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팬데믹 발생하면 또 다시 해외 제약사에 손 벌려야 할 처지
대통령, 장관이 외쳐도 현장에선…제프티·조코바 등 관심 기울여야

[이코노뉴스=이종수 기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3월 5년 뒤 2027년에 연매출 1조원 이상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2개 창출하고 연매출 3조원 이상 글로벌 50대 제약사를 3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제약바이오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발표한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 후속 조치였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도 곧바로 “블록버스터급 신약 2개를 창출할 있는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 제약바이오협회장이 블록버스터급 신약 2개를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만해도 제약바이오의 미래가 매우 밝아 보였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 제약바이오 업계 현장은 그리 밝지 못하다. 각종 규제에다 인허가 절차도 까다로워 신약 발굴에 별로 진전이 없어 보인다.

코로나19 치료제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들어 국산 신약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이나 허가의 진척 상황이 알려진 게 없다.

우선 일본 시오노기제약의 코로나19 치료제인 조코바(일동제약은 판권 확보)는 긴급사용승인이 거절된 바 있다.

순수 국산 코로나19 치료제인 현대바이오사이언스의 제프티에 대해서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현대바이오는 제프티의 긴급사용승인을 목적으로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 결과를 담은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질병청과 식약처의 공식적인 답변은 답보상태다.

국산 코로나19 치료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1년 국산 치료제로 최초 허가를 받은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주’는 이미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사진 =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 라게브리오 베클루리주
사진 =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 라게브리오 베클루리주

현재 국내에서 사용중인 코로나19 치료제는 화이자의 팍스로비드와 머크의 라게브리오,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베클루리주) 등으로 모두 외국산밖에 없다.

하지만 수입을 가장 많이 했던 팍스로비드의 경우 병용금기약물이 너무 많아 의사들이 처방을 꺼리고, 나머지 약물은 효능에 문제가 있어 처방이 활발하지 못하다.

이들 약물의 재고량만도 지난달 5일 기준 무려 60만명분이 남아있지만 유효기간이 순차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안전하게 처방할 수 있고 코로나19 등에 범용으로 대응할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 기대와는 달리 질병청과 식약처의 움직임은 더뎌 보인다.

일동제약은 지난해 조코바의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했지만 좌절됐다. 일본 정부가 시오노기제약조코바의 긴급사용승인 신청을 신속히 허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동제약은 지난 1월 다시 조코바에 대해 식약처에 품목허가신청을 했으나 식약처는 묵묵부답이다. 3상에 준하는 30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한 현대바이오의 제프티도 긴급사용승인 절차를 밟고 있지만 진행상황은 깜깜 무소식이다.

대통령이나 보건복지부장관 제약바이오협회장의 확신에 찬 발표와 달리 질병청과 식약처는 시간만 끌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약을 발굴한 제약업체를 도와 절차를 서둘러 진행하거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도록 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정이 아쉬운 형국이다.

급기야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지난 달 말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등장한 청원은 10일 현재 동의 수 3,300명을 넘겼다.

‘팍스로비드 재고 때문에 승인이 지연되고 있는 국산치료제의 신속한 승인 요청에 관한 청원’이라는 주제로 지난 달 30일 올라온 이 청원에서 청원인은 청원 취지를 ‘대한민국 제약주권확립을 위한 국산치료제 승인관련’이라고 밝히며 긴급사용승인을 촉구했다.

청원인은 “코로나19 감염으로 사망자가 하루 평균 8명, 1년 2,800명 이상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 국산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질병청 및 식약처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순수 국산 치료제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긴급승인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식약처는 “제출 자료에 대해 심사를 진행하고 있고, 코로나19 치료제에 대해서는 신속 심사 대상으로 검토 중에 있지만 어느 시기에 결과가 나온다고 정확히 답변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기간이 늘어지면 치료제 개발업체는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획기적인 신약을 개발했는데도 자금지원도 못 받고 신속허가도 나지 않아 경영난을 버티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식약처는 지난 21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과 함께 ‘식의약 규제혁신 2.0 과제’를 발표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식약처는 식품안전관리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안전혁신과 식의약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규제혁신 추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 내용이지만 발표에 그쳐서는 안 되고 적극적인 실행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연매출 1조원 이상 블록버스터급 신약 2개, 연매출 3조원 이상 글로벌 50대 제약사 3개”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미국은 코로나 19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만 6조50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22년 코로나19 예산 지원 사업을 일괄 종료했다. 좋은 약이 나올 싹을 잘라 버린 셈이다.

앞으로 코로나19와 유사한 팬데믹이 발생하면 우리는 다시 해외 제약사에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가 된다. 미국 제약사들은 내년부터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가 제약주권 확보와 바이오 신시장 개척에 진심이라면 획기적인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조속히 나올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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