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지난 화요일(20일)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계주 경기를 보고 왔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열망과 돈과 운의 삼위일체. 열망이야 남보다 강렬했다 할 수는 없고 돈이야 항수이니 행운이야말로 그 ‘전설’이 된(신문기사 표현을 따르면) 경기를 현장에서 볼 수 있게 된 주 요인. 와우 우주의 기운이 도왔구나.

평창 동계올림픽이야 한반도 긴장해소와 남북 단일팀 문제 등 정치적 차원으로 우선 다가와서인지 운동 경기 자체를 즐긴다는 생각은, 글쎄 그걸 보러 가기엔 너무 멀고 너무 춥고 고생스럽지 않아? 평생 스키 한 번 안 타 봤는데 제대로 즐길 수나 있겠어?

성공을 기원한다는 의미로다가 한 번 정도 갈 수도 있겠지만 뭐 그렇게 부지런한 인생도 아니고 표도 없으니…의 분위기였다. 주위 분위기도 대체로 그랬다. 그런데 TV로 보는 경기들이 너무 재미있더란 말이지. 다들 확 달아오르는 분위기.

우리 가족도 뒤늦게 발동이 걸리던 중 딸이 행동에 나섰다. 현장에서 경기를 보고야 말겠다는 단호한 결심이 일요일 아침 선언되었다. 티켓 값이 값이니만큼 아빠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취업준비에 찌든(?) 딸의 부탁을 거부하기엔 역부족.

이것저것 온라인으로 찾아보더니 여의치 않은지 현장 판매 분을 노리겠다며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울시청으로 달려 나갔다. 지하에 있는 시민청에서 표가 남아 있지 않다는 담당자의 말에 그래여? 하며 무거운 발길을 돌리던 중 무심코 새로 뜬 티켓을 눌렀는데 그게 예매 성공. 이런 건 오프라인 구매여 온라인 구매여?

그 다음 미션은 기차표 예매. 따로 떨어진 자리밖에 없더니 냉정하게 몇 시간 기다리니 붙은 두 자리가 보임. 청량리 오전 11시 10분 출발 강릉 낮 12시 44분 도착, 올 때는 강릉 밤 11시 35분 출발 상봉 21일 새벽 1시 8분 도착. 자고 올까 싶었지만 숙박시설 찾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리적 거리감이 멀 뿐 실상 강릉까지 1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는다. 대부분 터널 구간이라 경치를 볼 수 없었지만 2월의 풍경이 놓치면 아쉬운 절경도 아니고, 어젯밤 설친 잠도 보충하고 결전에 앞서 에너지도 비축할 겸 한숨자니 금방 도착.

시내버스도 몽땅 공짜고 셔틀도 공짜 운행한다지만 이것 저것 알아보기 귀찮아 걍 무식하게(?) 걸었다. 강릉역에서 경기장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길을 잃을래야 잃을 수 없게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다.

하루 전 날라 온 안내장에 2시간 전에 입장하라더니 올림픽파크 안에 일찍 들어와 협찬사 이벤트 구경도 하고 돈도 좀 쓰라는 얘기였나보다. 삼성관, 코카콜라관, 노스페이스관이 재미있어보였는데 하나같이 줄이 길어 포기.

▲ 20일 오후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3000m 계주 결승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최민정-심석희가 역주하고 있다./뉴시스

기념품 가게(슈퍼 스토어) 줄은 제일 길지만 이마저 포기할 순 없지. 수호랑과 반다비 몇 개 담고 계산하려니 계산 줄도 길다. 비자카드와 현금만 된다는데 내 카드가 우연히 비자였기 망정이지 손만 빨고 올 뻔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맥도널드관이 있지만 줄이 길다. 매점이라는 곳은 둥근 비닐 천막을 치고 분식 몇 가지 파는 옹색한 공간. 이 쯤 되니 그 안에서 먹을 의지를 상실해 관중식당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커피공화국’에서 이상하게도 커피점 하나 보이지 않고.

경포대로 가는 길은 좀 험난했다. 교통통제로 택시 다니는 곳이 제한되어 택시 잡기가 불가능하고 승강장 줄은 길다. 셔틀은 30분마다 운행되어 좀 불편했고 그나마 자리가 없다고 안 태우기가 일쑤다. 한 시간 기다리란 얘기? 주차장 사정은 좋아 보인다. 차가지고 올 걸.

