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박병호 SIG 패키징코리아 사장] 필자는 근로소득자이다. 필자는 매년 2∼4%씩 급여를 인상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생활이 더 빠듯해지는 것에 자괴감을 느껴왔지만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로 인해 이제 한국 세금 제도의 공정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박병호 SIG 패키징코리아 사장
박병호 SIG 패키징코리아 사장

◇ 근로소득자는 원천징수제도로 인해 100% 성실 납세

특히 근로소득자가 세금 앞에서 무기력하게 느끼는 것은 모든 소득이 투명하게 알려지고 해당 세금을 원천징수 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원천징수란 소득이나 수입이 될 금액을 지급할 때 이를 지급하는 회사(원천징수의무자)가 금액을 받는 사람(납세의무자)이 내야 하는 세금을 미리 징수하여 대신 납부하는 것을 말한다.

원천징수로 인해 납세자들이 신고를 별도로 안 해도 되어서 편리한 점도 있지만, 원하든 원하지 않든 100% 성실 납세할 수밖에 없다.

자영사업자는 매년 5월 종합소득신고 때 자체 계산한 소득 금액에 따라 자진 신고한다는 점에서 근로소득자와 차이가 있다.

일전에 ‘낸 세금과 기부금이 애국심의 척도’라는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는데 요즘과 같이 어느 정권이든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려는 시대 상황에는 재정지출의 기반인 세금과 기부금을 많이 그리고 잘 내는 사람이 애국자라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서울 중구 다동·무교동 음식문화거리를 찾은 시민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서울 중구 다동·무교동 음식문화거리를 찾은 시민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시스 

2021년 국세 통계를 보면 약 114조원인 소득세와 그 뒤를 이어 약 71조원인 부가가치세, 그리고 약 70조원인 법인세가 세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국세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득세의 56%를 원천징수 방식으로 거두어들인다. 소득 중에서 회사들이 지급하는 이자와 배당도 원천징수 하지만 근로소득자들이 부담하는 근로, 연금, 퇴직소득세가 원천징수 금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원천징수, 정부 입장에서 너무나 편리한 세수 확보 수단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부는 충분한 세수를 확보해야 안정되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

최근에 출간된 ‘세상을 바꾼 엉뚱한 세금 이야기’에 보면 17세기 후반의 영국에서 전쟁에 따른 증세를 위해 고안한 세금이 ‘난로세’이다. 집안에 “난로가 많을수록 부자일 것이다.”라는 가정에 근거하여 부자일수록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한 목적에서 만든 제도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발생했다. 세금 관리가 집안에 들어와 내부를 조사하니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한 국민이 반발하였고 게다가 아무리 가난해도 난로는 한 개라도 필요하고 엄청난 부자라도 그만큼 많은 수의 난로가 필요한 것도 아니기에 이 제도는 사회에 많은 혼란을 초래했었다고 한다.

‘난로세’가 실패하자 영국 정부는 새로 ‘창문세’를 만들었다.

창문이 많을수록 집이 크고 큰 집에 살면 부자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세금을 더 거두고자 만든 제도이다. 난로 개수를 조사하기 위해 세금관리가 집안에 들어가는 폐단을 없애고 빈부의 차이를 집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밖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도시의 비싼 땅과 시골의 싼 땅에 지은 집의 크기가 같다면 창문의 수도 비슷할 것이고 가난한 자를 배려한다는 큰 원칙을 위배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러다 보니 세금을 피하려고 창문을 메꾸어 햇빛을 보지 못하는 건물들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계 국세수입은 289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조원 증가했다. 기업실적 개선으로 법인세가 호조를 보였으며 고용 및 소비 증가 등으로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도 증가했다. 주식거래 둔화로 증권거래세는 전년 동월 대비 2조6000억원(-35.9%) 줄었다. (그래픽=뉴시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누계 국세수입은 289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조원 증가했다. 기업실적 개선으로 법인세가 호조를 보였으며 고용 및 소비 증가 등으로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도 증가했다. 주식거래 둔화로 증권거래세는 전년 동월 대비 2조6000억원(-35.9%) 줄었다. (그래픽=뉴시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영국이라면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다.

