분명하고 똑부러지게 할까? 이 비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삼지사방 뻗어나가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지금 젊은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외지 생활을 감당할 신체적 자신감일 터.

그나마 있는 체육시간도 국수영으로 돌리며 소위 ‘글로벌 리더’들을 기르겠다고 아우성인 것 같은데요, 저 공부 안하고 야심 없다는 서양 젊은이들이 하루 10㎞도 못 걷는 ‘리더’에게 리드받을런지요? 아무리 땅 따먹는 식민주의 시대가 아니라도 말입니다.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대, 홍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컬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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