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형섭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 실학(實學)은 조선 후기 새롭게 일어난 학문이다. 출세를 지향하고 윤리와 관념을 주로 했던 조선의 유생들과 달리, 실학은 자기 시대의 과제에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한 학문이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고 과거시험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였다. 당시 과거가 출세(出世)의 사다리이자 영광의 길로 인식되었다. 그러면서 현실 생활과 점점 멀어졌다.

과거시험은 15~20여 년의 준비 기간, 유교 경전의 암송과 논술로 짜여진 시험 과목 등으로, 가히 ‘시험지옥’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과거시험의 부정이 점점 심해져 갔고, 그 속에 공부의 즐거움은 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업을 가지거나 돈버는 것을 공부의 목적으로 생각한다.

▲ 한국고전번역원은 지난해 10월 12일 성호전집 5책과 9책이 마지막으로 출간됨으로써 2006년 8월 처음 시와 부(賦)로 이뤄진 권1을 번역한 이래 11년 만에 총 17책으로 완간했다고 밝혔다. ‘성호전집’은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의 대표적인 저술로 유교 경전 해석상의 여러 문제, 이단, 예론과 제도개혁, 서학, 사론 등 다양한 내용을 싣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학생들은 이것밖에 왜 공부하는지 모른 채 학습을 강요당하지만, 그 해답을 찾지 못한다. 우리의 공부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실학자들은 구태를 벗고 새로운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애썼다. 아이 같이 순진 진실한 눈으로, 일상생활에서 깨침을 얻고자 했다. 그래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민했고 세상을 위한 공부를 실천했다.

조선에서 공부하기

과거는 조선시대 시험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이다. 특히 문과(文科)에 합격하는 일을 ‘등용문(登龍門)’이라 불렀다. 어사화를 꽂고 금의환향하는 일은 조선 유생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영광의 길이었다.

과거는 오늘의 느낌으로 표현하자면, ‘출세의 사다리’, ‘고난의 가시밭길’, ‘시험 지옥’이라 할 수 있다.

과거제도(문과)는 3년마다 시행된 정기 시험(식년시)과 국왕의 즉위, 왕세자의 탄생 등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시행된 부정기 시험(별시, 증광시 등)으로 구분된다.

그 시험은 유교 경전의 암송 및 이해도를 평가하는 ‘구경(講經)·의문(疑問)’, 문학적 재능을 평가하는 ‘과시(科詩)·과부(科賦)’,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문장작성 능력을 평가하는 ‘과표(科表)’, 현실문제 및 역사 사실에 대한 질문에 해결책을 논술하는 ‘대책(對策)’ 등이 출제된다.

이러한 시험을 대비하여 유생들은 《소학(小學)》·《대학(大學》부터 유교 경전을 학습하고, 《전국책(全國策)》 등 중국 역사서를 학습하여 역사속 흥망성쇠의 이치를 살피고, 《고문진보(古文眞寶)》 등 문학적 능력을 배양한다.

과거를 준비하는 유생은 이러한 동양 고전 수백 권을 이해하면 비로소 과거에 급제할 수 있다.

조선의 유생들은 잡념을 떨치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산사(山寺)를 찾아 독서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이었다. 유년기에 가정에서 기초적인 학습을 마무리하고 10대 이후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갔다.

산사에 머무르며 동료들과 시와 부를 짓는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 학습하였고, 고을 향교에서 개최하는 백일장에 참가하여 글재주를 뽐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공부한 유생들의 합격비율과 연령대 등을 살펴보면 입시지옥이 따로 없었다. 조선시대 과거 합격자 수는 문과는 1만4,600여 명(연평균 30명), 생원·진사는 4만7,000여 명(연평균 100명) 정도이다. 그리고 이들 합격자의 평균연령은 문과 36.4세 생원 진사 34.5세로 조사되고 있다.

“과거 급제는 하늘의 뜻(천명·天命)에 달려 있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30명 내외로 선발하는 정기 시험은 고난의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또한 조선후기 과거의 부정과 폐단으로 가난한 유생들은 시험 준비로 일생을 허비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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