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범용 항바이러스제 탄생 카운트 다운…“본격적인 해외진출 채비 갖춰”

지난해 5월 16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코로나19 먹는 치료제인 화이자의 팍스로비드가 놓여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지난해 5월 16일 서울 시내 한 약국에 코로나19 먹는 치료제인 화이자의 팍스로비드가 놓여있다. /뉴시스 자료사진

[편집자 주]

“정부가 경제적 피해 최소화를 위해 방역정책을 ‘엔데믹(풍토병화)’ 쪽으로 전환하다 보니 ‘코로나19는 이제 끝났다’는 막연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형이다. 환자와 사망자 수가 독감보다 훨씬 많다. 특히 요양병원 등 감염취약시설 사망자 비율은 급증하고 있다.

요양시설 내 코로나 감염시 마땅한 치료제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요양시설에서는 ‘현대판 고려장’ 같은 비극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일까. 정부의 코로나19 방역정책에 허점은 없는지 점검해본다.”

◇ 시오노기, 조코바 출시…글로벌 임상 나서는 등 발 빠른 행보

코로나 치료제 시장에서 한일 간 한판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미국 글로벌 빅팜들이 한동안 석권했던 코로나 치료제 시장에서 미국산 치료제들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7일 의약계에 따르면 대표적 치료제인 화이자의 팍스로비드의 경우 병용금기약물이 너무 많아 처방률 자체가 낮은 데다 바이러스 변이에 갈수록 무력해지고 있다.

미국 머크(MSD)의 라게브리오는 낮은 효능 때문에 유럽에서 사용승인 금지 대상에 올라 있다.

이에 후발주자인 한국과 일본이 코로나 치료제 시장 장악을 노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이 조금 앞서 있는 형국이다. 이는 일본 정부의 전폭적 지원 덕분이다.

시오노기제약의 조코바
시오노기제약의 조코바

일본 시오노기제약은 지난해 새로운 코로나19용 먹는 치료제 조코바를 출시한 뒤 미국에서 글로벌 임상에 나서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자국산 치료제에 긴급사용승인을 내주고 대량 구매까지 하는 등 해외진출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시오노기는 조코바와 별도로 새로운 경구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돌입하는 등 세계 시장을 겨냥해 치료제 라인업 확대에 나섰다.

기존 조코바는 임산부나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에게 처방할 수 없고 병용할 수 없는 약물도 많기 때문이다.

◇ 현대바이오, 제프티 긴급사용승인 절차…“게임체인저급 약물 기대”

우리나라도 맹추격에 나섰다. 강력한 후보 약물이 등장해 긴급사용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현대바이오사이언스가 세계 제1호 범용 항바이러스제로 개발한 제프티(성분명 CP-COV03)는 한국인 대상 최대 규모(300명) 코로나19 임상에서 조코바를 능가하는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했다.

구충제 니클로사마이드의 약물재창출로 탄생한 제프티는 가격경쟁력도 뛰어나 게임체인저급 약물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현대바이오 연구소장 진근우 박사는 “제프티가 코로나19 임상2상에서 12가지 증상의 종합적인 개선 소요일을 세계 최초로 4일 앞당김으로써 신종플루사태를 종식한 타미플루 같은 게임체인저급 코로나 치료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바이오 연구소장 진근우 박사가 지난 2021년 12월 7일 범용 항바이러스제로 개발한 제프티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바이오 제공)
현대바이오 연구소장 진근우 박사가 지난 2021년 12월 7일 범용 항바이러스제로 개발한 제프티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바이오 제공)

제프티는 현재 정부의 긴급사용승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현대바이오는 이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본격적인 해외진출에 나설 태세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현재 비어 있다시피 한 코로나 치료제 시장을 놓고 조만간 한일 간 대대적인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 미국 빅팜이 놓친 시장 노린 일본 제약사

일본 시오노기제약의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조코바’는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긴급승인을 받았다. 조코바는 고위험군보다 저위험군 위주의 일반위험군 처방에 초점을 맞춘 약이다.