막상 현장 가면 표 많을거야 하고 본 것처럼 말하는 사람 있던데 막상 현장 와도 표가 없는지 한 백인은 “표 한 장 필요해요” 하고 손팻말 들고 경기장 앞에 서 있더라. (말이 나와 얘긴데 동계올림픽엔 참 흑인이 없다.)

▲ 20일 2018평창동계올림픽대회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3000m 계주에서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딴 가운데 관중들이 선수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뉴시스

귀빈용으로 빼 놓은 자리만 한 두개 빌 뿐 관중석이 꽉 찼다. 우리 자리 옆 라인에는 북한 선수단 임원들이 뒤늦게 줄지어 들어와 앉더니 500미터 남자 예선 자기 선수 경기가 끝나자 쑥 빠져나가더라. 유일한 선수 정광범은 첫 스타트 때 넘어지고 다시 출발해 이뤄진 경기에서도 또 넘어져 짠했다. 완주는 했지만.

쇼트트랙 경기장은 락 콘서트장으로 많이 쓰이는 올림픽 체조 경기장보다 약간 큰가 싶다. 현장 가서 즐기기에 아주 적합한 사이즈란 얘기다. 솔직히 월드컵 때는 경기장 가서 전광판 보느라 바빴다. 이번에는 제대로 레알 경기를 봤다. 그것도 전문 디제잉의 신나는 음악 속에. 마치 오아시스 공연 온 기분.

쇼트트랙 경기는 보는 이로선 박진감 넘치고 아드레날린 만땅이지만 선수 입장에선 부상 위험이 크다. 패널티와 어드벤티지가 속출하고 그러니 경기가 끝나도 승부가 확정되지 않아 “비공식적으로(unofficially)” 어쩌고 하는 멘트가 나온다. 전광판을 초조하게 보기가 부지기수.

선수들이 넘어지느라 손상된 빙판을 급히 땜빵하는 모습도 진풍경. 파란 물뿌리개로 물 뿌리는 것은 기본. 깊이 파인 곳은 소화기 같은 걸로 칙 뿌리고 흙손으로 바르고 고르고..

3000미터 여자 계주 B팀 결승은 네덜란드와 헝가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 이등으로 나란히 타 싱겁기 그지 없었다. 선두다툼 없이 안전하게 쭉 달리니 세계기록이 나올밖에. 기록경기가 아니라도 기록을 재나보이.

그러나 중국 이탈리아 한국 캐나다가 달린 선두조 경기는 그야말로 익사이팅했다. 우리팀은 중반까지 3등으로 달려 이대로 끝나나 조금 초조해지는 순간 2위로 치고 나가다 다시 3위. 심장이 두근두근 아아아 그러다 5바퀴 남기고 스퍼트. 결국 아슬아슬하게 1등.

▲ 북한 응원단이 20일 강원 강릉시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한반도기 손깃발을 들고 응원하고 있다./뉴시스

응원의 모습은? 북한 응원팀처럼 가지런히 앉아 박자 맞춰 손뼉 쳐? 오우 노우. 박수칠 겨를도 없고(소리가 작아 임팩트도 없다) 노래는 무슨 한가한 소리. 그저 악악 괴성을 지르며 선 채로 발을 동동 구르며 아주 지랄발광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한 선수(김아랑)가 넘어졌지만 바톤 터치 하고 넘어진 거라 대세에 지장 없고 우리 잘못으로 보이지도 않아 나는 우승의 기쁨 속에 좋아 죽는데 옆의 딸은 혹시 패널티 먹을까봐 넘어진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했다나.

그런 이가 많은 듯 태극기 걸고 한 바퀴 도는 선수들께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잠시, 아연 조용해져 긴장의 몇 십 초. 국기를 감고 나서려던 중국팀이 어느 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거의 동시에 어디선가 네덜란드 국기를 앞세운 백인들이 좀비처럼 나타나 내 옆 계단에 진치고 앉아 아주 난리가 났다.

쏘 익사이팅을 연발하는 백인들 틈에 끼어 경기장을 나서며 나는 외쳤다. 거참 오지게 재밌구나야. 이야말로 재미의 신대륙 발견일세.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대, 홍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컬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강사를 그만 두고 다양하게 읽고 다니고 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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