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재민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센터 수석연구원] 이스라엘의 화폐 단위는 ‘뉴 세켈(New Shekel)'이다. 세켈은 히브리어로 ‘물건을 달다’라는 의미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화폐 단위다.

세켈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화폐 단위 중 가장 오래 되었으며, 이스라엘에 있는 은행은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업무를 보기 때문에 화폐를 환전할 때는 목요일 이전에 은행에 가야 한다.

▲ 이스라엘, 20뉴 세켈, 2008 앞면 모세 샤렛(Moshe Sharett, 1894-1965)

이스라엘 20 뉴 세켈 은행권 앞면에는 모세 샤렛 초상이 표현되어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정치가이며 초대 외무장관 및 2대 총리를 역임한 인물이다.

초상 좌측에는 1946년 이스라엘이 UN(국제연합) 회원국으로 인정된 날을 기념하기 위한 히브리어 연설문과 UN 건물에 계양된 국기가 표현되어져 있다.

1894년 우크라이나 케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모세 샤렛은 가족을 따라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아랍의 문화와 언어를 배웠다.

또한 텔아비브에서 히브리어를 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스라엘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술탄이 지휘하는 오스만 터키 군의 통역관으로 있었다.

군에서 제대한 모세 샤렛은 팔레스타인인으로 돌아왔다. 팔레스타인에는 소수의 유대인과 다수의 아랍인, 아르메니아인 등 여러 인종이 살고 있었으며 이런 땅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특히 전 세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자 아랍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팔레스타인들은 유대인을 몰아내기 위해 공격하거나 총파업을 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이주를 멈추지 않았다.

▲ 이스라엘, 20뉴 세켈, 2008 뒷면

모세 샤렛은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할 땅을 사기 위해 아랍인들과 협상을 했고 그 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유학을 하며 유대 국가 건설에 앞장섰게 됐다.

모세 샤렛은 1925년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유대인의 비밀 기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능숙한 아랍어와 영어, 유대어를 구사해 평화적인 협상에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모세 샤렛의 외교적 성과와 유대인의 열망과 더불어 1948년 유대인들은 유대 국가 이스라엘을 세우게 되었다.

이때 모세 샤렛은 이스라엘 건국 선언에 참가하여 중대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건국 후에도 외교 업무를 맡게 되었다. 1953년 이스라엘 2대 총리가 되었으며, 모세 샤렛이 총리로 있던 시기에 이스라엘은 UN의 회원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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