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재민 한국조폐공사 디자인센터 수석연구원] “에펠탑은 부인용 모자의 장식 핀처럼 정교하게 파리 위로 뻗어 있었다. 우리가 탑에서 멀어지면, 탑은 꼿꼿하게 수직으로 파리에 군림했다. 우리가 탑에 접근하면, 탑은 우리 위로 몸을 기울였다. 1층 전망대에서 보면 탑은 위쪽으로 나사처럼 올라갔고, 꼭대기에서 보면 탑은 다리를 쫙 뻗고 목을 접어 넣은 채 오그라들었다.” -블레즈 상드라르-

▲ 프랑스, 200프랑(1996년) 앞면 알렉산터 구스타프 에펠(1832-1923), 건축가

프랑스 화폐에는 유로(Euro)와 센트(Cent)가 있다. 유로화 이전에 사용된 프랑스 화폐는 프랑(Franc)과 상팀(Centime)이었다. 프랑스 국민은 누구보다 예술과 문화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프랑에는 문화 국가답게 예술가, 건축가, 음악가 등 많은 예술인을 소개하고 있다.

유럽 대륙의 서부, 지중해와 대서양에 걸쳐 한반도보다 2.5배나 넓은 영토와 인구가 약 6,000만 명인 프랑스는 유럽 제일의 문화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프랑스에는 정말 문화유적이 많다. 소장품만 해도 30만 점이 넘는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최대의 미술관인 루브르 박물관, 최후의 심판 조각이 있는 노트르담 서원, 나폴레옹 장군의 명령에 의해 건축가 장 프랑수아 테레즈 샬그랭(Arc de Triomphe de L’Etoile)이 만든 높이 50미터, 폭 45미터의 개선문,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고자 하는 에펠탑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 프랑스, 200프랑(1996년) 뒷면 알렉산터 구스타프 에펠(1832-1923), 건축가

‘파리의 귀부인’ 최고의 찬사

1889년 파리 세계 만국 박람회를 기념하는 건축물 공모전에서 에펠이 제출한 기념탑이 당선되었다. 1889년 5월 6일 당시,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 만국박람회가 개막되면서 박람회의 으뜸 볼거리인 에펠탑이 개관하였다.

높이 300미터(이후 첨탑과 통신용 안테나가 추가되어 320미터가 되었다), 무게 7,300톤, 1만038개의 금속 부품과 250만 개의 못이 사용되었다.

▲ 에펠탑이 완성될 때까지 단계적으로 기록한 사진

에펠탑을 짓기 시작할 때 여론은 서로 달랐다. 다리나 철도에 사용되었던 철근을 건축물에, 그것도 밖으로 훤히 드러나게 짓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반대했던 것이다. 마치 옷을 입히지 않은 마네킹을 쇼윈도에 세워 놓는 것처럼 망측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센 강 옆이었으니 얼마나 싫어했겠는가.

그러나 에펠탑을 환영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유행에 앞서는 프랑스 사람들이고 보면 새로운 건축물을 어떤 도시보다 먼저 받아들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 탑은 곧 파리의 상징물이 되었고, 세계 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건축물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때부터 에펠탑을 세우는 데 반대했던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땅만 보고 걸었다. 고개를 들면 파리 어디에서나 에펠탑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에펠탑이 지어진 뒤 세계 각 곳에는 그것을 흉낸 낸 높은 건축물이 여저 저기 세워진다. 에펠이 문을 연 철강을 주재료로 삼는 20세기 건축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 후 에펠탑은 ‘파리의 귀부인’ 이라고 불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건축을 상징하는 랜드마크(land mark)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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