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래연구소

[이코노뉴스=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고은...고은이 누구던가. 한용운을 한국문학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는 한국문학계의 사령탑 백낙청 선생이 고은의 시에 대해 한용운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고까지 평했던 대시인이다.

▲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그런 그가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우리를 당혹하게 만든다. 시대의 아픔을 대중과 같이하면서 그 고통을 시로 승화시킨 사람의 비루한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이윤택, 조민기로 연쇄적으로 나오는 이름들을 보면서 우리사회 전체가 무언가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성들에게 몹쓸 짓을 한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그 개인에게 책임이 지워져야 하겠지만 은밀한 수준의 성폭력이 이토록 만연해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의 성폭력이 단지 개인의 도덕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한 사회의 불특정 개개인에게 어떠한 특성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드러난다는 것은 이 특성이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개인의 행위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투운동을 뉴스로 접하고 여러 기억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20여년전 강남에서 직원 십수명인 작은 회사를 다녔을 때 일이었다. 그 당시에 가장 이해가 안 되던 것은 사장의 손버릇이었다.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여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던 회사에서 사장은 틈만 나면 여직원들을 쓰다듬었다. 일 잘한다며 여직원들의 등을 칭찬이랍시고 쓰다듬고 딸같이 귀엽다고 여직원의 팔뚝살(삼두박근부분)을 잡고 흔들었다. 여직원들은 앞에서 웃음으로 넘어갔지만 뒤에서는 사장에 대해서 욕을 해댔다. 이런 행위가 직장내 성폭력이라는 개념으로 규정될 수 있는지는 나도 여직원들도 잘 몰랐다. 다만 사장 앞에서 웃고 있던 여직원들이 돌아서서 극도로 불쾌해하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여성들의 많은 수가 이런 유형의 폭력을 경험해 오거나 노출되어왔다. 가장 안정된 직장인인 여교사의 70%가 성추행을 경험했다고 보고된다. 학교라는 공적 기관 이외의 장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성폭력의 강도가 어떤 수준인지는 불문가지다.

여러 해 전의 일이다. 나와 친한 후배는 세계적인 정보통신 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미국회사의 한국 지사였다. 미국에서 1년에 한두 번 한국의 경영상황을 둘러보러 오곤 했다. 후배는 미국에서 온 본사 임원을 모시고 며칠을 보냈다. 임원을 보내기 전 업무 관련한 직원들을 모아 송별회를 하기로 했다. 식사와 술을 먹고 나중에는 노래방에 가게 되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차장급의 한국인 직원이 그 임원을 성추행한 것이었다. 임원은 여성이었다. 지사의 차장이 본사의 임원을 성추행하는 황당한 일에 회사가 발칵 뒤집혀졌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국인 차장은 뒷풀이에서 늘 해오던 성추행을 되풀이 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즉 미국인 고위임원 대상의 성추행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무수하게 많은 한국인 피해자가 있었다는 의미다. 그들 대부분은 그 차장의 업무 지시와 명령에 죽고 살아야 하는 부하직원이거나 그의 평가 한마디에 정직원이 되든지 아니면 나가야 하든지가 달린 인턴들이었다.

이 두 사건은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다. 내가 기억하는 두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은밀한 성폭력은 조직과 위계질서라는 메카니즘 속에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조직의 위계질서는 결국 한 장소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한 노동통제와 연결된다. 사람들은 성폭력을 직장 내 여성의 문제로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만연한 성폭력은 성의 문제이기 전에 폭력의 문제다. 이 폭력은 노동자 개개인에 대한 노동통제전략과 맞물려 있다.

