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읽는 오늘의 일본

최근 노벨상 수상자 선정 결과가 발표되자 일본에서는 연이은 환호가 터졌다.

반면, 올해도 우리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일부에선 일본과 비교하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21 대 0’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정부 예산으로 연구하는 출연연구기관에서 왜 노벨상 하나 못 타냐는 소리도 나왔다.

▲ 이동준 교수

하지만 기초과학 분야 연구 성과는 하루아침에 뚝딱 나오는 것이 아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잘 추진한다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과학자가 젊었을 때 내놓은 논문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많은 인용과정을 거쳐 이론으로 정착해 검증받아야 비로소 노벨상 수상 후보가 될 수 있다.

또 과학연구는 무엇보다 연속성이 중요한데 연구자가 부족하고 여러 환경이나 조건이 미흡하다보니 연구가 단절되기 일쑤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등 세대를 이어 동일한 연구에 매진하는 외국의 사례는 든든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초과학 분야의 성과는 수십 년의 시간과 노력, 투자가 쌓여 이루어진다. 단지 노벨상 수상이 목표가 아니라 기초과학분야가 튼튼해야 응용과학기술도 발전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관심과 꾸준한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노벨상을 못 받는다고 성화를 부릴 것이 아니라 차제에 기초과학 분야 투자 및 R&D(연구개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주목되는 점은 일본이 2001년 이후 미국에 이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국가가 됐는데도 마냥 기뻐만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 내부에서는 ‘아직 멀었다’며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과거에 뿌린 씨앗이 지금 열매를 맺고 있을 뿐 미래에도 일본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우려인 것이다.

▲ YTN 방송 캡처

사실 일본은 지난 2001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향후 50년 동안 노벨상 수상자 30명 배출’이란 목표를 세우고 과학 분야 인재 양성 및 연구 지원에 열의를 쏟아왔다.

일본의 과학 분야 전문가들은 잇단 노벨상 수상의 성과가 장기간의 투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니시 다카시(大西隆) 일본학술회의 회장은 “과학기술 입국으로서 경제에 치중했던 1980∼1990년대에 투자한 것이 꽃을 피웠다”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기타사토(北里)대 특별영예교수는 1970∼2000년 사이 과학연구비 보조금 8000만 엔(약 7억6000만 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2050년까지 수상자 30명’이란 정부의 목표에 비해 현재까지 일본의 노벨상 수상 성적은 차고 넘치는 수준이지만, 일본은 만족하기는커녕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근래에 일본이 받은 노벨상 수상 실적 등은 과거부터 이어진 투자의 성과에 불과하며 현 상황을 보면 미래에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미래 과학기술 예산을 끊임없이 증액하는 중국이 대학원생 약 6만 명을 유학시키며 일본 추격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은 이번에 최초로 과학 분야 노벨상(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일본경제신문>은 10월 15일 “노벨상 러시는 실력인가”라는 타이틀로, 사카기바라 사다유키(榊原定征) 게이단렌(経団連) 회장,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전 문부상(중의원 국회의원),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 미쓰비시(三菱)종합연구소 이사장의 의견을 잇달아 소개했다.

노벨상 업적과 수상 시기 간에는 수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의 시간차가 존재한다. 어느 나라에 수상자가 많다고 해서 그것이 수상 시점의 과학기술 수준을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은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 추세가 유지될지 여부는 지금 어떤 태도로 임할지에 달려 있다.

일본을 포함한 각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연구성과를 시장의 필요에 맞추는 이노베이션 중시로 향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열쇠는 ‘독특한 인재’를 어떻게 육성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은 장래 노벨상 수상자의 씨앗을 심는 일이기도 하다. <일본경제신문> 편집위원 요시카와 가즈키(吉川和輝)

노벨상 예비군은 20명, GDP 1%를 투자해야

사카기바라 사다유키(榊原定征) 게이단렌(経団連) 회장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박사가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전쟁에서 패한지 얼마 안 되어 모두들 자신감과 꿈, 희망을 잃어버렸던 시절이었다. 학교 선생이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절반 이상이 ‘과학자’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 중 하나이다.

