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제사를 지낸다 하면 제삿상을 차리는 수고만 떠올리지 집을 정기적으로 오픈하는 부담은 미처 생각들을 못한다. 나의 경우 두 번의 기제사까지 일 년에 네 번 제사를 지내는데 상차림은 아주 기본적인 것들 몇 가지 조리하고 갖가지 과일로 드넓은 상을 채우는 식이어서 많이 힘들지는 않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가장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게 전이었는데 여러 가지 많이 부쳐 이집 저집 싸줘 봐야 먹지도 않고 냉장고에서 굴러 다닌다고들 하여 올해부터는 고기 생선 야채 세 가지만 상에 올릴 양만 딱 만들었다.

사람이 힘든 것이 몸이 힘들어서만이 아니라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불편해서(시쳇말로 스트레스) 힘들 듯, 제사상 차리는 것보다 힘든 것은 그 제삿상이 놓이는 장소, 즉 나의 집이 다른 이의 시선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대목이다. 오픈 하우스의 오픈의 대상이 ‘시월드’ 중 가장 어려운 아버님 형제분들과 그 자손들이니 말이다.

십여년 치뤘으니 이제 좀 익숙해질만도 한데 제삿날을 앞두고는 잠도 잘 안 오고 신경이 예민해진다. 한바탕 대청소는 물론이요 누가 오고 안 오는지 체크하여 그에 따라 선물받은 그림이나 그릇을 적절히 배치하는 일까지, 신경 쓸 항목이 꽤 다양하다.

마당 있는 집으로 옮기면서부터는 ‘오픈’의 범위가 마당으로까지 확장되는 ‘의도치 않은’ 결과도 감당해야 한다. 가령 작년 추석에 작은 아버님이 다닥다닥 열린 꽃사과를 보며 무척 즐거워하셨는데 올해는 어찌하여 하나도 안 달려 있는공?

관찰자의 시선으로 내 집 마당을 보니 무슨 소규모 아마존 밀림 같다. 폭염 속에 애지중지하는 것들은 죽고 반갑지 않은 것들은 기승을 부리며 뻗어나간 것. 좀 볼만 하게 만들려니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폭염엔 모기도 뜸하더니 사람 살 만 한 기후가 모기에게도 살 만한지 잡초라도 몇 개 뽑으려면 귀한 음식 왔다고 아주 죽을뚱 살뚱 달겨든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농사짓는 김태리가 얼굴 뽀사시한 것까진 용서하겠는데 모기 물린 자국 하나 없는 팔 다리엔 흥칫뽕이 절로 나온다.

잡초는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잡초, 있다. 민들레 생명력 누가 칭송했나. 잔디밭 한가운데의 민들레는 정말 복잡한 심경을 불러 일으킨다. 자리를 넓게 차지하며 뿌리내리는 것을 방치했다가는 잔디밭이 훌렁훌렁해진다.

▲ 제비꽃/뉴시스 자료사진

제비꽃? 조동진 노래에서는 그렇게 청초하고 고운 것 같은데 내 마당엔 꽃은 안 피고 잎만 무성한 제비꽃 천지니 그냥... 잡초다. 제비꽃 군락을 손댈 때는 항상 조동진을 흥얼거리게 된다. 그들 입장에선 이 무슨 아이러니. 초토화는 어림없다. 대강 수만 줄인다.

잡초는 없다며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해주고 싶건만. 그러나 타샤 튜더도 영화에서 보니 “이 잡초의 좋은 점은 잘 뽑힌다는 것 하나예요” 하더라. 그 후 잡초 뽑는 내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졌다. 맞아 잡초는 있어.

뽑을 것이냐 살릴 것이냐, 잡초로 취급할 것이냐 이름은 모르되 그 어떤 식물로 볼 것이냐의 기준은 무엇보다 일차적으로는 내가 심었냐 아니냐이다. 사다 심었거나 다니다 꽃씨를 얻어와 심었거나 사온 화분에 곁다리로 살아나서 마당에 옮겼거나 여하간 나의 수고가 들어간 것은 귀한 식물이다.

