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마음에 대하여

[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연말이면 이것 저것 올해의 베스트를 뽑는 게 일이다. 나도 나만의 베스트를 뽑으며 반나절 재미있게 놀았다. 올해의 책 부문에서는 김영민의 <집중과 영혼>이 뒤늦게 나타난 다크호스에 밀렸다. 고민 1도 없이 베스트에 놓은 책은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의 기분이었다.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을 하염없이 듣기까지 했으니. 넌 참 특별해 근데 난 머저리. 넌 참 잘 사는구나 근데 난 뭐하며 이 나이를 먹었을까. 똑똑한 사람은 꽤 있지만 이토록 선하게 스마트한 이는 귀하다.

의대생이 학교 앞 책방에서 알바를 하지 않나, 공중보건의를 소년교도소에서 하지 않나 또 그걸 재소자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가지 않나, 쌍용차 해고노동자, 소방공무원, 동성애자, 세월호 생존 학생 등 가장 힘든 이들 옆에서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219) 마음으로 함께 하고 연구하고 법정증언 등으로 실효성 있게 돕는 이.

게다가 그는 무려 잘 생기기까지 했다. 책 읽기 전 신문에 나온 인터뷰 사진을 보며 이 눈매 참 좋네, 우리 사위 삼으면 좋겠다 흐흐 했는데 아니 벌써 따님이 세 명. 그 중 한 명이 내 딸과 같은 이름이라는 것으로 일찍 품절남된 것 용서.

모든 꼭지가 훌륭하지만 책의 서두가 높은 흡인력을 발휘한다. “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 라는 제목. 한국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경험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연구하던 중, “귀하는 새로운 일자리에 취업할 때 차별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예도 아니고 아니요도 아니고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답을 택한 이들이 상당히 많음에 저자는 주목한다.

‘해당사항 없음’이란 어쩌면 답하기 귀찮다거나 잘 모르겠어요 라는 식의 대답의 회피인데 이게 무슨 의미일까. 이런 중립적 수치가 많으면 통계적 연관은 교란된다. 보통은 질문지를 잘못 만들 때 이런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두루뭉술한 답이 많이 나온다.

그는 예 아니오를 택한 이들로 연령, 학력, 소득 수준, 고용 형태, 건상 상태 등의 변수로 한 통계모형을 만들고 이를 해당사항 없음의 집단에 적용한다. 결과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진다는 것. 즉 남성 노동자가 ‘해당사항 없음이라 할 때 그것은 ’아니요‘라는 뜻이고 여성 노동자가 그랬을 때는 예, 그러니까 구직 과정에서 차별받은 적이 있다는 뜻이란다.

더 나아가 이를 자가평가 건강과 관련지어보니 ‘해당사항 없음’이라 답한 남성은 차별받지 않았다고 답한 이들과 비슷한 건강 상태인데(1대 0.96으로 심지어 더 건강. 무신경의 건강성?) 여성은 차별을 겪었다고 답한 이들(1.63)보다 ‘해당사항 없음’이라 답한 이들의 건강 상태가 더 나쁘게 나온다는 것(2.07).

▲ 지난 10월 12일 광주 서구 치평동 어린이공원 광장에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학생들이 직접 만든 '지문트리'를 활용한 '친구 사랑한Day'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광주 서부경찰서=뉴시스 제공

학교폭력에 있어서는 성별이 바뀐다. 학교 폭력 피해 경험이 없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경험을 하지만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에서 마지막 범주로 답한 이가 여자인 경우는 진짜 생각이 없다는(폭력이 경미해서) 뜻이고 남자는 생각 없는 척, 상처 아닌 척 자기기만을 하는 거라는 것. 따라서 우울증상 위험성도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나간 남성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보다도 더 크다.

홍길동의 아픔이 크다. 차별을, 아픔을(차별의 경험) 차별이라 규정해내지 못하고(차별의 인지) 그래서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한(차별의 보고) 이가 가장 아프다. 즉 말하지 못한 상처는 내 몸이 기억하고 그래서 몸이 아프다. 억압된 것의 귀환.

몸은 말하자면 경험의 저장고. 태아의 경험도, 가난의 경험도, 차별의 경험도, 참사의 경험도 다 몸에 새겨진다. 그 ‘경험들’은 고통이고 사회적 고통이다. 그러니 누가 폐암이면 담배를 피워서 그렇다는 (지금의 의료 수준에서는) 동어반복 같은 ‘원인’을 말하는 데 그치지 말고 금연을 어렵거나 무의미하게 만드는 ‘원인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 개인의 의지 박약을 탓하는 것은 각자 하는 일이고 나라라면 사회라면 구조적 사회적 원인을 찾아 정책으로 대응해야지.

같은 말을 사회학, 여성학이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간명하게, 이토록 설득력있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가 과학적 합리성의 첫째로 친 “데이터에 기초한 사고”(75)의 힘일까? 가령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세상에 학술적 언어로 존재하지 않던 트랜스젠더의 삶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들을 단단한 숫자로 하나씩 내놓도록 하겠습니다.”(228)라는 대목은 각별하게 다가온다.

단단한 숫자. 미안합니다 문과입니다 하며 통계 수업을 소홀히 했던 나로서는. 미국 실증주의 사회학이 지배하던 80년대까지의 강단사회학에 대한 비판으로 세례 받은 나로서는. 통계와 숫자는 그걸 조작하는 이들의 장난감이라 폄하했던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 단단한 숫자.

유시민도 <공감필법>에서인가 그랬듯 인문학을 하는 이들에겐 자연과학의 이야기가 (이해만 한다면) 매력 있다. 알쓸신잡 시즌 1의 주인공은 정재승 아닌가. 전혀 생소한 자연과학의 실험이나 이론을 이야기하면서 슬쩍 인문학 이야기를 건드릴 때 우리는 열광한다. 그런데 이토록 정치적으로 올바른 ‘공대 오빠’ (아니 의대 오빠?) 라니. 그러면서 하나도 잘난 척 하지 않는, 하나도 비분강개하지 않는, 이토록 구체적이고 쌈박한.

▲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刊

김승섭의 설득력은 거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조근조근 옆의 친구에게 말하듯 하는 문체를 따뜻하게 느끼고 그의 말을 수굿이 수긍하게 하는 힘은 그의 ‘착한’ 이력에서도 나온다. 그의 착함은 가령 연구를 같이 한 연구실 제자들의 이름을 꼬박꼬박 적는 데서도 나타난다.

비를 멈추게 하려는 시도들, 혁명을 믿지 않는다 한다. 그러니 비를 멈추게 하기보다 내리는 비를 함께 맞는 것이 그의 최대한의 윤리이다. 나라도 뽀송뽀송하게 있다가 적시에 나가 돕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아니. 뽀송뽀송한 상태에 익숙해진다면 빗물 한 방울 들이칠까 질색하겠지.

그의 ‘단단한 숫자’가 내리는 비를 그을 우산을 마련해 주길 기대한다. 그것은 한 특별한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그런 특별함을 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역량에 힘입을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이 뽀송뽀송함을 어디서 극복할지, 어느 ‘길’의 한 귀퉁이에 서 있을지.....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대, 홍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컬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강사를 그만 두고 다양하게 읽고 다니고 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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