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박병호 에버그린 패키징 코리아 대표] 저는 우유와 주스를 담는 종이팩을 만드는 국내 제조회사 중 한 곳의 대표입니다.

박병호 에버그린 패키징 코리아 대표
박병호 에버그린 패키징 코리아 대표

그래서 오늘 제가 제안하는 것이 매출을 늘려보려는 얄팍한 상술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늘어나는 플라스틱 사용량과 이로 인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해온 사람으로서 용기를 내어 저의 생각을 제안해 봅니다.

◇ 생수 페트병 하루분만 모아도 작은 언덕 하나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이려면 비닐과 같은 포장재와 함께 생수 페트병 사용을 근원적으로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때가 되었고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이미 공감하는 이슈입니다. 그래서 저의 제안은 대부분 페트병에 담아 유통되는 생수를 일부라도 페트병을 대체하여 종이팩에 담자는 것입니다.

현재 종이팩에 담겨 소비되는 우유와 주스 등은 하루에만 평균 630만 개나 됩니다만 페트병에 담겨 소비되는 생수는 아무리 낮춰 잡아도 이것의 3배 이상인 2000만개를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종이팩도 접지 않고 하루 소비분만 쌓는다면 고층아파트 한 동만큼 되는데 페트병이라면 접히지도 잘 구겨지지도 않으므로 작은 언덕 하나만큼 쌓이게 될 것입니다.

재활용센터에 쌓인 페트병 묶음(박병호 대표 촬영)
재활용센터에 쌓인 페트병 묶음(박병호 대표 촬영)

◇ 플라스틱 분리수거와 재활용의 실상

플라스틱은 한때는 인류에게는 축복이라고 할 만큼 인류의 삶에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소비량이 엄청나게 늘어난 지금은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고 재활용에 힘쓰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재앙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500년이 지나도 썩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플라스틱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 중 하나로서 세계 2, 3위 수준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2위든 3위든 플라스틱이 환경을 파괴하여 재앙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 국민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고 재활용에 힘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재활용품을 모아 버리는 장면은 공동주택에서는 흔히 보는 일상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힘들게 분리수거를 해도 막상 재활용되는 비율은 높지 않다고 합니다. 투명한 것과 색깔이 있는 것을 구분하지 않거나 비닐 라벨 미분리, 특히 용기 안의 담배나 껌 등으로 인해 오염되면 재활용하기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 플라스틱, 재활용은 어려워지고 소비는 늘어나고

여기에다 분리수거된 플라스틱을 선별하고 처리하는 재활용 업체들의 노력도 수익성 악화로 인해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쓰레기로 쌓인 플라스틱은 폐기물 수출을 통해 동남아로 보냈다가 수입국들의 반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재활용 안 되는 플라스틱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도록 매립 혹은 소각해야 하지만 그냥 버려져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폐기물 발생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더욱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플라스틱을 분리수거하고 재활용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대책은 가능하다면 아예 생산을 줄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페트병과 이물질을 분리하는 작업(박병호 대표 촬영)
페트병과 이물질을 분리하는 작업(박병호 대표 촬영)

◇ 생수를 페트병 대신 종이팩에 담는다면

이제 보편적인 소비 물품이자 생활필수품이 된 생수를 플라스틱 재질의 페트병이 아닌 종이팩을 이용한다면 재활용 가능성과 이에 따른 비용을 대폭 낮추어 환경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종이팩은 고품질의 펄프로 만들어져 분리수거만 제대로 된다면 간단한 공정을 거쳐 화장지나 위생지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설혹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소각해야 하는 경우, 다른 폐기물에 비해 열량이 높아 소각효율이 매우 높으며 매립되는 경우에도 오랜 기간 썩지 않는 플라스틱과 달리 코팅의 정도에 따라 5년에서 50년 정도면 토양에서 분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친환경이라는 장점 이외에도 값이 상대적으로 조금 저렴하고 포장재를 운반할 때 접히는 성격으로 인해 부피가 작아서 운송 부피를 줄여 운반비가 절감되고 음료나 생수 생산공장에서의 재료 보관공간을 줄일 수 있어 배기가스 감축이나 창고 공간의 활용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습니다.

◇ 종이팩의 최대의 약점

그런데도 지금까지 종이팩에 생수를 담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종이팩은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페트병과 비교하여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충격에 약하고 제품의 보존기한이 짧다는 것입니다. 종이팩은 원래 냉장 보관하는 신선식품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생수 회사가 종이팩 대신 페트병을 선호하고 일부에서는 직접 페트병을 생산하기도 합니다. 페트병은 투명하여 내용물이 훤히 보이고 크기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과 무엇보다도 내용물 보존기한과 유통기한을 길게 잡을 수 있어 수익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보존기한을 늘린 테트라팩의 등장

보존 기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이팩에 알루미늄을 덧붙여 내용물의 보존과 유통기한을 늘린 멸균팩(aseptic pack)이 있습니다.

