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성림 칼럼니스트] 이렇게 저렇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남들이 나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가끔 듣게 든다. 그것이 때로는 좋은 말일 수도 있으나 듣기에 거슬리는 거북한 이야기들도 있기 마련이다.

대체로 좋은 말을 들었을 때는 별 감흥 없이 넘기어 가슴에 담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밤잠을 설치게 하거나 폐부(肺腑) 속에 깊이 남기게 되는 말들은 대체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 대전 서구 탄방동 도산서원(대전시문화재자료3호)에서 열린 '충효예교실'에서 초등학생들이 예절교육을 받고 있다./대전 서구청 제

그럴 때, 장고(長考)에 들어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묵상에 들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나로부터 기인하였음을 찾아내고 인정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진심으로 겸손하지 않았거나, 자기중심적이었거나, 타인의 정서를 살피지 않고 염치없는 행동을 한 그런저런 요인이 분명 나에게 있었을 것이다. 인정하고 뼛속 깊이 성찰할 일이다.

남이 나에게 잘못이 있다고 일러주면 기뻐할 것이 셋이다. 내가 나에게 잘못이 있음을 알아 고치게 되는 것이 그 하나이고, 남이 나의 잘못 때문에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남이 나를 일러줄 만한 사람으로 여겨 일러주었다는 것이 또 그 하나이다.

(人告之以有過, 有三可喜. 吾知己之有過而當改, 一也. 人不爲吾之過所瞞, 二也. 人以吾爲可告而告之, 三也/인고지이유과 유삼가희. 오지기지유과이당개, 일야. 인불위오지과소만, 이야. 인이오위가고이고지, 삼야) -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 1832-1893)

성재 유중교 선생이 이렇게 이르지 않는가. 기뻐할 일이 세 가지나 된다고 말이다. 나의 잘못을 일러주는 바로 그 사람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슬기롭게 받아들여야 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몸에는 좋다고 하였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듣기에 거북하나 내 행동을 바르게 해줄 수 있다고 하였다.

미처 내가 깨우치거나 느끼지 못했던 잘못을 지적해 주어 고치도록 하게 하니 첫째 기쁨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상대방의 충고를 받아들여 고쳐야 한다. 또한 나의 잘못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타산지석을 삼아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게 하니 그 또한 기쁘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그렇듯이 타인의 잘못을 스승 삼아 그렇게 하지 않도록 고쳐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최소한 남들에게 손가락 받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또한 나를 상대하지 못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개선의 여지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 일러주었으니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쓰고 있다. 다행이다. 나를 사람값 못하는 자로 여겨 밀쳐 두지 않고 일러줄 만하다 여겼으니 다행인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나의 잘못을 지적받는다는 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안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항변을 하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조그마한 원인이라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경우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지 말고, ‘그래, 내가 좀 그런 점이 있지’ 라고 담담히 수긍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을 일이다.

한결 마음이 온화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탓하는 그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를 깨우쳐 주게 하여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한다고 생각할 일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큰 산은 작은 돌멩이 큰 바위 등 온갖 것들이 끌어 모아져서 이루어진 것이다.

크면 큰 대로의 쓰임새가 있듯이, 작은 흙부스러기는 그것대로의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로 큰 산을 이룰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큰 바다 역시 작은 개울물, 큰 물줄기가 다 모여들 수 있도록 수용하고 받아들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하나의 존재에게서 듣는 소리를 귀중히 여길 일이다.

낭패를 보고 나서 깨우치기보다 좋은 글을 읽고 말씀을 듣고 묵상하여 먼저 깨우침도 좋으리라.

성재 선생의 또 다른 표현, ‘진기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해야 하는 것’(喜之如得奇貨·희지여득기화)이 당연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씀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늘 평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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