시오노기는 화이자 등 미국 빅팜들이 놓친 거대 시장을 파고 들었다. 화이자의 팍스로비드, 머크의 라게브리오는 모두 고위험군 치료제다.

시오노기는 일반위험군 대상 치료제가 아예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본 정부의 애국주의도 한몫을 했다. 조코바 효능 등에 대한 일각의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일본산 치료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코바의 긴급승인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코바는 일본 내에서 낮은 효능과 부작용 논란 등으로 긴급승인이 부결되기도 했다. 또 미국 식품의약국(FDA) 권고기준인 12개 증상을 대상으로 임상2상을 마쳤으나, 1차 유효성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오노기는 임상3상에서 계획변경을 통해 12개 증상을 5개로 줄여 긴급승인을 획득했다. 이는 일본 당국의 용인이 없이는 힘든 일이다.

일본은 지난해 11월 조코바의 긴급사용승인을 허용했으며 현재까지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총 200만 명분의 치료제를 확보해 코로나19 대응에 활용하고 있다. 시오노기 제약에 따르면 긴급사용승인 후 올해 3월까지 불과 4개월 만에 1047엔(약 1조 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 한국서도 치료제 등장…"조코바 추월 가능"

조코바를 추월할 만한 치료제가 한국에서도 공식 탄생을 앞두고 있다. 현대바이오가 첨단 약물전달체(DDS) 기술로 개발해 전임상과 임상을 마친 100% 한국산 범용 항바이러스제 제프티(성분명 CP-COV03)가 주인공이다. 제프티는 일반위험군은 물론 고위험군에도 처방할 수 있는 범용 치료제다.

현대바이오의 제프티(성분명 CP-COV03)
현대바이오의 제프티(성분명 CP-COV03)

제프티는 임상2상 탑라인 결과에서 효능과 안전성 모두 조코바를 능가함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임상2상 참여환자를 3상 수준인 300명으로 하는 등 정부가 2021년 3월 도입한 긴급사용승인제도에 맞춰 임상을 설계, 진행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코로나19 증상 개선 소요일은 위약군에 비해 4일(위약군 13일, 투여군 9일) 단축됐다.

증상 발현 3일 또는 5일 이내 복용시 고위험군에서는 위약군보다 6일(위약군 13일, 투여군 7일) 앞당겼다. 체내 바이러스 감소는 투약 후 16시간만에 위약군 대비 14배에 달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 약물재창출로 탄생한 제프티

제프티의 탄생 과정과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기존 항바이러스제와 전혀 다르다. 처음부터 바이러스 변이에 관계없이 효능을 발휘하는 약물 개발을 목표로 잡았다.

코로나 사태의 위급성을 감안해 개발 방식도 자사(현대바이오)의 원천기술인 전달체 활용으로 현존 약물의 용도를 바꾸는 약물재창출(drug repositioning)을 택했다.

세계 과학계가 잠재적 항바이러스 효능에 일찍이 주목한 구충제 니클로사마이드의 약물재창출을 수십년 간 가로막았던 생체이용률 난제를 전달체 기술로 세계 최초로 해결, 제프티를 개발한 것이다.

진근우 박사는 “제프티는 약물 재창출로 인해 안전성과 가격 경쟁력까지 갖췄다”며 “제프티를 21세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끌어내는 페니실린급 범용 항바이러스제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 ‘세포 스스로 바이러스 제거’…독창적 메커니즘

제프티는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침입하면 그 세포의 오토파지(autophagy·자가포식)를 활성화해 세포 스스로 바이러스를 제거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지녔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현대바이오 홈페이지 캡처
현대바이오 홈페이지 캡처

바이러스의 세포내 복제를 억제하는 기존 항바이러스제의 메커니즘과 전혀 다르다. 그래서 바이러스의 종류와 변이에 관계없이 제거하는 범용 약물이라고 한다. 제프티는 지난해 말 마친 코로나19 임상2상 결과 효능과 안전성에서 팍스로비드와 조코바를 모두 능가함을 데이터로 보여줬다.

