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가 손자녀 가르치는 격대(隔代) 교육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l승인2017.03.03l수정2017.04.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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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맹자』에 ‘고자역자이교지(古者易子而敎之)’라는 말이 있다. 항간에서는 ‘역자교지(易子敎之)’라고 하는데, ‘자식을 서로 바꿔서 가르친다’는 뜻이다.

사실 부모의 경우 장차 자신의 지위를 물려받을 자녀에게 강한 성취 욕구를 갖고 있는 까닭에 자녀의 양육에서 감정적인 대응, 곧 질책이 앞서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자녀는 부모에게 반감을 갖기 쉬우며. 이는 곧 교육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이런 배경에서 유가(儒家)에서는 친척이나 벗 등에게 자녀들을 보내서 가르침을 받도록 하였다.

▲ 지난달 29일 울산박물관 광장에서 열린 설맞이 전통문화행사에서 할아버지와 손녀가 연하장을 함께 만들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도 자녀들의 교육을 조부모에게 맡기곤 했는데, 특히 남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조부모에 의한 자녀교육의 효율성은 격대(隔代)가 지니는 특성에서 비롯된다. 즉, 지위와 권리를 직접적으로 물려주지 않는 격대 관계에 놓인 조부모는 손자녀들의 사회적 성공에 집착하기보다는 올곧은‘ 참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손자녀를 교육시킬 때 비교적 느긋하게 관망하는 편이고, 또 조급한 감정표출이 아니라 다소 절제된 자세로 대응할 수 있다.

전통가옥에서 조부가 계신 사랑채와 달리 조모가 기거하는 안채는 아이들의 주된 생활공간이었다. 이런 이유로 어린 손자녀들은 가사에 바쁜 어머니 대신 조모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게 되고, 이로써 자연스럽게 손자녀들의 보살핌은 조모의 몫으로 돌아갔다.

조모는 어린 손자녀의 배변훈련에서 옷 입기, 밥 먹기, 말버릇뿐만 아니라 각종 놀이와 동요 등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자식 하나 키우면 반의사 된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병원이 흔치 않았던 예전에는 아이들의 크고 작은 질병을 조모들이 손수 해결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모는 손자녀들의 놀이와 동요 교사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였다. 아이가 잠들 때 이런저런 자장가를 들려줌으로써 청각을 자극시키고 리듬감과 언어학습을 위한 음소(音素)를 익히도록 해 주었다.

조모의 무릎은 옛날이야기가 구연되는 장(場)이기도 했다. 어린 손자녀를 무릎에 앉히거나 혹은 잠자리에서 이런저런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이들 대부분 권선징악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후 6∼7세 무렵이 되어 안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여아와 달리 남아는 남성전용공간인 사랑채로 옮겨 간다. 그런 다음 조부와 함께 기거하면서 이런저런 시중을 들며 가르침을 받는다. 『예기』에 ‘군자포손불포자(君子抱孫不抱子, 군자라면 손자는 안지만 아들은 안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방을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경우 아들에 대한 높은 기대치로 인해 과도한 성취욕심이 앞서기에 아들의 실수를 너그럽게 타이르기보다는 질책을 하게 되고, 이로써 갈등이 초래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부모는 한 세대를 건너뛰는 이른바 격대(隔代)의 관계에 놓이는 까닭에 조급한 대응이 아니라 보다 절제된 감정으로 손자를 가르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안채의 여아가 집안일을 거들면서 자연스럽게 가사(家事)를 익히듯이, 남아 역시 조부를 비롯한 사랑채 남성들의 일상적 삶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역할 행위를 배운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이부자리 펴고 개기, 요강비우기, 방 청소 등과 같이 조부의 시중을 들도록 하면서 효(孝)의 실천방법을 스스로 깨닫도록 했으며, 조부를 대하는 아버지 말투와 몸짓 등을 지켜 보면서 장유유서의 올바른 도리를 체득하도록 유도하였다.

그리고 손님이 방문하면 밖에서 놀던 손자를 일부러 불러들어 인사를 시키고 곁에 두었는데, 이는 손님을 맞이하는 태도 등을 보면서 응대의 방법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수기치인에 필요한 대부분의 덕목들은 문자에 의한 교육이 아니라 일상적 삶에서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였다. 이런 연유로 조부는 늘 손자를 가까이 두었다.

사랑채에서 펼쳐지는 일상적 행위를 통해 견문을 넓힘으로써 장차 군자(君子)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을 배워나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를 ‘견문교육(見聞敎育)’이라고 한다.

견문교육과 병행되었던 것은 ‘심부름교육’이다. 조부의 이부자리 펴고 개기, 요강비우기, 방청소 등도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는 조부의 시중을 드는 훈련을 통해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깨우치고 효를 실천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다가 손자가 서당에 다니기 시작하면 글과 관련된 심부름교육이 행해지는데, 이때 조부는 소소한 편지 등의 대필(代筆)을 통해 글자공부를 시켰다.

또 입춘이 되어 춘첩자(春帖字, 입춘축)를 써서 집안 이곳저곳에 붙이는 일도 손자의 몫으로 돌렸다. 비록 조부나 아버지에 비해 서투른 글씨였지만, 손자의 글 공부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통사회에서 가정교육은 일상적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이는 ‘참사람’으로 이끌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가정과 학교는 물론, 사회(직장)에서 일등이 되기만을 외치는 탓에 여기저기 뛰어난 수재(秀才)들은 넘쳐나지만, 기초적인 범절을 갖춘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올곧은 가정교육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가정교육에는 ‘사람다움의 길’이 아니라 ‘성공(출세)의 길’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조부모와 손자녀들 간에 이루어졌던 격대교육의 아득한 전통이 새삼 그리워진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webmaster@econ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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