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재민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센터 수석연구원] 태국 화폐는 지폐인 바트(Baht)와 스탕(Stang)으로 불리는 동전이 있다.

지폐의 경우 1,000바트와 500, 100, 50, 20바트 등 다섯 종류가 있다. 동전은 10바트, 5, 2, 1바트 등이 있다.

바트는 원래 화폐 단위가 아니라 질량 단위였다. 밧 또는 바흐트라고도 불리는 바트는 약 15~16g 무게의 동전을 의미했는데, 영국의 파운드처럼 화폐 단위로 변했다고 한다.

▲ 태국 1,000바트 앞면, 1998, 푸미폰 아둔야뎃(1927-2016) 국왕

태국 지폐의 앞면에는 모두 같은 인물이 그려져 있다. 바로 푸미폰 아둔야뎃(1927-2016) 국왕이다.

지난해 10월 13일 서거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이름은 ‘땅의 강함, 비교할 수 없는 힘’을 의미한다. 그의 본래 이름은 '프라 파트 솜테트 프라 파라민타라 마하 푸미폰 아둔야겟 마히다라 티벳라마 티보디 차크리 나루본틴 사야민 타라티라트 보로마나토 보빗 라마 9세'로 현대의 군주 중 가장 긴 이름의 소유자다.

라마 9세라고도 불리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1946년 6월 9일 재위에 오른 뒤 서거할 때까지 66년 동안 집권했다. 세계 최장기 집권 국가 원수이자 태국 역사상 최장기 재위 군주였다.

그는 입헌군주국의 상징적인 국왕과는 달리 태국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국민들도 절대적인 신망을 보냈는데, 실제 일반 가정집이나 택시 또는 공공장소에서 푸미폰 국왕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국왕 초상화에 삿대질을 하거나 모독하면 법적으로 처벌이 될 수 정도로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했다.

태국에서 근대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히돌 아둔야뎃 왕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스위스에서 중등교육을 받았으며 로잔대에서 과학을 공부했다.

1946년 6월 친형인 아난다 마히돌 국왕이 침실에서 머리를 저격당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즉위했다.

그러나 푸미폰 국왕은 즉위 후 삼촌을 섭정으로 임명하고 자신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스위스로 돌아가 대학 과정으로 정치 ·법률학을 전공했다. 통치자로서 자질을 갖추기 위한 유학이었다.

1950년 4월 프랑스 주재 태국 대사의 딸인 시리키트 키티야카라 공주와 결혼해 1남 3녀를 두었다. 같은 해 5월 방콕의 왕궁에서 공식적인 즉위식을 가졌다

▲ 태국 1,000바트 뒷면 , 1998, 라마 1세 쫄랄롱건(1868-1910) 국왕

태국 국왕은 입법·행정·사법권을 행사하고 군 통수권을 가진다. 1932년 전제군주제가 폐지되고 헌법을 공포해 입헌군주제가 발족됐으나, 국왕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입헌군주제 수립 이후 태국에서는 모두 18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할 만큼 정치가 격동을 거듭해왔는데, 쿠데타도 국왕의 승인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 돼 있다고 한다.

푸미폰 국왕은 경제 성장과 국민의 복지 혜택 확대, 정치 안정화 등 많은 공을 세웠으며, 서민들을 직접 만나고 ‘애민’(愛民)을 실천하는 모습에 전 세계 왕족들도 존경을 표했다고 전해진다.

태국 지폐 뒷면에는 역대 전직 국왕들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20바트에는 태국 문자 개발과 불교를 국교로 삼은 람캄행 왕이, 50바트에는 전투의 달인으로 집권 시기 영토를 대폭 확장시킨 나레수안 왕이 그려져 있다.

100바트에는 태국족을 미얀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 중국계 딱신 왕이, 500바트에는 현재까지 통일된 태국을 통치해 온 짜르키 왕가를 세운 라마 1세가 담겨 있다.

그리고 1,000바트에는 태국을 현대화시키고 계급제도를 상당 부분 폐지하면서 외세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는데 큰 공을 세운 라마 5세, 즉 쫄랄롱껀 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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