◇ FDA 평가지표 임상2상서 세계 최초 충족

임상2상 단계에서 제프티는 미국 FDA 권고 기준인 12가지 증상을 대상으로 한 1차 유효성 평가지표를 세계 최초로 충족했다. 화이자와 시오노기 모두 임상2상에서 지표 충족에 실패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제프티는 12개 증상의 종합적 개선에 걸리는 기간을 4일 단축했다. 제프티의 주성분인 니클로사마이드는 세계인이 수십년 간 구충제로 안전하게 복용해온 약물이다. 임상1상에 이어 2상에서도 유의미한 부작용이 없었다.

현대바이오 관계자는 “기존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 유전자 합성과정을 막아 바이러스 복제를 방해하는 한가지 메커니즘에 갇혀 있어 변이 대응이 어렵다”며 “제프티는 바이러스 종류와 변이를 가리지 않고 제거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 넥스트 팬데믹 대비 가능 범용성도

범용성도 제프티의 장점이다. 주성분 니클로사마이드는 코로나19를 비롯해 현재까지 총 31종의 바이러스에 항바이러스 효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이미 세계적 연구기관들의 세포효능시험 결과로 확인돼 있다.

세계가 넥스트 팬데믹 대비를 위해 찾고 있는 범용약물 분야에서도 제프티가 돋보인다. 현재 미국 정부가 범용 항바이러스제 후보물질 개발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아직 후보물질들이 대부분 전임상 밑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범국가적 지원 나선 일본

제프티와 조코바의 대결에 국민적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 정부와 의약계의 관심과 성원도 필요하다. 조코바에 범국가적 관심과 지원을 쏟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미국처럼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자국산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자국 제약사에 막대한 자금과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시오노기제약 본사와 조코바
시오노기제약 본사와 조코바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보다 1년여 후인 2022년 5월 긴급승인 제도를 도입했지만, 6개월 만에 조코바에 대한 승인 결정을 내렸고 지원 예산까지 배정했다.

◇ 외국산 치료제 임상까지 자금 지원하는 미국

조코바는 미국 NIH(국립보건원)의 자금 지원으로 글로벌 임상3상에 나섰다. 미국 측의 조코바 임상 지원은 아직 일반위험군 치료제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비록 일본산 치료제이지만 글로벌 임상3상을 지원함으로써 항바이러스제 분야 최강 리더십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속내다.

미국은 또 넥스트 팬데믹에 대처할 범용 항바이러스제를 찾는데 수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하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후보 약물을 찾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이런 긴박한 움직임들은 `코로나 사태는 끝났다'는 우리 정부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현대바이오는 제프티의 코로나 19 임상2상 결과가 이달 15~19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감염 및 미생물 학술대회인 ‘아메리칸 소사이어티 마이크로바이올로지(ASM)의 2023 미생물 연차총회에서 17일(현지시간) 열릴 ‘이머징 사이언스’세션의 발표 주제로 채택됐다고 밝혔다.

이머징 사이언스 세션은 ASM 미생물 연차총회에서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연구결과만 엄격히 골라 발표토록 하는 가장 중요한 세션 중 하나다. 회사 측은 이머징 사이언스 세션에서의 발표가 제프티의 혁신적 메커니즘과 광범위한 항바이러스 효능을 전세계에 알릴 호기로 보고 있다.

◇ ‘방역안보’ 차원에서도 치료제 필수

세계는 지금 항바이러스제를 ‘무기(weapon)’로 간주하는 추세다. 무기고에 항바이러스제를 채워 놓지 않으면 넥스트 팬데믹에도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방역은 곧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의미다. 더욱이 코로나19는 언제든 변종을 앞세워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들이 변이 속도가 빠른 점을 고려하면 사태를 종식할 게임체인저급 약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순수 한국산 범용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탄생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