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래연구소

[이코노뉴스=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얼마전 동네 단골 커피숍에 들렀다. 커피를 만드는 중 직원이 갑자기 정색해서 물어본다.

▲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TV에서 서지현검사 이야기를 봤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도 직장에 다녔었는데 우리나라 직장은 왜 이 모양이냐고 묻는다.

민족미래연구소의 연구실장이고 언론에 칼럼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나란 사람에게는 좀 더 나은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이다. 검사라는 최고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여성조차 성추행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회. 그런데 겉으로는 성매매금지국으로서 착한 척은 다하는 사회, 이것이 작금의 한국 사회이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가장 많이 사칭하는 것이 검사다. “나 어디 소속 검사인데”라는 말만 들어도 일반인들은 반쯤 얼어붙는다. 그런데 그런 검사도 조직내부에서 성추행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시아권에서 가장 선진적인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국가다. 한류가 전세계로 뻗어나간 데에는 ‘자유로운 국가’라는 이미지가 한몫을 단단히 했다.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거대한 중국은 독재 정치와 통제가 일상화된 국가라는 이미지에 갇혀있다. 후진적 이미지의 국가를 문화적 대상으로서 소비할 사람은 없다. 대중문화는 환상을 팔고 소비하는 생태계다. 한국이 유럽 몇나라만 제외한다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정치적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정치적 민주주의가 왜 직장 안으로는 침투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민주주의가 국가의 운영원리임에도 불구하고 기업같은 사적 조직의 내부로 파고들지 못한 것은 왜일까? 아마도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된 점도 일정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적 이해는 국민이 주인으로서 국민 자신을 위해 통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민주주의는 경제원리인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움직인다. 자본주의는 사적 이익을 위한 결사를 허용한다. 이것이 기업이다. 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한경쟁의 쳇바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누구도 경쟁을 회피할 수가 없다. 경제적 생존이 중요해지면서 민주주의의 또 다른 원리인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대접받아 마땅한 권리’는 침해받기 시작한다.

민주주의라는 단어 하나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중시하라는 요구, 대의제를 통해 민의를 확인하는 정치시스템, 언론을 비롯한 권력의 분립 이런 모든 것들을 민주주의는 포함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현실에서 구현되기 위해 자본주의와 연결되었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대의제 민주주의원리로 작동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적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와 경제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갈등하게 된다.

자본주의 하에서 기업들은 이익을 위해 모인 결사체이다. 기업은 자본의 증식을 최종적 목표로 기업 내부를 효율화하고 최적화한다. 기업은 다른 기업과의 항상적인 경쟁 때문에 내부를 지속적으로 통제한다. 통제의 강도를 낮추면 경쟁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기업조직은 상명하복의 비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된다. 상하간의 대화는 없고 윗사람 눈치보기만 남는다. 단기적으로는 이런 방식의 조직운영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기업은 고도성장기 동안 이런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그런데 장기적으로는 어떨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이 개별기업에게 플러스로 작동한다고 해도 사회전체에는 마이너스로 작동한다.

▲ 직장 내 성희롱 문제해결을 위해 ‘직장 내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대구여성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개별 기업은 살아남아도 사회전체는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의 상처로 신음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케인즈가 말한 전형적인 ‘구성의 오류’다 불황기 한 사람의 저축은 그 개인에게는 플러스이지만 사회전체로는 수요부족을 초래해서 마이너스다. 이런 기업에서는 내부의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상처입고 쓰러지게 된다. 상당히 많은 수의 직장인들이 번아웃증상을 호소하며 사표를 던진다. 한국 사회의 직장문화, 기업조직문화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나설 것인가?

원청기업의 하청기업에 대한 갑질은 사회적 감시체제와 여론으로 어느 정도 줄여나갈 수가 있다, 그런데 기업 안의 내부갑질은 마땅히 제제하고 통제할 시스템이 없다. 원칙적으로 내부갑질문화는 노동조합이 나서서 해결해야한다. 기업경영진과 대립을 감수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조합의 실태를 둘러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필자가 아는 사람의 경우 노동조합에 열성적인 사람이 팀장으로 앉아 있다. 그런데 그 팀장은 팀원들에 대한 인격모독을 서슴없이 행한다. 한국 노동조합은 물질적 이익을 챙기는 데는 악착같지만 정신적 이익 즉 인격적 대우를 챙기는 데는 한없이 무능하다. 아니 한국 노동조합은 착취가 돈만이 아닌 인격에 대해서도 행해진다는 것을 잘 모른다. 인격적 결함이 있는 직장상사를 그 개인만의 특성으로 이해한다.

문제는 사회성 부족한 사람들이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정서적 착취를 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우리 조직문화다. 왜 신체적으로 폭력적 인간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폭력적이진 않을까? 폭력을 행했을 경우 응당한 처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히 인식되기 때문이다. 폭력에 대한 응당한 댓가를 예상하기에 사람들은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격모독은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신체적 폭력만이 아니라 정서적 폭력에도 유의해야 한다. 신체적 상처는 쉽사리 회복되지만 정서적 상처는 인간을 밑바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한국 직장인들에게 전염병처럼 만연한 번아웃(burn-out)증상은 우리가 정서폭력에 둔감했던 결과다.

기업조직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하는 노동조합이 나서야한다. 그런데 노동조합조차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노동자의 절대다수가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있고 작동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극히 드물다. 현실이 이런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작년에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미투운동을 돌아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미투운동은 조직에서 만연했지만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못하고 문제제기한 사람만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로 낙인찍히던 한국 사회를 바꾸었다. 정부는 기업내부에서의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을 제도화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성희롱예방교육을 하지 않는 기업은 일정한 과태료같은 처벌을 받게 된다. 이런 교육을 통해 성희롱인줄도 모르고 했던 많은 행동들이 성희롱이었음을 깨달았던 남성들이 많다. 또한 제도화된 교육 덕분에 남성은 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여성은 성희롱을 포함한 기업내 성폭력을 인내하지 말 것을 배웠다. 이후 미투운동은 현재와 같이 활성화되었다. 정서착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대응하면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민족미래연구소는 문제해결을 위해 ‘직장 내 노동인권교육’ 프로그램 도입을 주장한다. 노동인권은 노동자가 노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받아야할 인권에 대한 교육이다. 또한 조직내부에서의 정서적 착취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도 응분의 보상시스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서적 착취가 과도한 기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유무형의 제제가 부가되어야 할 것이다.

꿈의 직장 대기업에 들어간 새내기 회사원들의 많은 수가 1년이 안되어 직장을 때려치운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1세기 민주주의사회에서 민주화되지 못한 가장 큰 부문이 직장내부 정서학대다. 이 문제해결 없이 직장인들의 경험하는 번아웃을 해결할 수가 없다. 이제 다른 방식으로 잘 살아야 할 시기다.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은 헤드헌팅 브레인코리아 대표와 코위컨스트럭션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지방자치단체의 발전방향에 대한 컨설팅과 민간기업의 조직문화의 개선사업 등의 자문을 맡아 일해왔습니다. 현재 국제관계와의 연관성 속에서 한국사회의 모순을 이해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년 째 지식인그룹 ‘고전강독회’를 운영하며 동서양 고전을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단행본 ‘낯선 것과의 조우’와 ‘공공부문 개혁논의의 현주소와 충남에 대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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