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신조어를 양산하고 있다. ‘1억 총활약 사회,’ ‘아베노믹스의 새로운 3개의 화살’ 등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쏟아졌다. 일본 국민들도 어리둥절해 할 정도이다.

심지어 아베의 최측근들 사이에서도 말다툼이 벌어졌다고 한다.

▲ 이동준 교수

최근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아베 총리를 수행했던 전 수석총리 비서관 이지마 이사오(飯島勳)와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꼽히는 혼다 에쓰로(本田悦朗) 메이지대학 객원교수, 아베의 영문 연설문을 작성하는 다니구치 도모히코(谷口智彦) 내각관방참여, 일본의 전경련인 게이단렌의 전 사무총장인 나카무라 요시오(中村芳夫)가 아베노믹스와 ‘화살’의 의미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오랫동안 아베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이지마는 “솔직히 (새로운 3개의 화살의)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며 “중장기 목표인 만큼 화살이 아니라 ‘과녁(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화살이 목표를 의미하는지, 방법을 뜻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다.

월가의 투자자들도 “새로운 3개의 화살이 디플레이션 탈피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는데, 이는 당초의 목표를 포기했다는 뜻 아닌가,” “이전 것까지 합쳐서 6개나 화살을 쏴대다니, 아베가 지향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다”고 질문 공세를 벌였지만 아베로부터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참모들이 ‘화살’을 ‘과녁’으로 바꾸자고 조언했지만, 아베는 이마저도 수용하지 않았다.

다소 억지처럼 보이는 아베의 집착은 정치적 술수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3개의 화살을 둘러싸고 논쟁이 전개되는 것 자체가 아베에겐 득이 된다는 것이다.

올여름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군 ‘안보 법제 개정’ 논란 대신 경제를 최우선 이슈로 바꿔놓은 것이다. 이를 통해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의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보법제 개정 이후 하락했던 아베의 지지율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이후 국정 주요이슈가 경제로 이동하면서 상승하는 추세다.

또 다른 신조어인 ‘1억 총활약 사회’ 역시 이 같은 경제중시 전략의 일환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성장률 유지가 어렵다는 것이 경제학에선 상식에 속한다.

특히 일본의 사정은 심각하다. 지금은 생산가능인구 3명이 1명의 은퇴 노인을 부양하고 있지만, 2055년께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일본의 현재 인구는 1억 2,700만 명인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2060년에는 8674만 명으로 쪼그라든다. 더구나 일본 정부의 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240%로 선진국 중에서도 매우 높은 편이다.

노인인구가 늘어나면 의료보험을 비롯한 복지예산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래저래 노인인구의 급증은 경제적으로 재앙과 같은 일이다.

사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7년부터 저출산 담당상을 따로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아베가 1억 총활약 담당상이란 자리를 만들어 핵심 측근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부장관을 전격 기용한 것은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정책의지가 더욱 강화됐음을 보여주는 정치적 메시지다.

아베는 연말에 지식인들을 모은 ‘국민회의’를 출범시켜 1억 총활약 사회 긴급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재의 1억 인구를 50년 후에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정치적으로 최대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신조어를 내세워 아베는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겠다는 심산이다. 아베가 남은 3년간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3연임에도 도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하지만 아베 정권이 내놓은 신조어는 실현가능한 것일까. 경제현실과 맞지 않는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반응이 많다. <마이니치신문> 10월19일자(석간) 2면은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평가를 소개하고 있다.

▲ 지난달 17일 오전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안보법안 표결을 둘러싸고 항의하는 민주당 의원을 마뜩잖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새로운 3개의 화살’은 속빈 강정?

정치에서 듣기 좋은 슬로건을 내세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다만, 그 슬로건이 ‘꿈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으려면 내실이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베 신조 총리의 ‘새로운 3개의 화살’에는 ‘GDP(국내총생산) 600조 엔’ 등 고상한 슬로건이 즐비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그다지 신통치 않다. 당초 내세웠던 ‘3개의 화살’은 어떻게 됐는가? 모두 합쳐 6개의 ‘화살’은 목표를 향해 날아갈 것인가?

우선 찬찬히 복습을 해보도록 하자. 벌써 잊어버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베 총리가 ‘새로운 3개의 화살’이라는 말을 내뱉기 시작한 것은 자민당 양원 의원총회에서 무투표로 총재로 재선된 9월24일의 기자회견장에서였다.

아베 총리는 그때까지의 성과로서 “고용의 측면에서 100만 명 이상 늘었고, 2년 연속으로 봉급이 올랐다”고 주장했다.

