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치마에 새긴 다산의 가족사랑

김민정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학예사l승인2017.05.04l수정2017.05.0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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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뉴스=김민정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학예사] 은평역사한옥박물관(관장 김시업)은 실학박물관과 함께 ‘다산의 하피첩, 은평에 오다’란 주제의 협력전시회를 6월 11일까지 진행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 중, 부인 홍씨가 보낸 붉은 비단치마에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적은 서첩인 ‘하피첩’과 시집가는 딸에게 선물했던 ‘매화병제도’, 다산의 대표작인 ‘목민심서’ 등이 전시된다.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전시회와 관련해 5월 21일 오후 2시 ‘다산과 하피첩 이야기’ 주제의 강연(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창작 판소리 ‘다산 정약용’ 후반부 공연(임진택, 이재영 명창)도 연다./편집자주

▲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다산 정약용은 영조 38년(1762년) 광주부 초부현 마현리(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다산유적지)에서 정재원과 해남 윤씨(공재 윤두서의 손녀) 사이에서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귀농이었으며, 4세 때 천자문을 배우고, 7세에시를 짓기 시작하여 10세에 『삼미자집』을 남겼다.

15세가 되던 해 홍화보의 딸 풍산 홍씨와 혼인하였고, 이때 서울에 처음 가게 되었다. 정약용은 성호 이익의 학풍을 계승하였으며, 누이의 남편인 이승훈을 통해 서학을 접하는 등 새로운 학문 세계를 접하며 공부에 몰두하게 되었다.

다산은 정조 7년(1783년) 22세에 생원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했다. 이어 6년 만에 문과에 합격했고,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이장할 때 정조의 명으로 한강에 배다리를 설계해 놓음으로써 임금의 총애를 받게 됐다.

거중기를 만들어 화성(수원성)을 아름답고 과학적으로 조기 축성했다.

정조 18년(1794년)에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도 북부 지방의 관폐를 척결하고, 민생의 고통을 깊이 체험하였다. 정약용은 그의 형제들이 천주교와 관련된 것이 문제가 되어, 늘 반대당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조의 총애는 계속되었고, 반대파의 공격도 거세지자 스스로 상소를 올려 동부승지를 사직하고자 하였으나 정조는 황해도 곡산 부사에 임명하였다.

정치적인 반대에도 무릅쓰고 주요 관직에 있던 정약용은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결국 남인 동료들과 함께 서학(천주교)도로 몰려 신유사옥을 당한다. 셋째형(약종)은 죽고, 둘째형(약전)과 함께 유배의 길을 떠났다.

정조 승하 이후 정약용을 비롯한 그의 형제 정약전, 정약종, 측근 이승훈, 이가환 등이 투옥되었다.(신유사옥) 정약전과 정약용은 죽음을 면해 각각 신지도(전남)와 장기(경북 영일)로 유배가게 되었다. 얼마 뒤 황사영백서사건(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1801년 신유박해를 당하자 청나라 베이징에 있던 프랑스 선교사에게 실태와 대책을 보냈다가 발각된 사건)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다시 유배가게 되었다.

다산은 풍산 홍씨와의 사이에서 6남 3녀를 낳았으나 불행히도 4남 2녀는 요절하고, 2남 1녀만 장성했다. 여섯 아이를 잃은 부부의 괴로움과 심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식들 대부분이 천연두로 죽은 아픈 경험은 훗날 『마과회통』을 저술하는 동기가 되었다. 어린 자식들이 죽는 아픔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식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유배와 함께 학연과 학유 두 아들이 벼슬길에 오를 수 없는 이른바 ‘폐족(廢族)’의 신세가 됐다.

하피첩(霞帔帖)은 1810년 정약용이 전남 강진에서 유배 중인때 홍씨 부인이 보낸 치마(시집 올때 입은 붉은 비단)를 말라 여기에 두 아들 학연, 학유에게 교훈이 될 만한 글을 적은 서첩이다. ‘하피(霞帔’는 노을[하] 빛깔의 붉은색 치마[피]란 뜻으로 조선 시대 사대부 여인의 예복을 가리킨다. 선비의 마음가짐, 삶을 풍족히 하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효도와 우애의 가치 등이 적혀 있어 정약용의 자식 사랑과 교육관을 엿볼 수 있다.

▲ 매화병제도(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뉴시스 자료사진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작품은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이다. 매화병제도는 1813년 7월 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시집가는 딸에게 그려 보낸 매화와 새 그림이다. 하피첩으로 쓰고 남은 천을 말라, 매화와 새 그림을 아우르니, <매화병제도>가 되었다. 두 마리 새처럼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집안이 번창하게 되기를 기원한 아버지의 마음을 담았다.

다산 정약용이 세상을 버린 날은 부인 홍씨와 혼인한 지 60년이 되는 회혼일이었다. 죽기 나흘 전부터 병색이 있었고, 이미 하루 전에는 가망이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는 병색이 있던 2월 19일에 회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시로 남겼는데, 부인 홍씨에 대한 정이 깊이 묻어 있다.

회근시 (병신년 2월 회혼 3일 전에 짓다)

육십 년 풍상의 바퀴 순식간에 흘러갔는데

복사꽃 화사한 봄빛은 신혼 시절 같구려

생리 사별은 인간의 늙음을 재촉하건만

슬픔 짧고 기쁨 많아 임금 은혜에 감격하네

이 밤의 목란사 소리가 더욱 좋고

그 옛날의 하피는 먹 흔적이 아직 남았네

갈라졌다 다시 합한 게 참으로 나의 모양이니

두 합환주 잔 남겨서 자손에게 물려주리라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자녀와 함께 <하피첩>과 <매화병제도>를 통해 다산의 가족 사랑과 아름다운 예술에 흠뻑취해 보기를 바란다.
김민정 은평역사한옥박물관 학예사  webmaster@econ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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