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박병호 에버그린 패키징 코리아 사장·숭실대 겸임교수] 지난 12월 9일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에게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에서 제동이 걸렸다.

박병호 에버그린 패키징 코리아 사장·숭실대 겸임교수 
박병호 에버그린 패키징 코리아 사장·숭실대 겸임교수 

주주 평등의 원칙을 주장하는 이들은 환영하고 벤처업계는 실망하고 있다. 우리 미래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는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대선에 묻혀버린 듯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회사의 의결권은 1주 1표를 원칙으로 하는데 차등의결권이란 주식의 종류별로 의결권의 크기를 달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수익 대부분을 한국에서 거둬들이는 명백한 한국회사 쿠팡이 올해 미국에 상장하여 미국회사가 된 것이 본격적으로 차등의결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 쿠팡이 미국으로 간 것이 입법 추진의 배경

쿠팡의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한국이 아닌 미국을 선택하여 주식을 상장한 것은 나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표면적인 것은 차등의결권 때문이었다. 경영권 위협을 받지 않고 지속경영을 위해 차등의결권을 금지하는 국내 증시 대신 일반주식의 29배 의결권을 인정해준 미국 증시를 선택한 것이다.

이로써 차등의결권을 금지하는 경직적인 국내 법체계로 인해 우량한 기업을 미국 증시에 빼앗겼다는 비판이 촉발되었다.

사실 그 이전부터도 창업자의 의결권을 강화하여 경영권을 방어하고 기업가정신을 지속할 수 있게 하여 벤처 활성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벤처 협회 등을 통하여 진즉에 제기되었었다.

◇ 만만치 않은 반론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1주 1표의 원칙은 민주주의 평등선거의 원칙과 함께 자본주의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진 구조가 되었다. 우리의 상법에서도 이를 기본 원칙으로 책정하고 있으므로 차등의결권은 주주 평등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강한 반론이 제기된다.

차등의결권을 통해 일반 소수 주주의 권리가 더욱 약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며 재벌의 편법 상속과 부의 대물림에 이용될 수 있다는 논리로 법 개정을 반대한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왼쪽 세 번째) 등 경영진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첫날인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상장을 기념해 오프닝 벨을 울리고 환호하고 있다. 쿠팡은 종목 코드 CPNG로 뉴욕 증시에 입성했다. [뉴욕=AP/뉴시스 자료사진]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왼쪽 세 번째) 등 경영진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첫날인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상장을 기념해 오프닝 벨을 울리고 환호하고 있다. 쿠팡은 종목 코드 CPNG로 뉴욕 증시에 입성했다. [뉴욕=AP/뉴시스 자료사진]

 

지금도 무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지만 활성화되지 않는데 굳이 차등의결권을 보장하는 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벤처 활성화를 유도하겠다는 취지에서 벤처기업법 개정을 통해 미국과 같이 차등의결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고자 한다고 하지만 법안의 취지와 달리 실제로 벤처 활성화로 연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 주식회사 제도는 인류의 획기적인 발명품이지만

1주 1표의 의결권은 주식회사라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갖춰지게 된 제도이다. 주식회사는 자금조달방식을 차입/대출 방식에서 투자/성과공유로 전환하고 1주 1표의 의결권으로 본격적인 자본주의의 시대를 가능하게 하고 서양 국가들이 해양진출을 통하여 동양국가들을 압도하게 한 변곡점을 찍은 제도이었다.

1주 1표라 함은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18세기 사회적 신분이 광범위하고 세습적으로 큰 영향을 주던 시절에는 획기적이었다. 필자의 생각에는 주식회사 제도가 종이, 화약, 인쇄술, 나침반을 뛰어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었지만 변화된 환경에서 이를 끝까지 고집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다.

◇ 구글이라는 테크기업의 상장으로 바뀌게 된 1주 1표의 원칙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야 하고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해야 하기에 융통성을 가지고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미국에서도 구글 이전에는 차등의결권이 그리 흔한 제도는 아니었다. 일부 가족기업이나 영속적인 경영이 필요한 미디어 기업을 제외하고는 1주 1표의 원칙이 지배해왔다.

2004년 구글이 나스닥 상장을 위한 기업을 공개할 때, 자본가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밋이 일반주식의 10배 의결권을 지니는 ‘클래스 B’ 주식을 보유하는 식으로 의결권을 확보한 뒤부터는 소위 잘 나가는 테크기업은 당연히 차등의결권을 요구하는 것이 트렌드(trend)가 되었다.

◇ 자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아이디어이기에

트렌드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자본보다 사람과 아이디어가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생산의 3요소가 토지, 자본, 노동이었지만 이는 농업이 중요시되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시카고대학의 폴 로먼Paul Romer 교수가 주장하듯 현대에는 새로운 생산의 3요소로서 재료(things), 사람(men), 아이디어(ideas)가 이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에서는 자본은 재료의 한 부분일 뿐이고 사람과 아이디어가 더욱 중요한 시대이다. 회사의 의결권도 자본보다도 사람과 아이디어에 비중을 둘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면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통합과 통찰이 열어나갈 꿈의 시대에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는 혁신적인 시도가 분명 많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시장을 믿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지길

차등의결권을 허용했을 경우 앞에서 우려했던 것들이 현실이 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시장을 믿고 실행해 보아야 한다. 해당 회사의 주주들과 투자자를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모든 것을 법과 규제를 통해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구글이나 쿠팡과 같은 기업이라면 차등의결권의 가능성을 막는 것 또한 올바른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2016년 7월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 외벽에 구글 로고가 붙어 있다. [마운틴뷰(미 캘리포니아주)=AP/뉴시스 자료자신]
2016년 7월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 외벽에 구글 로고가 붙어 있다. [마운틴뷰(미 캘리포니아주)=AP/뉴시스 자료자신]

법의 개정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지금 올라온 법 개정 내용을 보면 언뜻 보아도 의문시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차등의결권을 벤처기업에만 한정하여 적용해 준다고 하는데 벤처인증이라는 형식보다는 범위를 넓혀 모든 기업에 조건을 갖춘다면 가능하도록 해야 효과적인 법 개정의 취지가 살지 않을까?

둘째로는 비상장기업에만 적용하는 경우에는 발행 후 10년만 존속할 수 있게 되어있고 상장한 경우에는 3년으로 일몰조항이 적용되는데 이렇게 반드시 인위적인 기한을 제한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특히 상장 후 3년은 기업을 제대로 키우기에는 짧은 시간인데 상장과 함께 인수합병의 소용돌이에 해당 기업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개정법안에는 10배의 의결권이 최대로 규정되어있는데 쿠팡의 경우 29배였고 버크셔 해서웨이의 대주주 워렌 버핏Warren Buffet은 1만 배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주당 몇 배라는 제한보다는 전체 주식 중 차등의결권 주식의 비중을 제한하는 것이 차라리 법의 취지에 맞지 않을까?

정부와 국회는 법 개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해도 주저할 필요는 더욱 없다. 다만 업계의 많은 이들로부터 올바른 조언을 얻어 소신 있는 올바르게 법이 개정되기를 기대한다. 이와 동시에 이 이슈는 중요한 문제이기에 우리 국민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 박병호 에버그린 패키징 코리아(Evergreen Packaging Korea) 사장 겸 숭실대 겸임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을 지내는 등 다양한 직무를 두루 경험한 전문가입니다.[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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