이어 새롭게 ①‘희망을 만들어내는 강한 경제’, ②‘꿈을 엮어내는 양육 지원’, ③‘안심하고 지속되는 사회보장’이라는 화살을 발사하겠다고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 화살의 골자는 각각 ①GDP 600조 엔 달성, ②희망출생률 1.8의 실현, ③개호(介護) 이직률 제로였다.

여하간 이런 목표를 내세웠으니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목표만 있지 구체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 증권회사의 법인 담당자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그날 동료들과 TV 중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갑자지 ‘새로운 3개의 화살’ 이야기를 들으니 기대해야 할지 말지 망설여지더군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 주위에서 ‘빈껍데기’라는 말이 쏟아졌습니다.”

아베 총리는 GDP 600조 엔 달성 시기를 2020년으로 잡고 있지만, 경제계조차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정치적인 메시지이지 않은가”(경제동우회의 고바야시 요시미츠(小林喜光) 대표간사, 9월27일 회견)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다.

작가로서 평론가인 무로이 유쓰기(室井佑月) 씨는 “정책으로서는 덜 익은 감과 같습니다. 정책이라기보다는 소비자의 마음을 빼앗으려는 상품 광고 수준이군요. 이것저것 그럴싸한 말을 붙여 시간이 정해져 있는 TV 뉴스나 와이드쇼에 ‘화살’의 내용은 생략한 채 선전하려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이런 정도의 비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아베 총리는 이달 7일 회견에서 다시 새로운 3개의 화살을 주장했다. 확실히 실현된다면 그야말로 장밋빛 미래가 열리고 실로 반가운 일이지만, 영 찝찝하다.

“기존의 3개의 화살은 이미 부러졌습니다. 아베노믹스는 실패한 것입니다. 이것을 숨기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새로운 3개의 화살이라고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제학 전공인 가네코 마사루(金子勝) 게이오대 교수는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한다.

기존의 3개의 화살이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대담한 금융 완화, ▽기동력 있는 재정 투입, ▽성장전략의 실현이라는 3가지 정책을 말한다. “아베 씨의 설명을 검증해 봅시다. 확실히 고용은 늘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실은 정규직 고용이 줄고 안정적이지 못한 저인금의 비정규직 고용이 늘었을 뿐입니다.”

총무성의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4~6월 고용총수는 5,267만 명인데, 그 중에 정규직은 3,314만 명, 비정규직은 1,953만 명이다.

민주당 정권 때인 2012년 4~6월에는 총수 5,146만 명으로 정규직은 3,370만 명, 비정규직은 1,775만 명이었다. 확실히 총수는 121만 명 늘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178만 명 늘어난 대신 정규직은 56만 명이나 줄었다.

더군다나 “급료가 2년 연속 올랐다”고 주장한 것도 따져보면 매우 이상하다. 올해 6월까지 2년 2개월 간 실질임금(실제 임금에서 물가변동 영향을 제외한 것)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7월에 겨우 전년 같은 달에 비해 0.5% 플러스로 돌아섰지만, 이런 경향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네코 씨는 이렇게 주장했다.

아베 정권은 일본은행이 국채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등 금융완화 조치를 취해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을 늘림으로써 경기와 물가를 자극해 실질성장률, 물가상승률의 ‘연간 플러스 2%’를 달성하겠다고 말해 왔다.

이것이 그야말로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다. 이 ‘이론(理論)’이 무너지면 아메노믹스 전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질성장률은 2013년도에만 2.1% 늘었지만, 2014년도는 마이너스 0.9%였고, 올해도 4~6월은 연율 1.2% 축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물가상승률(생선 및 식품을 제외)은 2014년은 2.6%였지만, 원유가격 하락의 영향도 있어 올해는 보합세가 이어져 8월에는 마침내 마이너스 0.1%라는 디플레이션 경향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새로운 3개의 화살이다. 정책에는 검증과 총괄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이대로는 퇴각을 ‘전진’이라고 강변하며 승리를 장담했던 과거 일본군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GDP 600조 엔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버블 시기 이래 본 적이 없는 연간 3%의 성장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는 비현실적인 꿈입니다. 출생률을 끌어올리는 것도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노동자 파견법 개정으로 젊은이들의 노동·경제 환경을 더욱 악화시켰으면서 어떻게 결혼이나 양육을 하라는 말입니까. 개호 이직률 제로의 경우는 애초부터 지리멸렬 상태입니다. 아베 정권은 스스로 개호 관련 업종의 급료를 깎아놓았으면서도 앞으로는 관련 직종의 이직률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아베 정권이 내세우는 목표와는 반대로 개호 관련 직원의 이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게 분명합니다.”