그런 나라에서도 소득 파악과 징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현대의 정부는 최소한 근로소득자들의 소득 파악과 징세는 일도 아니게 되었다. 바로 원천징수제도 때문인데 근로소득자의 유리 지갑은 가장 쉬운 징수대상이 되었다.

◇ 고소득 자영사업자의 불투명한 납세

다른 유형의 소득자들도 자진해서 성실 납세한다면 과세의 형평성이 저절로 지켜지겠지만 자영사업자나 전문직 종사자의 사업소득에 대하여도 근로소득자의 유리 지갑처럼 투명하게 과세 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흔히 말하는 자영사업자란 개인사업자이거나 규모가 작은 법인사업자를 말하는데 대부분은 상시근로자 5인 미만의 소상공인에 해당하며 영세사업자가 대부분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에는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433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급여종사자보다 훨씬 더 잘 버는 고소득 자영사업자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불투명한 소득 파악과 납세 현황을 보면 고스란히 원천징수 당하는 근로소득자들은 우리만 손해를 본다는 관념을 지금도 변함없이 가지고 있다.

과세 당국도 자영업자의 탈세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몇 년 전 국정감사의 자료를 보면 고소득 자영사업자의 소득 탈루율이 48%에 달한다고 한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파악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여 소득 탈루율을 낮추어야 근로소득자들도 덜 억울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근로소득자에게는 공식으로 고정된 필요경비만 인정

각 나라의 세금부과 방식은 그 나라의 운영 방향과 정책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 기본은 충분한 세수를 확보하고 세수가 확보된다면 국민의 빈부 격차가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부자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많은 면세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도 누진세율 제도를 도입하여 높은 소득일수록 높은 세율을 부과하여 이러한 과세의 기본원칙을 준수하고 있다. 자영사업자나 근로소득자나 동등한 누진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언뜻 보면 그 공정성에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 필요경비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자영사업자는 매출액에서 필요경비를 공제하여 사업에 대한 소득을 계산한다.

요즘과 같이 물가가 치솟을 때 매출액이 같다고 가정하면 필요경비도 올라갈 것이므로 낮아진 소득에 맞추어 세금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근로소득자에게는 필요경비에 대한 입증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급여액의 일정액을 공제하는 방식으로 납부세액을 계산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6∼2021년 근로자의 임금은 평균 18%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는 39%나 상승했다고 한다. 임금인상으로 물가상승과 소득세와 사회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면서 실질소득은 확연히 줄었다고 한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이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소득세 계산 시 물가연동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시대적으로 매우 타당한 정책 제안이다. 미국이나 영국, 호주와 캐나다 등도 근로자에 대한 소득세 물가연동제를 이미 도입한 국가들이다.

지난 8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8회 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근로자의 식사대 월 10만원 이하 비과세 한도를 월 20만원 이하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긴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지난 8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8회 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근로자의 식사대 월 10만원 이하 비과세 한도를 월 20만원 이하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긴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뉴시스)

대선 기간 중 중산층을 그토록 강조했던 윤석열 정부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식대 비과세 한도를 올리는 것만으로 적당히 여론과 근로소득자에게 생색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득세의 물가연동제든 필요경비를 확대하든 엄청난 물가상승에 따라 궁핍해지는 근로소득자에 대한 세 부담 완화를 반드시 추진해야 할 것이다.

◇ 세금이 역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세금이 역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지금처럼 고물가와 커지는 소득과 빈부 격차로 인해 중산층이 무너지는 시기에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는 중산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지갑을 가진 근로소득자를 위한 세금 제도의 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부는 재정지출만 서두르기보다는 나라의 근간인 세제부터 살펴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박병호 SIG 패키징코리아 사장 겸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겸임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을 지내는 등 다양한 직무를 두루 경험한 전문가입니다.[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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