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래연구소

[이코노뉴스=김창훈 민족미래연소 연구실장] 민주주의는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선거일 투표하는 것만을 의미했다.

▲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지지하는 사람도 정당도 없는 경우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투표행위를 거부하기도 했다. 남 탓하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한국인의 민도가 낮다는 등의 소리를 서슴지 않기도 했다.

한국인의 시민적 의식이 낮아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가능해도 유럽과 같은 선진복지국가의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이런 투정꾼들의 한국인 비하를 단숨에 눌러버린 것이 촛불이었다.

전세계를 놀라게 만든 촛불은 1987년 이후 광장의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힘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시민은 다시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임을 만끽했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피곤하고 지친 모습의 시민들만 보인다. 삶에, 생존에 지쳐가는 시민들에게 촛불은 희망의 해결책을 제시해줄까. 그런데 해결책에 앞서 고단한 삶에 대한 원인 진단이 먼저 있어야 한다.

한국인이 피곤한 삶을 사는 이유

한국인의 삶이 즐겁지 않고 피곤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국가전략으로 채택, 유지해 온 발전전략이 시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듯이 박정희정부의 경제개발전략은 장면정부로부터 차용한 것이었다. 군사정부든 민주정부든 마찬가지로 한국정부는 수출주도 성장전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했다. 경제는 그냥 성장하지 않는다. 경제는 시장과 소비를 통해 성장한다. 시장과 소비는 외국도 있지만 한국의 내수시장도 있다. 수출주도전략은 내수를 포기하고 수출에만 올인하는 전략이었다.

수출주도전략이 어느 정도 합리적일 때도 있다. 수출에 집중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그 외화는 은행에 쌓이고 다시 기업과 가계로 순환했다. 60~70년대 미국이 관할하는 세계체제에 들어와 있던 국가들의 상당수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독일과 일본이 그리고 유럽전체가 성장열차에 올라타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감소하던 세계무역량은 70년초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다.

이런 세계적 흐름을 올라타 승승장구하던 박정희정부는 무리한 중화학육성책을 통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재임기간 비교적 순탄하게 경제를 확장시켰다. 이 시절의 경험이 정책결정자에게나 일반시민에게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 수출을 통한 낙수효과다. 그러나 이 효과는 이제는 효과이기보다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가고 있다.

수출에만 모든 가용 자원을 투입하면 경제의 나머지부분을 포기하게 된다. 또한 수출에만 집중하는 전략은 전략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소수의 대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공룡기업들은 재벌이라는 모습으로 국가전체를 주무른다. 재벌은 내수시장을 독점하고 노동자를 착취했다. 착취라는 어휘가 적절하지 않다면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고 부당하게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이용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독재정부에서는 그나마 말을 듣던 재벌은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점점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탄하던 말이 이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고임금에 대한 기업의 대응

민주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동자들이 권리 찾기에 나서면서 한국의 경제생태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기업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기업에 직접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에게는 높은 임금을 주지만 간접 고용을 늘이고 하청에 대한 착취의 강도를 더욱 강화했다. 즉 노동시장 전체를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으로 분할했다.

▲ 소득상위 10%에 속하고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사내하청과 불안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에 눈을 감으며 노동귀족으로 변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진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지난해 울산공장 본관앞에서 2017년 총파업 출정식을 가지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대기업의 높은 압박은 하청기업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고 이는 하청기업노동자의 임금을 더욱 하락시켰다. 견딜 수 없는 기업들은 문을 닫고 해외로 나가게 되었고 (전 KDI연구원 황수경에 따르면 100만의 제조업 일자리가 기업의 해외이전으로 인해 사라졌다) 이런 영세 중소기업의 제조업노동자는 3차 서비스업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서비스업은 언제나 제조업보다 임금이 작다. 거의 절반 남짓에 불과할 뿐이다. 이렇게 대기업의 좋은 일자리와 중소기업, 서비스업의 불안정한 일자리 이렇게 양분된 것이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다. 한국인의 얼굴이 밝지 않은 이유의 대부분은 여기서 비롯된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반(反)노동자성

‘노동자’라는 단어에는 역사성이 있다. 그 역사성은 피어린 투쟁으로 점철된 역사성이다. 유럽의 누군가는 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아동노동에 반대했고 미국의 다른 누군가는 광산기업에 고용된 잔인한 구사대에 맞섰다. 한국의 전태일 역시 옆자리 노동자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했다. 노동자가 근로자가 아닌 이유는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이어져 온 타인에 대한 배려와 희생에 있다.

한국의 대기업노동자들의 고임금은 바람직한 것일까. 물론 대기업노동자들조차 할 말은 많을 것이다. 장시간 노동에 이만큼 받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그런데 기득권노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사실은 그들의 상대적 고임금을 맞추기 위해서 기업주는 노동시장을 왜곡시켜 사내하청과 불안정노동자를 대폭 증가시켜 왔다는 점이다. 기업의 노동시장 왜곡에 ‘눈 가리고 아웅’하며 대기업노조들은 장단을 맞춰 왔다. 말로는 노동자 단결을 외치지만 눈앞의 불안정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상위 1%만이 아닌 상위 10%의 소득비중이 늘어난 드문 나라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는 “상위 10%의 경우 소득 증가 속도가 고도성장기와 비슷하지만 하위 90%의 소득은 정체 또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라고 말한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소득은 거의 3배 가까운 증가를 이뤘다. 그러나 소득의 증가분은 대부분 상위 1%와 상위 10%에 집중되었다.

상위 10%는 대부분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노조조직율이 10% 남짓한 한국에서 노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노동귀족에서 ‘노동자’로 돌아오길 그래서 하청노동자와 불안전노동자와도 연대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가는 새로운 개혁주체로 거듭 나길 기대해 본다.

 

※김창훈 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은 헤드헌팅 브레인코리아 대표와 코위컨스트럭션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로 지방자치단체의 발전방향에 대한 컨설팅과 민간기업의 조직문화의 개선사업 등의 자문을 맡아 일해왔습니다. 현재 국제관계와의 연관성 속에서 한국사회의 모순을 이해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년 째 지식인그룹 ‘고전강독회’를 운영하며 동서양 고전을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단행본 ‘낯선 것과의 조우’와 ‘공공부문 개혁논의의 현주소와 충남에 대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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