가네코 씨는 과거 석탄에서 석유로 옮아간 이른바 에너지 혁신으로 자동차나 중화학공업 등의 신산업이 발전했듯이, 가령 에너지 관련 혁신이 일어난다면 교통 인프라나 가전제품 등 폭넓은 분야에도 경제적 효과가 파급될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요컨대 새로운 산업혁명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눈앞의 금융완화나 성장률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대담한 산업 전략을 세워야하는 것 아닙니까.”

아베노믹스를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새로운 3개의 화살에 대해서는 머리를 갸웃거린다. 기존의 3개의 화살 가운데 금융완화를 통해 경기부양 효과가 있었다고 보는 경제학자 후쿠시마 기요히코(福島清彦) 씨(전 릿쿄대 교수)는 “복지의 지표로 GDP나 성장률을 들이대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지금 이런 행동을 하는 나라는 중국과 일본 정도밖에 없습니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베 씨가 내건 목표는 사실상 성장기가 끝난 어른이 자신의 신장을 매년 2cm씩 성장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성숙한 선진국에서는 복지의 판단기준으로 국민의 복리후생이나 삶의 질,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의 10~20년 장기 경제전략에서는 GDP 성장률이라는 단어가 자취를 감출 정도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선진국 가운데 최저 수준인 교육 지출을 늘려 우수한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경쟁력이나 경제의 지속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후쿠시마 씨의 생각이다. “빚이 많기 때문에 유럽 수준의 소비세를 증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만, 성장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강점인 국민의 교육수준을 더욱 끌어올리는 것이 미래를 개척하는 길입니다.”

무로이 유쓰기 씨는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결국, 새로운 3개의 화살이라는 것은 안전보장 관련법의 강행으로 험악해진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는 속임수인 것입니다.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데, 언론들은 거의 손을 놓고 있습니다.”

‘활약’이라는 말은 거북하다

마키 타로( 牧太郎) 객원편집위원

편지의 말미에 “앞으로 더욱 활약하시길 기대합니다”라고 적혀 있으면 때로 복잡한 기분에 휩싸인다. 나에 대한 이런저런 험담을 접했을 때와 같이 뭔가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것 같다. 전혀 ‘활약’할 준비도 생각도 없는데 이런 말을 듣다니, 커다란 실례이지 않은가.

‘활약’이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크게 활동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활동의 성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앞서 말한 편지에서는 뭔가 ‘빛나는 성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힘차게 튀어 오르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우리들은 고양이이다”에는 ‘일대 활약’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힘들어도 날개를 들고 일대 활약을 시도한다”라든지, “쓸모없는 물건을 이용해 일대 활약을 시도한 것이……”라든지. 하지만 이 소설은 중학교 교사인 구사미(苦沙弥) 선생이 키우는 고양이가 근대문명에 어리둥절해 하는 인간을 풍자한 소설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대 활약’은 인간을 비웃는 듯한 복선이 깔려있음이 분명하다.

여하간 ‘활약’이라는 말은 나와는 무관한 단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말이다. 돌연 아베 신조 씨가 모두에게 ‘1억 총활약!’이라고 명했다. ‘1억 총활약 담당 대신(大臣)’까지 나타났다. 뭘 하자는 것인가.

일본인조차 모르는 말이므로 영자 신문들도 황당해 했다. Japan Times는 “minister in charge of building a society in which all 100 million people can play an active role”이라고 설명했다. “1억인 모두가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는 사회의 구축을 담당하는 대신”이라는 의미일까?

‘1억 총…’이라는 말을 들으면 ‘1억 총 참회(總 懺悔)’가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종전 직후의 총리 히가시쿠니 나루히코(東久邇稔彦) 씨는 패전의 원인에 대해 “군·관·민·국민 전체가 철저하게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요컨대 ‘1억’이라는 말은 ‘국가 전체’라는 의미이다. 이건 뭘 말하는가. 우선 아베 씨의 활약상이 걱정된다. 확실히 지구 끝까지 ‘힘차게 튀어 올라’ 여러 나라에 돈을 뿌리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유엔 총회에서의 발언 순서는 브라질 대통령, 미국 대통령, 폴란드 대통령… 아베 씨는 53번째였다. 당연히 청중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이 정도의 ‘활약’이라면 나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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