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미영 칼럼니스트] 미국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은폐된 홈리스 이야기이다.

▲ 김미영 칼럼니스트

홈리스면서 홈리스 아닌 것 같은 홈리스. 홑엄마가 여섯 살 정도 되는 딸을 데리고 싸구려 모텔에서 살며 일주일마다 따박따박 돌아오는 숙박비를 감당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이야기.

그 집도 아닌 숙소란 곳은 하필이면 디즈니랜드 근처의, 가당치 않게 예쁜 연두색, 분홍색, 보라색으로 칠한 시멘트 건물 방 한 칸. 침대에선 벼룩이 나오고 침대 위 말고는 앉을 공간도 없는, 온갖 반짝이는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치장하여 집 흉내를 낸 방 한 칸.

비슷한 처지의 동년배 아이들 서너명이 그 예쁘고 을시년스런 공간에서 될 수 있는 한 창의적으로 다채롭게 놀며 덥고 긴 하루를 보낸다.

주차장에 새롭게 들어온 차 앞 유리를 겨냥해 이층에서 침뱉기, 풀장에서 가슴을 노출하고 있는 늙은 여인 훔쳐보며 놀리기, 버려진 집에 들어가 공상의 자기 집 놀이하기, 그러다 가구를 부수고 벽난로에 불 붙이다 진짜 불도 내고.

저러다 무슨 사고가 날까 조마조마하면서도 천진스런 아이들의 모습에 속없이 웃기도 하고. 비행기가 낮게 날고 아동성애자가 배회하고 잡초마저 띄엄띄엄 자라는 곳. 얇은 운동화 바닥에는 너무 딱딱할 것 같은 아스팔트 길을 달리며 아이들은 꾸역꾸역 논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 소프트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몇 센트씩 구걸해서 마련한 돈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 돌려먹기.(이건 뭐 청바지 돌려입기도 아니고 원.) 새로 친구 먹은 아이에게 첫 입을 선사하고 세 명이 천천히 돌려먹는다.

그럴 경우 가령 욕심껏 한 입 왕창 베어 먹어 옆에서 기다리던 자기 아이 울리는 아빠들 꽤 있을 거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자기 차례가 오면 아주 조금씩 먹는다. 왜? 욕심 부려 많이 먹고 싶을텐데 왜?

▲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뉴시스

아껴 먹는 거다. 맛있고 소중한 아이스크림을. 또 그것도 놀이이고 놀이를 길게 연장하고 즐거움을 길게 연장하고 싶은 거다. 아주 여러 번 순번이 돌아야 자기 팀이 승리하는 게임을 하듯 신중하게 협동적으로 아이스크림을 핥아 먹는 그 모습. 마지막 남은 과자 꼬다리까지 여러번에 걸쳐 나눠 먹는다.

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 ‘괴물’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그 모든 난리 불행을 겪은 후 새롭게 구성된 가족 세 명이 둘러앉아 밥 먹는다. 혈육인 삼촌과 조카 사이에 새롭게 들어온 한 식구, 그 아이가 밥을 먹고 반찬으로 참치를 먹는데 아아 정말 아주 조금 떼어 먹는다.

서툰 젓가락질로 참치 캔을 아주 조금 한 꼬집 집어 먹는 아이. 가난과 눈칫밥에 익숙한 아이. 가난하지 않았을 봉준호 혹은 아무개 작가가 어찌 그리 디테일에 강한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도 비슷하게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 있었다. 이지안이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귀가해 주린 배를 채우는 장면. “밥 좀 사주죠” 하고 아저씨께 얻어 먹는 호사를 누린 사나흘 빼고, 파견직인 주제에 좋은 인품의 상사 덕분에 회식 자리에 말석이라도 차지한 하루 이틀 빼고.

투잡으로 설거지하는 외식업체에서 좀 깨끗하게 남겨진 음식을 중간중간 집어 먹거나 규정을 어기고 눈치껏 음식을 싸오는 데도 실패한 날, 많은 날. 그의 늦은 저녁은 끓는 물에 타는 몇 개의 커피 믹스이다. 그것도 일하는 회사에서 적당히 꿍쳐 온.

▲ ‘나의 아저씨’ tvN 방송화면 캡처

그나마 굶는 것보다 나을까? 프림의 우유 성분과 설탕이 있으니 곡기가 있는 건가? 여기서 영양불균형을 얘기하면 개발에 편자인가?

늦게 들어와 드라마 시청에 합류한 딸에게 구구절절히 설명하며 그 연민? 그 안타까움?의 대열에 동참할 것을 기대했는데 20대 젊은 딸은 50대 아줌마 아저씨의 달콤한(?) 슬픔에 초를 친다. 그것은 아이유가 광고하는 커피야 얼마나 밝고 행복한 얼굴로 광고를 하는데.

아아 외설적일만큼 효율적인 체제로고.

가슴이 찢어졌던 중년의 부부는 머쓱하여 서로 외면하였더란다.

※ 김미영 칼럼리스트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고대, 홍대 등에서 강사로 일했고 학술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현대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로 관련 책과 논문을 여럿 발표했으며 섹슈얼리티 문제도 연구했다. 광우병 사태 즈음에 한겨레신문에 컬럼을 연재한 경험이 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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