2000년 이후 자연과학 분야에서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가 미국에 이어 가장 많다. 이는 일본의 학술 수준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만이 아니다. 과학을 추구하는 젊은이, 소년소녀가 분명히 늘 것이다.

그 효과는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 이번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선생의 수상으로 ‘자극야기다능성획득(STAP) 세포 논문조작 소동’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은 일본의 국제적 신용도도 회복되었을 것이다.

내 눈앞에 일본이 생산한 연구논문과 인용지수가 낮아지고 있다는 데이터가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상대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숫자가 줄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중국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투자를 하고 있지만,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세어본 것만으로도 현재 20명 정도의 노벨상 후보가 있다. 과도한 비관은 불필요하다.

기술혁명은 일본 경제성장의 원천이다. 토레이의 탄소섬유와 같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상품과 제품에는 압도적인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면 기술을 빌리면 세계무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게이단렌(経団連) 회장이 된 이후 늘 ‘제조업 입국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해 왔다. 경제를 견인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역시 제조업이고, 그 원점은 이노베이션의 부활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도 정신 차리고 있다. 몇 번이나 요구해온 사령탑 기능이다. 작년 5월에 종합과학기술회의가 ‘종합과학기술 이노베이션 회의’로 개칭됐다. 회의에서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일도 하게 됐다.

역시 과제는 나랏돈을 투자하는 규모가 여전히 작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실현해야 한다. 경제계로서는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국가예산의 중점적 배분을 계속해서 요구해왔지만, 지금껏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지속적으로 이 목표의 실현을 요구할 것이다. 재정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노베이션이 성장의 원천이라는 자각을 새삼스럽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우선순위를 한 단계 끌어올리지 않으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제조업은 독자적 기술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하나의 기반 연구가 채산성에 맞추기 위해서는 20년, 30년 걸린다. 늘 성과는 지지부진하기 일쑤이다. 어느 회사든지 연구개발을 위해 걸어온 길은 험난했을 것이다. 그래도 경영자는 미래를 보고 긴 안목으로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연구자들이 정열을 갖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는 없는 것,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추구하고 도전해 나가야 한다. 이런 자세를 포기하는 것은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대책으로는 미래가 없다. 경종을 울려라.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전 문부상(중의원 국회의원)

이번에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선생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했다.

너무 기쁘다. 20년 전부터 과학기술기본법을 만들어 기본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나라 재정이 어려워도 예산을 늘리고 과학기술에 힘을 쏟아온 것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노벨상 수상이 늘어나는 것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수학·과학 기피 현상이 있다고들 하는데, 젊은 세대를 향한 정책을 철저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민당에서는 과학기술을 강화하기 위한 조사모임이 있어 입법화나 예산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불안한 것은 일본의 예산 증가가 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유럽의 대두가 두드러진 것에 대해 주시하고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베 신조 총리가 새로운 3개의 화살로 ‘강한 경제’를 만들고자 한다면 과학기술로써 이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첨단 수준으로 국가가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투자가 필요불가결하다. 예산을 인재육성을 위해 중점적으로 배분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업에도 연구비를 내도록 하고, 정치권도 세제 측면에서 이를 지원한다. 지금 여기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는 험난할 것이다. 과학기술 부문에서 노벨상이 매년 나오는 토양을 지금부터 확실하게 구축해 나가야 한다. 그러한 투자 목표를 정부는 명확히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자원 소국(小國)인 일본은 인재를 육성하는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방심했다가는 다음 세대에는 성장하지 않는다. 한때는 교육이 물러 터져 학력수준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하나로 뭉쳐 이를 개선하고자 하면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 졌다. 현장에서 긴장감을 갖고 임해온 것이 학력 향상 등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노벨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토대 교수의 재생의료에 관한 연구나 시마쓰(島津)제작소의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 시니어펠로의 단백질 분석 방법에 관한 연구를 접했을 때는 정말 놀랐다.

