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24일 인천국제공항 보세창고에서 관계자들이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 머크가 개발한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라게브리오 2만명분을 수송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지난해 3월 24일 인천국제공항 보세창고에서 관계자들이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 머크가 개발한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라게브리오 2만명분을 수송차량에 옮겨 싣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이코노뉴스=이종수 기자] 미국의 글로벌 제약사 머크앤컴퍼니가 유럽연합(EU)에서 자사의 코로나19용 먹는 항바이러스제 라게브리오(몰누피라비르)의 코로나19 치료제 허가 신청을 자진철회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머크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소재 생명공학기업 리지백 바이오테라퓨틱스는 라게브리오와 관련, 유럽 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의 승인 금지 권고에 따라 코로나 19 치료제 허가신청을 철회했다.

코로나19 고위험군용 경구치료제인 라게브리오는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보다 효능이 떨어지지만 병용금기약물이 거의 없어 팍스로비드 대체제로 처방돼 왔다.

지난해 2월 16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서 약사가 뉴시스 취재진에게 코로나19 먹는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를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지난해 2월 16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서 약사가 뉴시스 취재진에게 코로나19 먹는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를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병용금기약물이 28종에 달하는 팍스로비드는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질환약 등을 복용 중인 대다수 노인들이 복용할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도 처방률이 10~40%대에 불과하다.

라게브리오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영국, 호주, 중국 등 세계 25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코로나 치료제로 사용승인이 이뤄졌다. 지난해 56억84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라게브리오는 올해 들어 매출이 급감했다.

머크의 라게브리오가 EU에서 사용허가 신청을 철회했지만, 여파가 만만치는 않다. 건강 문제로 몇몇 약물을 복용 중인 노인 등 고위험군이 코로나19에 걸려도 사실상 처방할 수 있는 치료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머크는 “EU 승인 신청을 철회하더라도 개별 EU 회원국이 승인한 인도적 또는 긴급 사용프로그램을 통한 라게브리오 공급에는 변함이 없다. 따라서 라게브리오의 허가 또는 승인이 이미 완료된 국가에서의 사용 및 접근성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머크는 또 미국에서는 여전히 라게브리오는 긴급 사용 승인(EUA: Emergency Use Authorization)에 따라 판매되고 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 절차 또한 예정대로 진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 바이러스 복제 억제 메커니즘 가진 라게브리오의 한계

바이러스 복제 억제라는 기존 항바이러스제의 메커니즘을 지닌 라게브리오는 출시 당시부터 낮은 효과가 논란이 됐다. 회사 측이 약물의 독성을 줄이기 위해 효능을 낮췄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증화 및 사망 예방 효과의 경우 팍스로비드가 89%에 달한 반면 라게브리오는 30%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라게브리오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에겐 입원이나 사망률 감소에 실익이 없다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크리스토퍼 C 버틀러 교수 등 연구진의 임상시험을 통한 연구결과까지 나왔다.

이에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는 올해 2월 라게브리오 승인을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CHMP의 권고로 머크는 결국 EU에서 허가 신청 철회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 우리나라도 방역대책에 차질

우리나라도 당장 고혈압약 등을 복용중이라 팍스로비드를 처방할 수 없는 노인 고위험군에게이 문제다.

특히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 요양시설 입소자들의 경우 건강 문제로 최소 1종 이상의 약을 복용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팍스로비드 처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일이다. 팍스로비드 대체제가 마땅치 않다면 정부의 고위험군 위주 방역대책도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게 의약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민주당 정춘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요양병원에서 숨진 환자는 7,613명으로, 전년(444명)보다 무려 17배 급증했다. 이에 따라 2020년 전체 코로나 사망자의 9.9%에 그쳤던 요양병원 사망자는 작년에 28.6%로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60세 이상 고령층 코로나19 사망자는 지난해 195.6명으로 2021년보다 5.2배 늘었다. 요양시설 내 집단감염이 주요인이었다. 2020년 3월 2.87%였던 코로나 치명률이 2022년 11월 0.08%로 낮아졌지만, 정부가 중점관리 대상으로 정한 고령층에선 정반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2020년 7월 세계 제1호 코로나 치료제로 승인된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주사제 베클루리주(렘데시비르) 도입을 시작으로 그동안 총 2조6천287억원 어치의 외국산 치료제를 도입했다.

2022년 3월부터 도입한 라게브리오는 6월 5일 현재 14만7000명 분이 재고로 남아 있다. 팍스로비드 재고량은 44만5000명 분에 달한다.

◇ 기존 치료제 한계 간파한 일본 정부

앞으로 세계 코로나 치료제 시장은 팍스로비드와 일본 시오노기제약의 조코바로 양분될 전망이다. 하지만 팍스로비드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에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야기될 만큼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조코바 시대’가 올 것이란 일본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조코바 탄생은 팍스로비드  등 기존 치료제의 문제점과 한계를 일찍이 꿰뚫어 봐온 일본 정부와 시오노기제약의 합작품이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급히 개발된 약물들이 모두 노인 등 고위험군용 약물이고, 바이러스 변이에 취약해 반드시 새로운 대체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이의 대세가 델타에서 오미크론으로 바뀐 이후에는 일본산 항바이러스제 개발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했다. 그 결과 탄생한 약물이 시오노기의 조코바다.

일본 정부는 안전성과 효능 면에서 조코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국내 여러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조코바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긴급승인 당시 일본은 팍스로비드 도입 물량 200만명 분 중 194만명 분을 재고로 보유하고 있었다. 긴급승인 이후 일본 정부는 자국산 조코바를 2차례에 걸쳐 총 200만명 분을 선구매했다.

조코바가 자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코로나 치료제 시장에서 수명이 다 해가는 팍스로비드와 라게브리오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시오노기제약의 조코바
시오노기제약의 조코바

일본 정부의 총력 지원 덕에 조코바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지난 4월 일본내 코로나 치료제 시장 점유율을 보면 라게브리오 88%, 조코바 11%, 팍스로비드 1%였다.

하지만 조코바는 두 달 만인 6월 들어서는 60%를 상회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산 조코바가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는 선발 치료제의 대체제로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고 보고 여전히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자국민의 건강 보호와 세계시장 제패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린 일본 정부의 정책과 결단은 절묘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일본 정부의 조코바에 대한 긴급승인 결단은 마치 ‘신의 한 수’처럼 보인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라게브리오 처방률이 최근까지 팍스로비드를 웃돌았다. 의사들이 병용금기약물 종류가 많은 팍스로비드 처방을 꺼렸기 때문이다.

◇ 우리도 강력한 후보 약물 등장

우리나라도 맹추격에 나섰다. 강력한 후보 약물이 등장해 긴급사용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가 세계 제1호 범용 항바이러스제로 개발한 제프티(성분명 CP-COV03)는 한국인 대상 최대 규모(300명) 코로나19 임상에서 조코바를 능가하는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했다.

현대바이오에 따르면 구충제 니클로사마이드의 약물재창출로 탄생한 제프티는 가격경쟁력도 뛰어나 게임체인저급 약물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현대바이오 연구소장 진근우 박사는 “제프티가 코로나19 임상2상에서 12가지 증상의 종합적인 개선 소요일을 세계 최초로 4일 앞당김으로써 신종플루사태를 종식한 타미플루 같은 게임체인저급 코로나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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