흔히 이를 만드는 회사의 이름을 따서 테트라팩이라고 부릅니다. 우유와 같은 신선식품은 살균팩이라고 하는 종이팩에 담고 두유와 같이 장기간 보관이 필요한 음료는 멸균 포장인 테트라팩에 담고 있습니다.

자원순환의 날인 지난해 9월 6일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와 자연드림씨앗재단이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자연드림 아이쿱생협 자연드림에서 개최한 '종이팩 자원 살리기 멸균팩 손분리 경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멸균팩 분리 시간을 겨루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자원순환의 날인 지난해 9월 6일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와 자연드림씨앗재단이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자연드림 아이쿱생협 자연드림에서 개최한 '종이팩 자원 살리기 멸균팩 손분리 경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멸균팩 분리 시간을 겨루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외관으로 구분하면 일반 종이팩은 상단이 지붕이나 텐트처럼 생겼고 멸균팩인 테트라팩은 사각형이거나 원형 등 몇 가지 형태로 제작됩니다. 테트라팩은 보존 기간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동시에 알루미늄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재활용이 매우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경부에서도 기존에는 살균팩과 멸균팩을 모두 종이팩으로 지칭하고 쓰레기 배출시 혼합하여 배출하도록 하였으나 테트라팩 내부의 알루미늄 포일(foil)로 인하여 혼합 배출시 재활용이 되지 않는 관계로 2022년 1월부터 일반팩과 멸균팩으로 구분하여 별도로 분리수거 및 재활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종이팩의 단점은 소비자에게는 장점

현행 페트병에 든 생수의 유통기한은 2년입니다.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 2년간 유통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고여 있는 생수를 마시고 싶은 소비자는 누구도 없을 것입니다. 제조일자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라도 페트병에 찍힌 유통기한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장기간의 유통기한과 잘 보이지 않는 유통기한 인쇄는 생수를 제조하는 회사로서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소비자의 입장이라면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일 생수가 종이팩에 담겨있다면 종이팩의 보존기한은 대략 3개월 수준이므로 유통기한을 보지 않아도 최근에 생산된 제품이라는 것이 명백합니다.

종이팩으로 생수를 담는다면 회사는 유통기한이 짧아져 기한이 지난 재고의 폐기비용은 부담되겠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손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수를 담았던 종이팩은 내용물이 우유나 주스와 달리 재활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 환경부담금을 줄일 수 있고 환경을 염려하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한반도가 플라스틱으로 뒤덮이기 전에

그리 넓지 않은 한반도가 플라스틱으로 뒤덮이기 전에 플라스틱 소비량을 줄이고 재활용에 힘써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주지의 사실입니다. 과학자나 기술벤처들은 쉽게 재활용되거나 잘 소각되고 혹은 매립되어도 단기간에 썩는 플라스틱을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성과가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와 동시에 오래 보관하면서 먹는 생수가 아닌 단기간 유통할 목적의 생수는 지금의 페트병 대신 종이팩을 활용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편의점에서 사는 작은 용량의 생수는 장기간 보관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식료품 슈퍼마켓에서 플라스틱을 아예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고 합니다.

야구장 같은 운동경기장에서 소비되는 생수도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서 마시려고 하는 제품입니다. 야외 소풍 나가서 마시는 생수도 그렇고 재난이나 사고 현장에서 긴급 재난지원용으로 보급하는 생수도 그렇습니다. 이렇듯 생수는 장시간 보관하면서 마시기도 하지만 즉각적으로 소비하려는 용도도 많이 있습니다.

집에서 보관하고 마시는 대용량의 생수 페트병은 대부분 분리수거되고 있지만 작은 용량의 페트병은 휴대하고 다니면서 소비하다 보니 분리수거되어 재활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생수를 담은 종이팩은 내용물이 우유 등의 경우보다 재활용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사용 목적과 상황에 부합되는 경우, 적절한 크기의 생수만이라도 종이팩을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즉각적으로 실행 가능한 한 가지 방안이 되지 않을까요? 생수 회사와 환경단체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박병호 에버그린 패키징 코리아(Evergreen Packaging Korea) 대표이사 사장 겸 숭실대 겸임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을 지내는 등 다양한 직무를 두루 경험한 전문가입니다.[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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