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미래연구소

[이코노뉴스=강철구 전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지난 11월 21일, 통계청이 ‘2016년 일자리 통계’를 발표했다.

▲ 강철구 전 이화여대 교수

이것을 보면 한국사회의 심각한 임금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가 매우 큰데 대기업 근로자가 세전 평균액으로 보아 30대 452만원, 40대 585만원, 50대 630만원을 받는 반면 중소기업 노동자는 30대 246만원, 40대 265만원, 50대 242만원에 불과하다.

연령대에 따라 다르나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에 따라 대기업노동자가 중소기업노동자보다 180%에서 220%까지 더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세 배 정도를 더 받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평균액으로 본 것이고 평균 1억 원 이상의 고임금을 주는 대기업들도 많으니 그 경우와 비교하면 차이는 훨씬 커진다.

2014년에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기아차 광주공장과 그 협력사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그 실상을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기아차 정규직은 1억 원, 그 사내하청노동자는 5000만원, 1차협력사 정규직은 4700만원, 그 사내하청은 3000만원, 2차협력사 정규직은 2800만원, 그 사내하청은 2200만원으로 서열화되어 있다. 본사 공장 정규직이 2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에 비해 약 5배의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당기업이 생산공정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권력에 따라 임금수준이 차등화되어 있는데 그 격차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상식화되어 있는 북유럽 및 서유럽쪽 노동자들에게는 생각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이러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는 한 편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루하루를 중노동과 한숨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사이의 권력관계와 지불능력 차이, 조직되어 있는 대기업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노동자의 힘의 크기 차이에서 생겨난 일이다.

이렇게 한국사회는 현재 고임금과 일자리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기업정규직과 저임금에 일자리 안정성이 낮은 중소기업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2중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담장이 매우 높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평생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이하 공시)에 과다하게 몰리는 이유이다. 오늘날 공무원이야 말로 일자리 안정성과 고임금이라는 점에서 최고로 선망 받는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십 대 일의 높은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청년들이 공시준비를 하느라고 아까운 젊은 시절을 낭비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이렇게 임금격차가 심하게 난 것은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시장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부터다. 금융자유화 과정에서 과다하게 들어온 외국자본과 동맹을 맺은 대기업들이 자유경쟁원리를 내세우며 오히려 독과점을 강화하고, 이익률을 최상의 목표로 내세우며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노동자들을 마구 짓밟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정거래를 통해 잘못된 경제 질서를 바로 잡을 책임이 있는 역대정부는 신자유주의에 현혹되어 그런 잘못된 행위들을 막기는커녕 방조했다. 노무현대통령의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자포자기적 발언이 그 단적인 표현이라고 하겠다.

또 정부들 자신도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무역에 지나치게 매달려 무작정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데 앞장섰다. 그 결과 삼성전자나 현대차를 비롯한 일부 수출대기업들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해외공장 건설에 열을 올렸으나 주로 내수에 의존하며 고용의 약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위축되어 경제의 큰 불균형을 가져왔다.

▲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대다수 임금노동자들이 저임금에 내몰리고 있다. 독과점을 강화해온 대기업의 횡포도 큰 문제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도외시하는 정규직 노동조직의 귀족노조화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울산공장 광장에서 조합원 출정식을 여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그 결과 겨우 20년 밖에 안 되는 사이에 한국은 소수 대기업들의 천국이 되었다. 거대한 권력을 가지게 된 대기업들은 협력회사나 하청회사들을 무자비하게 쥐어짜 높은 수준의 초과이윤을 얻고 그것으로 자사의 조직화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세계적 수준의 고임금을 지불했다. 반면 그 산하에 있는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간신히 연명이나 하는 수준의 이익을 얻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한국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체제 아래서 노동자들의 대부분을 저임금 속에 가두는데 성공했고 그것도 모자라 외국인노동력을 근 200만 명이나 수입하여 저임금체제를 확고하게 수립했다. 그 동안 대기업들이 호황을 누렸음에도 한국인 대부분의 삶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이유이다. 젊은이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이 저임금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거기에는 넘어야 할 두 개의 장벽이 존재한다. 하나는 수십 년간 유지해 온 강력한 재벌독식체제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기생하는 조직노동세력이다.

대부분 재벌에 속해 있는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 행하는 갑질 행위는 잘 알려져 있다. 걸핏하면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심지어 경리장부까지도 요구한다. 또 중소기업이나 자영업 부문까지 파고 들어가 시장을 빼앗아간다. 따라서 이 재벌의 폭력적인 침탈행위를 저지하지 않으면 저임금체제를 무너뜨릴 수 없다. 문재인 정권에 들어와 김상조씨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재벌에 대한 규제를 시작하려는 듯한 시늉을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조직노동은 왜 문제일까? 그것은 민노총이나 한국노총 같은 조직노동이 대기업과 야합하여 자기네들만 고임금을 받고 다른 노동자들을 백안시하기 때문이다. 자기네 이권이 줄어들까 봐 심지어 자기네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까지 내치고 있다.

더 나쁜 것은 재벌의 악행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반면 대기업과 담합하여 서민대중을 갈취하는 조직노동의 매우 잘못된 행태는 그들이 쓴 진보의 가면 때문에 은폐되어 있다는 것이다. 조직노동은 1987년 이후 민주화에 큰 기여를 했고 그래서 지금도 진보세력의 핵심인 체 행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 번 진보세력이었다고 영원한 진보세력이라는 법이 있는가.

이번 민노총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기호 2번 후보는 이번 선거에는 반노동자적인 임금양보론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며 노동귀족론, 고임금론을 유포하는 것은 노동개악을 하고 노동자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사용된 자본의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해 있는 이들의 눈에는 자기네들만 노동자로 보일 뿐 자기네들보다 몇 분의 1의 임금 밖에 받지 못하는 비참한 처지의 저임금노동자들은 노동자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이들 저임노동자와의 임금격차를 줄여 함께 살자는 것이 자본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인가.

이런 몰상식한 자들이 조직노동의 수뇌부를 장악하는 한 한국 노동운동의 앞날은 뻔하다. 얼마 안가 국민들의 강력한 지탄과 압력을 받고 무너져 내릴 것이다. 도덕성을 잃고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노조가 어떻게 대부분의 국민과 함께 할 수 있겠나.

 

※ 강철구 민족미래연구소 고문은 서울대 서양사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1979~2012년 서원대, 이화여대 등 대학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쳐왔습니다. 강 고문은 현재 민족미래연구소를 만들어 우리나라가 지향해야할 미래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과 강의를 하는 등 활발히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역사와 이데올로기’, ‘우리 눈으로 보는 세계사’가 있으며 ‘민족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역서를 갖고 있습니다. [이코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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