기본적인 일본인의 교육력이 상당하다는 자랑스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이를 다음 세대에 이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감이 절로 생겼다.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미국에서도 지금 예산 사정이 좋지 않다. 하지만 최첨단 분야에서는 자금을 투입하고 있고 기업들의 사회 공헌도 여전히 돋보인다. 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확실히 투자하고 있다. 기부하려는 의지도 강하다. 일본에서도 이런 풍토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서는 조금만 경기가 좋지 않게 되면 연구개발 예산을 깎아 버린다. 문화 예술 분야도 그렇지만, 이래서는 정말 곤란하다.

세제 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 당국은 가능한 한 재원의 낭비를 막으려 하지만, 이를 잘 헤쳐 나가야 한다. 세제 지원으로 새로운 과학을 만들어 내고 이를 기술혁신으로 연결해 기업이 성장하게 되면 나라 전체가 이익을 본다. 눈앞의 계산이 아니라 보다 넓은 시야에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뜬금없는 일이 아니다. 일본인 차별이 사라졌다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 미쓰비시(三菱)종합연구소 이사장

근년 일본인이 잇달아 노벨상을 수상하고 있는 것은 뜬금없는 일이 아니다. 노벨상에 비견되는 국제적인 상에 대한 심사를 몇 가지 하고 있는데, 수상 후보자로서 거론되는 일본인 연구자가 매우 많다. 노벨상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사람이 줄지어 있는 상태이다. 앞으로도 일본인의 수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과학기술을 포함한 문화 수준이 높았다. 이는 수백 년이나 계속된 헤이안(平安) 시대나 에도(江戶) 시대와 같이 분쟁이 없는 평화 시대가 오래 지속된 데다, 문화사에 단절이 없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생각된다.

일본식 수학(和算∙화산)의 세키 다카카즈(関孝和)라든지, 에도시대의 출판물 건수가 세계 최고수준이라든지, 메이지(明治) 시대 이전부터 풍부한 축적이 있었다.

일본인으로는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박사(1949년에 물리학상을 단독 수상)가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 이전에도 수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본인은 여러 명 있었다.

기타사토 시바사부로(北里柴三郎), 스즈키 우메타로(鈴木梅太郎),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맛있는 성분을 발견해 나중에 아지노스(味の素)라는 기업으로 발전시킨 이케다 기쿠나에(池田菊苗) 박사도 지금 기준으로 말하면 노벨상 자격이 충분히 된다.

당연히 상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이 수상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시 유럽 중심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국력 수준이 낮았고 노벨상 심사에서도 차별적인 취급이 계속되었다는 것과 관련된다.

유카와씨의 경우는 중간자(中間子) 이론에 근거를 둔 소립자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열었다는 발군의 내용으로, 이것마저 수상하지 않는다면 과학의 세계가 이상하지 않은가라는 정도의 업적으로 겨우 수상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수상자인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振一郎) 박사(1965년에 물리학상)의 업적도 탁월한 것이었다. 그런 발군의 업적이지 않으면 노벨상을 받을 수 없던 시절이 오랫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거쳐 일본의 과학이 대단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눈에도 확실히 인식되기에 이르러 근년의 수상 러시로 이어졌다.

다만,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기초연구나 응용연구를 불문하고 세상을 근원적으로 바꾸는, 그야말로 돌파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토론이나 발상의 장이 필요한데, 일본에서는 유교적 전통에 의해 장년자의 발언력이 강하다.

일본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교수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분위기가 모자라다. 이는 커다란 결점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이노베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곳은 미국 서해안이다. 세계 각국에서 돋보이는 인재를 불러 모으고 있다.

이러한 장을 일본이 지금부터 모방해 국내에 만드는 것은 무리이다. 이노베이션의 장은 국내를 고집하지 말고 미국 서해안을 플랫폼으로 간주하고 대학의 분교를 만들어 인재를 보내는 것을 검토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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