알뿌리 식물은 파는 곳도 많지 않아 양재동 꽃시장까지 행차하여 사다 심은 목단은 말할 것도 없고 목수국이나 국화 같은 것 그리고 어찌어찌 살리는 데 성공한 나팔꽃과 패랭이꽃, 사랑초 같은 것을 애지중지하는 이유.

저 혼자 자라난 것은 일단 요주의 인물/식물. 그러다가 너무 번식력이 왕성해 그 일대를 뒤덮는 형국이면 잡초로 취급한다. 가령 뱀딸기. 그가 왜 뱀딸기인지 보면 알게 뱀 기어가는 형국으로 뻗어가는데 처음에는 어여삐 보다가 너무 도처에 퍼져서 미워지기 시작했다. 철저히 근절하기보다는 듬성듬성 정리한다.

▲ 노란 아기 기린 꽃과 나팔꽃/뉴시스 자료사진

실유카도 어떤 이가 마당에 심는 거 아니라고 하더만 원래 있던 것이어서 놔두고 봤는데 하얀 꽃이 검색해 나오는 어여쁜 모습이 아니고 지저분하게만 피어나 회의적으로 보다가 왕성하게 뻗어나가 대여섯 대로 늘어나는 것을 보고 한 대만 남기고 다 파냈다.

못 보던 나무가 이파리도 커다란 것을 달고 부쩍부쩍 자라나 옆의 오엽수를 못 살게 굴어 알아보니 뽕나무란다. 왕성하게 먹어줄 애벌레가 없을 때 그 이파리는 쓰레기다.

허리 굽혀 깔짝대는 것과 차원이 달라 결국 나무 가지치기는 동네 조경사에 맡겼다. 잔디도 깎아 주고 마무리로 약도 친다니 한 시름 논 기분. 마당 구석에 각종 죽여버린 식물들 있던 플라스틱 화분들 몇 개 가져가랬더니 쓰레기봉투 내놓으란다. 난 조경사에서 쓸 일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건데.

며칠 후 그 구석이 뭔가 모르게 휑한 기분이어서 기억을 되살리니 알로카시아 화분이 없어졌다. 집 안에서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과습으로 괴롭다가 결국 다 썩어 보여 마당으로 내 놓았는데 바깥 공기와 햇볕 속에 되살아나 무럭무럭 자라서 오며가며 기특하게 여기던 것인데. 그 화분은 거금 몇 만원을 주고 산 도자기 화분인데 어찌 플라스틱 화분과 헷갈렸는지?

▲ 영화 리틀 포레스트/뉴시스

문자를 하니 답이 없다. 주말이니, 넘겼다. 월요일 아침나절 느지막이 전화하니 전화를 안 받는다. 하소연하니 남편이 나서 전화한다. 전화를 받는다. 헷갈린 것 같으니 되돌려놓으라. 그날 저녁 인부들이 가져다 놓았다. 사장님이 갖다 놓으라고 하셨다면서요 어쩌고 하면서. 버릴 걸로 알고 가져갔으면 버리지 왜 끼고 있다 토해 놓누.

동네의 여러 조경사 가운데 저희를 선택해 일을 준 것도 나고 돈을 치른 것도 나고 내년에 일을 줄지 말지 결정할 것도 나인데 내 문자나 전화는 씹더니 내 남편의 전화에는 득달같이 반응한 거다.

왜 남자 말은 잘 먹힐까? 얻어 터질까봐 겁나나? 여자 말은 말 같지 않고 남자 말은 말 같나? 이 무슨 세세하고 일사분란한 남성연대인지 모르겠다. 여자 말은 수다라 하고 남자 말은 토론이라 하는 꼴을 여럿 봤거늘, 내 꼴이 그 꼴이구나.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대, 홍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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