교류분석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끊임없는 정서적 자극과 반응을 다른 상대와 교류한다고 한다. 밤 10시에 퇴근하는 아들에게 밥 먹었냐고 묻는 아버지는 아들의 저녁식사 사실유무를 묻는 것이 아니다. 아들에게 묻고 아들이 자신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하기를 기대하는 정서적 활동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정서적 자극을 스트로크(stroke)라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이 스트로크의 관계망이 문제가 생기면 인간의 정신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무너진 정서는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

성폭력은 위계관계를 끊임없이 확인해서 조직 내의 위계를 확보하고 위계의 맨 아래층에 있는 존재들을 겁박하려는 부정적 스트로크다. 유력정치인의 아들이 군대에서 후임병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한 일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그가 성행위의 대상자가 필요해서 후임병을 이용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성폭력으로 보이는 행위는 인간 간의 관계망 속에서 폭력성이 드러난 것이다. 가장 약한 고리가 여성부하이면 성폭력의 형태로 동성 부하이면 ‘태움’같은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 폭력의 네트워크 위에서 방향을 잃은 채 부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드문 수준의 고강도 폭력이 왜 유독 한국사회에서 내면화되어 있는 것일까. 친일청산을 안 해서 그럴까. 일본에서는 현재 한국과 비슷한 유형의 폭력은 직장이나 노동현장의 문화로 존재하지 않는다. 유교문화 때문일까. 같은 유교권인 중국 어디에서도 한국수준의 조직 내 폭력은 보이지 않는다. 만연한 폭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폭력의 시작은 분명 한반도수탈을 위해 고문을 포함한 폭력적 경찰통치체제를 만들었던 일제였다. 그러면 해방 이후 이 시스템은 붕괴되거나 해체되어야 옳다. 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힘은 도대체 무엇인가. 필자는 이것을 성장우선전략으로 채택된 노동통제방식에서 찾는다.

▲ 성폭력을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부족한 이해다. 이번 미투운동을 계기로 한국의 노동통제를 통한 성장근본주의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사진은 '성폭행'에 휩싸인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특정 시대 특정 장소에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은 기술과 노동조직의 함수다. 기술과 자본이 부족한 나라가 성장우선전략을 채택하면 결국 노동을 재조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가치설을 비판하지만 사실 노동의 효율적 조직화는 경제성장의 핵심요인이다. 가령 서구적 근대화 이전 에도시대 일본의 폭발적 경제성장은 기계가 아닌 노동 때문에 가능했다. 이것을 일본 학자들은 아예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근면혁명으로 부르고 있다. 서구학계에서조차 기계화보다는 새로운 노동력공급과 조직화가 산업혁명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남한은 성장을 목표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성장을 목표로 한 전략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성장을 거부하는 정부란 존재할 수가 없다) 성장만이 정부와 국민의 유일한 목표로 설정된 사회시스템이 남한에 정착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군대의 폭력성은 온순한 노동자를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폭력의 내면화를 경험한 남성들은 사회로 진출해서 나의 위와 아래를 철저히 구분하게 된다. 위에는 절대충성과 아래에는 폭력적 스트로크를 통한 통제를 사회생활이라는 명목으로 실천해나가게 된다.

한진중공업 투쟁을 기억하는가. 나는 한진중공업의 투쟁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조선업의 격심해지는 국제경쟁 측면에서 한진중공업 경영진의 선택을 이해했고 노동자의 투쟁을 비판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글을 읽었다. 그녀의 글에는 20대 처녀가 감당해내야 하는 현장에서의 노동통제가 씌어 있었다. 20대 꽃다운 처녀들이 반장들에게 줄 지어서서 쪼인트 당하던 일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현재 보이는 조직노동자들의 이기주의에는 자신들의 고단했던 삶에 대한 감정이 묻어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국제경쟁력과 경제학적 수치를 들먹여 본들 그들의 기억에는 소모품처럼 쓰이다 산재로 죽어간 동료와 가혹했던 노동통제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다.

성폭력을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부족한 이해다. 문화계의 성폭력을 문화권력의 폭력으로 이해하는 협소한 이해는 이런 폭력체제에 대한 외과적 수술을 주저하게 만들 뿐이다. 미투운동을 계기로 한국의 노동통제를 통한 성장근본주의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은 폭력주식회사 대한민국에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은 헤드헌팅 브레인코리아 대표와 코위컨스트럭션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지방자치단체의 발전방향에 대한 컨설팅과 민간기업의 조직문화의 개선사업 등의 자문을 맡아 일해왔습니다. 현재 국제관계와의 연관성 속에서 한국사회의 모순을 이해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년 째 지식인그룹 ‘고전강독회’를 운영하며 동서양 고전을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단행본 ‘낯선 것과의 조우’와 ‘공공부문 개혁논의의 현주소와 충남에 대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