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시조카가 아기를 낳아 ‘알현’하러 갔다. 혼자 사나 했더니 마흔 넘어 결혼해 어렵사리 아기를 낳았으니 집안의 경사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둘째 시누 아들 딸이 척척 결혼하고 아기 낳아 도합 다섯 명이나 안겨줬으니 아기에 대한 어른들의 갈급함은 많이 해소되었으나 자기 자식만 하겠는가.

약사 일 접고 부부가 손잡고 댄스를 배우네 중국어를 배우네 하며 즐겁게 지내는 것도 잠시, 칠십 줄에 접어들며 여기저기 잘 다치고 아프더니 급기야 병까지 얻어 우울이 감돌던 큰 시누 집이었다.

일년에 한두 번이나 할까 괴괴하던 시월드 단톡방에 신생아 사진 찍어 올리고 동영상 찍어 올리고 아주 난리가 났다. 걸어서 왕복 한 시간 거리의 딸집에 부부가 매일 출근하는 모양.

별 도움도 안 되는 산후 조리사 내보내고(자기는 아기 돌보미라며 아무 일도 안 하고 애만 안고 있더란다. 자꾸 안아줘 ‘손 타면’ 아기도 힘들도 엄마도 힘든데.....) 혼자 힘든 딸 돕는다는 명분도 있으니 얼씨구나 나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때마침 날도 쌀쌀해져 선물로 우주복 한 벌 샀다. 예방접종이니 뭐니 해서 나들이 할 일이 있을텐데 얼굴만 빼꼼 내놓고 온 몸을 감싸는 우주복이 요긴하겠다 싶다.

아기 옷 매장을 오랜만에 둘러보니 내 아이 키울 때보다 다채로워진 느낌이다. 오가닉 브랜드가 생겨 있는 게 시절이 나아진 건가 나빠진 건가?

잔뜩 기대를 안고 들어섰는데 아기가 자고 있어 김샜다 흐흐. 부모 입장에선 아기가 쌔근쌔근 자는 게 최고 좋은 일이지만 아기 한 번 안고 귀도 잘 안 트인 아기 깍꿍깍꿍 하고 싶은 방문객 입장에선 그리 반갑지 않은 일이다.

잘 자고 있는 아기 흔들어 깨울 수도 없고 (단잠 덧들여 놓으면 후환이 장난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주위 사물에 눈을 대니 내 시절과 다른 모습이 여럿 보인다. 알록달록한 모빌만 많던 시절, 나는 배운 엄마랍시고 흑백 모빌을 달고 잘난 척 했는데 이제 흑백모빌은 일반화된 모양.

▲ 육아용품 전시회를 찾은 한 예비엄마가 아기침대에 달린 모빌을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아기 침대에 바퀴가 달리고 그 앞에 기저귀니 가재 손수건이니 하는 것들을 정리하는 삼단 정리대에도 바퀴가 달렸다. 빽빽 울어대는 우리 딸 키울 때 애용하던 흔들의자(?) 흔들요람(?)은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전기로 위아래 좌우로 움직여주는 바운서라는 것도 있는데. 흠 이 집 아기는 별로 울지 않는군.

거실에 네모난 무엇이 있어서 강아지 가둬 놓는 건가 했더니 아기 노는 곳이란다. 지붕 없는 아기 텐트랄까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뒤집기하고 기기 시작하고 뭐라도 잡고 일어나려 할 때 집안 잡동사니들 다 소개시키고 가구 모서리에 뭐 덧대고 했었는데 아기를 그 ‘텐트’ 안에 넣어 두면 한 시간 정도는 엄마가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 있을 것 같다.

비좁아서 오래 있게 하면 안 좋을 것도 같고 아기의 입장에서 너무 큰 세상이 부담되니 이 정도가 맞춤할 것도 같고.

요즘은 (사실 그런지 꽤 됐다) 유모차 호사가 심하던데 아직 없겠지? 했더니 사촌한테 받아놓은 좋은 게 있단다. 아기를 늦게 낳으면 이런 게 좋군, 어지간한 건 다 물려받아 쓸 수 있으니.

신문물의 감격을 느낀 것도 있다. 분유 타는 물 온도 맞추려고 손바닥 뒤집어 맥 있는데 한방울 떨어트리라는 것은 얼마나 원시적인 방법이었는가. 이제 물을 끓여서 맞춰진 온도에 유지시켜 주는 전기 포트가 있다.

▲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서울베이비키즈페어를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출산, 육아용품을 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나 봉사 하는 곳에서는 아직도 물 끓여 식혀서 보온병에 보관하며 분유를 타는데 이런 걸 하나 사갈까? 아니 전기 낭비일까? 잠시 고뇌의 시간을 보내던 중 오늘의 주인공이 기침하셨다. 너도나도 안겠다고 난리니 고이 간직한 비장의 무기를 꺼낼 밖에.

나 베이비박스 다닌 지 삼년 됐다! 고로 아기 전문가다! 이 멘트 하나로 모든 후보를 단숨에 제치고 아기를 손에 넣는 데 성공. 흐흐 영악한 것. 생각지 못하고 털옷을 입고 가 아기를 몸에 착 밀착시키지 않고(행여 코로 털이 들어갈까 싶어) 약간 거리를 둬 엉거주춤하게 안았는데도 바라보는 좌중은 아기 안은 자세가 안정됐다느니 역시 다르다느니 하면서 일순위 뺏긴 걸 자위한다.

아기는 그 후로 다음 순번이 오길 고대하던 이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품을 순회 공연하고 내키지 않았을 외삼촌할아버지(?) 품까지 위로 공연을 한 다음 약간 스트레스 받았다는 기색을 보이며 아빠 품으로 골인하여 칭얼칭얼대는 울음 소리로 잠시 목소리를 들려 주시고 곧이어 순하게 잠드셨다.

어른들은 본격적으로 아기 칭송의 이야기 잔치를 벌이기 위해 파스타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축하의 맥주 한 잔도 빼 먹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맞아들이는 일, 참으로 행복한 일이구나. 살 맛 난다는 큰시누 바라보며 우리도 그 행복감에 감염되어 하릴없이 들떠 주말을 보냈다.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려대, 홍익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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