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신문 기사 제목 하나가 직진해 내 가슴에 꽂혔다.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가 새 앨범 쇼케이스에서 한 말. “여섯 멤버가 목숨 걸고 했다고 할 만큼 열심히 했다.” 기사 제목은 “목숨 걸고 열심히 했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아아 제발 목숨 좀 걸지 마. 제발 기사 제목 좀 그렇게 뽑지 마.

물론 한 멤버가 탈퇴하고 해체 위기에 놓였다 나머지 여섯 명이 재계약을 하고 새로 정비해 첫 앨범을 냈으니 비장한 마음이야 오죽했겠냐만.

샤이니의 종현이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연상인가. 아이돌에 밝지 않은 내게 샤이니나 인피니트는 비슷한 연배로 느껴진다. 검색해보니 둘 다 89년에서 93년생들로 구성됐다. 20대 중후반 청년들이 말하는 ‘목숨 걸고 열심히’는 도대체 어떤 열심일까.

tvN의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목공장 순돌이’의 ‘열심’이 그런 걸까.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먹고 자며(안 자며) 밤에는 공무원 시험공부, 그 와중에 사장 뒤치다꺼리까지 하다 한밤중 졸음운전, 결국 사망사고, 사장놈은 보험도 없고 나 몰라라.

하여 교통사고 가지고 감방 살고, 거기서도 열심히 살아 가석방 대상 되고, 모처럼 희망적으로 들뜨고, 원대한 일로 무지 바쁜 엘리트 관료는 1점 모자란다고 단칼에 자르고, 희망은 깨지고, 맨날 죄송할 줄만 알지 어디 원망할 줄은 몰라 자기 머리만 자꾸 쪼개지고, 약을 먹고, 그래도 아파 또 먹고, 자꾸 먹고, 쓰러지고, 음독자살로 오해받고,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냐고 울부짖고..... 영웅의 ‘슬기로운’ 개입으로 그는 감방에서 나간다.

88만원 세대가 아니라 이젠 77만원 세대란다. 그 신문기사를 유심히 보니 20대가 그렇다는 얘기다. 남자라면 군대 갔다 와 4년제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면 휘딱 30대일 듯. 그러니 우리나라의 일하는 20대란 그러한 (유사)정규직 트랙에 오르기 전이나 아예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한 이들이기 십상.

어쩌지 그거 벌어서 생활이 되나 주거비만 안 나가면 어떻게 해 볼텐데 그래도 최저임금이 올랐으니. 이어지는 대화를 자르고 들어오는 볼멘 소리. 현장 인부 일당이 18만원이야. 그런데도 인부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다고. 현장 가 봐 다 늙다리들이거나 외국인 노동자뿐이지. 그걸 다 걔들이 벌어 해외 송금한다고.

▲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열린 6인조 그룹 '인피니트' 정규 3집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하고 있다./뉴시스

젊은이들, 현장일 안 하지 않는다. 몇 달 바짝 벌어 목돈 만들 때. 그러나 그걸 계속 할 수는 없다. 복학하고, 취업 준비하고, 그러려면 학원이라도 다녀야 한다. 편의점 알바가 에어컨 빵빵하고 깨끗한 옷 입고 실내 근무해서, 아니 총합하여, 쉬워서 선택하는 게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과 병행할 수 있어서이다.

상승(?)에의 욕망을 접고 현장 일 좀 하고 살자고? 떨어져 죽고 질식해 죽고, 치어 죽는데? 죽지 않고 살아남아 벌어도 쥐는 돈은 적고 사회적 위신은 바닥인데? 일이 힘들면 돈을 많이 줘야 한다. 일에 고유한 즐거움이 많지 않다면 다른 것으로 보상해야 한다. 이건 그냥 간단한 산수 같은 거다.

<KBS 다큐1>을 보니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무거운 백팩 메고 대중교통 이용하여 새벽부터 출근해 장시간 일하던데. 관용차나 차량유지비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니 평소 받는 수당(연봉)도 많지 않을 듯. 그러나 그들은 밝고 씩씩하고 얼굴이 반짝인다. 공복이라는 그들 일에는 고유한 즐거움이 굉장히 크다.

▲ tvN의 <슬기로운 감빵생활>/tvN 홈페이지 캡처

청소부라면? 깨끗해진 거리나 화장실을 보며 뿌듯해 할 수도 있지만 청소 일 자체에 내재한 즐거움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그 일은 그러므로 돈이나 사회적 평판이나 화끈한 동료결속과 직장 안정성 같은 대체 보상이 결부되어야 한다.

건설 현장 노동자라면? 이거야말로 “목숨 걸고” 하는 일인데 일이 힘든 것을 넘어 수시로 죽어 나간다면 그건 일자리가 아니다. 강제노역이지. 그것을 요즘 젊은이들 어쩌고 하는 사람들 제 자식마저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로 만들어야지. 그러려면 무엇보다 안전해야 한다. 영세한 소규모의 현장까지 똑같은 안전 기준이 지켜지는.

그리고 (그 굉장히 높다는) 일당 따박따박 제 때 돈으로(!) 주고 숙식비나 그런 걸로 알겨먹지 말아야. 일 끝나고 지내는 숙소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처럼 엎어지고 포개져서 자지 않고 퇴근 개념이 분명하고 프라이버시가 가능한 생활환경을 구비해야겠지.

이런 것 저런 것 갖추어 그 일을 할 만한 일로 만들어 주려 노력하지 않은 채 요즘 젊은이들의 나약함만 읊조린다면 저 ‘목숨 걸고 열심히’는 그럼 어찌 된 거냐고 묻고 싶다. 예술 하는 이들의 남다른 치열함? 마이크 잡은 젊은이가 또래들 멘탈을 대변한 것으로 보이는데.

젊은이들이 좀 덜 열심히 살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을 하던 좀 덜 결사적으로 해도 되었으면 좋겠다. 피임약까지 먹어가며 100킬로미터 행군하며 시작하면 은행에 더 충성하나? 왜 이런 없어도 되는 처절함까지 그 무슨 호연지기마냥 도처에서 강요되는지 모르겠다.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대, 홍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컬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강사를 그만 두고 다양하게 읽고 다니고 보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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