敬이란 마음으로 마음을 主宰하는 일

이윤희 퇴계학연구원 연구위원l승인2017.02.06l수정2017.04.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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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이윤희 퇴계학연구원 연구위원] 퇴계 이황 선생은 유가의 수양론을 총정리하여 경(敬)이란 개념으로 일관된 체계를 세웠다.

그리고 그 경을 성취하는 공부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조선 선비 정신문화의 기초를 놓았다.

그 덕택으로 우리는 몇 백 년 동안 도덕 높은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살 수 있게 되었다.

▲ 경북 안동시 도산서원에서 열린 '도산별과(陶山別科)' 재현행사에서 과거시험에 응시한 유생들이 시문을 짓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퇴계 선생이 어느 친구에게 드린 편지에서 ‘군자는 일신(一身)을 주재(主宰)하려 하지만 그 일을 맡은 마음이라는 것이 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어디로 튈지 모르고 아니 가는 곳이 없다. 무언가 또다시 공을 들여 마음 또한 주재하여야 하는데, 그 공을 들이는 일이 바로 경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다시 말하면, “마음으로 마음을 주재하는 일이 경이라는 것이다.”

퇴계 선생이 주요 제자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가 대부분 경 공부를 진척시켜 나가는 요결(要訣)이나 공부 도중에 부닥친 난관에 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 분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읽노라면 남의 연서(戀書)를 읽는 듯, 어느 편지로부터도 내가 바로 지금 경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지침을 얻기가 어렵다.

유가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공부를 해보고 싶겠지만, 들어가는 문을 찾기가 쉽지 않다.

퇴계 선생이 ‘관심(觀心)’이란 시에서 묘한 느낌을 읊었듯이 경공부를 하려면 우선 마음으로 마음을 살펴야 한다. 마음을 살피려면 마음이 드나드는 문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것인데, 육관(六官)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그곳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이 눈(眼)이다. 눈을 지키면서 그곳을 빠져나가는 마음을 살필뿐만 아니라 거두어들이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말로서 회광반조(回光反照)라는 것이 있다. 눈에서 나가는 빛을 되돌아오게 하여 거꾸로 비춘다는 말이다. 캄캄한 밤에 들짐승을 만나면 볼 수 있듯이 눈에서는 빛이 나가는데, 이것이 다름 아닌 마음이다.

눈빛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간다. 눈빛을 되돌릴 수 있으면 마음도 되돌린다는 말인데, 사람이 눈빛을 180도 되돌리기는 어렵다. 눈빛이 나를 떠나서 바깥으로 달아나 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게 하는 경우를 넓게 포함하여 눈빛을 되돌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일반적으로 아랫배나 배꼽이나 코끝에 눈빛을 모으는 훈련을 통하여 그 요령을 익힌다.

눈빛을 되돌릴 수 있으면 눈으로 드나드는 마음을 살필 수 있고 잡을 수 있으며 나아가서 주재할 수 있어서 마음으로 마음을 주재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이치가 眼耳鼻舌身意(六官) 모든 문에 타당하겠지만, 눈이 그중에서 가장 큰 문이므로 경공부로 들어가는 문 가운데 가장 큰 문도 결국 눈빛을 되돌리는 데 있다 하겠다.

그리고 드나드는 뭇 마음을 살피려면 눈빛을 되돌릴 뿐만 아니라 쥐를 노리는 고양이 같고,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 같이 주의력을 모아서 지켜야 한다. 이렇게만 갖추어지면 경공부의 문으로 들어서서 바야흐로 경공부에 착수, 하수(下手)하게 된다.

문으로 드나드는 통행객이 적으면 살피기에 좋겠지만 그것은 외부 환경이나 닥친 사무 등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지키고 있으면서 살피는 사람만은 조용해야 하고 전일(專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사람(마음)이 딴 전을 피우고 오락가락해서는 임무를 완수할 수가 없다.

살피는 마음이 고요해지면(靜·정) 물결 잔잔한 호수에 내 얼굴이 비치듯, 드나드는 마음들이 사진으로 찍힌다. 자연히 살피는 사람이 조용해져서 마치 CCTV를 설치해 놓은 것 같을 수가 있다.

敬공부는 靜할 때나 動(동)할 때나 내(內)나 외(外) 어느 하나에 국한됨이 없이 두루 행해져야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動할 때보다는 靜할 때에 보다 쉽고 보다 깊게 행할 수가 있다. 성문으로 드나드는 통행객이 적을수록, 없을수록 좋은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 세계에서 靜을 이루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정좌(靜坐)이다.

입문을 한 다음, 지속적으로 마음이 마음을 주재하는 敬상태를 유지해 나가야 비로소 퇴계 선생과 제자들 사이에 오고간 편지들을 이해할 수가 있고, 스스로도 그와 같은 편지나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윤희 퇴계학연구원 연구위원  webmaster@econ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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