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스포츠 세상

[이코노뉴스=이현우 조지아 서던 주립대 교수] 2012년 미국 대학농구(NCAA) 결승전이 끝난 후 1만5천여명의 켄터키대 팬들은 거리에 불을 지르고 폭동을 일으켰다.

자동차들이 뒤집히고 불에 탔으며 1명이 총상을 입고 20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 이현우 교수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패배에 대한 분노로 폭동을 일으킨 게 아니라 승리의 기쁨을 폭력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켄터키대는 이날 캔사스대를 꺾고 우승한 터였다.

그렇다면 패배했을 때는 어땠을까? 켄터키대는 최근 2년간 3월의 광기(March Madness)로 불리는 대학농구 챔피언십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하지 못했다.

2014년에는 결승전에서 커네티컷대에 졌고, 2015년에는 4강전에서 위스콘신대에 무릎을 꿇었다. 그때마다 팬들은 또다시 폭동을 일으켰다.

인간은 감정이 격해지면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특히 집단 안에서 커다란 감정에 휘말릴 때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가 적지 않다.

긍정적인 감정으로 즐겨야 마땅한 스포츠의 경험이 폭동으로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더군다나 이기고 나서도 파티가 아닌 폭동을 일으키는 행위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감정의 범주안에서 이 현상을 살펴본다면 돌프 질만 박사의 흥분전이 이론(excitation-transfer theory)을 대입해볼 수 있다.

흥분전이 이론은 감정(emotion)이 크게 각성(arousal)의 정도와 호감이나 반감으로 나뉘는 정서가(valence)의 두 가지 차원으로 존재한다는 감정의 이차원성 이론(two-factor theory of emotion)을 기반으로 성립된다.

▲ KBS TV 방송 캡처

즉, 감정은 신체의 변화(arousal)에 따른 것인데, 이를 뇌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인 감정이 될 수도 있고 부정적인 감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놀이기구를 탈 때 느끼는 전율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즐기는 사람도 있는 반면 부정적으로 해석해 꺼리는 사람도 있다.

질만 박사는 더 나아가 흥분이 지속되면서 정서가(valence)가 뒤바뀔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클 수 있고, 고통이 길수록 승리의 기쁨이 더 커질 수 있다.

드라마 대본에서는 답답한 감정선을 끌고 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해피엔딩을 통해 기쁨을 극대화 시키기도 한다.

아무리 즐거운 여행도 마지막이 좋지 못하면 나쁜 기억만 강하게 남을 수 있고, 너무 큰 슬픔을 겪다보면 한동안 어떠한 감정에도 무감각해지기 십상이다.

스포츠를 집단으로 관람할 때면 개개인의 감정이 군중 속에서 증폭돼 커다란 흥분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도 한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에서 골이 터져서 너도나도 껴안기 시작하며 다 같이 즐거워하거나, 심판의 판정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을 때 한 사람이 물건을 던지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경기장에 물건을 던지는 등의 감정표현이 그러한 예다.

감정에 대한 해석이 뒤엉켜서 흥분만 존재하는 상태에서는 긍정적인 경험도 폭력적인 형태로 감정이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스포츠 관계자들은 스포츠에 존재하는 흥분의 소용돌이에 대해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높은 각성 수준의 감정은 스포츠 문화를 활기차게 하는 약이 될 수도 있고, 손가락질과 함께 외면을 받게 하는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이 되는 스포츠 관람 문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1970년대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기승을 부리던 훌리건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축구를 통해 억압된 분노를 폭력과 방화 등으로 표출했다.

이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어느 팀이든 어느 나라든 폭력적 성향의 군소집단이 스포츠를 매개로 폭동을 일으키는 일은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고대 그리스 전차 시합 때부터 관중 폭동의 역사는 끊이지 않았다.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스포츠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문화들이 남아 있다. 위성중계로 보는 유수의 외국 리그와 현지에서 직접 체화(體化)하는 문화가 다른 경우도 빈번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강력한 권고와 경고에도 여전히 유럽의 축구 경기장에서는 인종비하적인 응원가가 불려지기도 하고, 남미의 축구 경기장에서는 철조망이 뜯어지고 관중석 의자가 그라운드로 던져지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외국의 집단적 팬 문화는 지역 문화와 깊게 연결돼 고착화된 경우가 적지 않다.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의 바르셀로나 팬들은 국가대표 경기에서 스페인 국기 대신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을 위한 깃발을 흔들어 왔다.

훌리건들도 마찬가지다. 주로 극우 성향의 지역에서 뭉친 극성 팬들이 폭력적인 사건을 많이 일으킨다.

폭력적인 성향과 스포츠의 흥분은 분별하기 쉽지 않지만 이들도 스포츠를 사랑하는 건 분명하다. 이들도 스포츠가 안아야 할 팬이다.

역시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가 문제를 많이 일으킨 극우파 서포터즈의 그라운드 진입을 막았더니 평균 관중 수가 7.7% 정도 감소했다는 사례도 있다.

스포츠의 감동이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운영관리와 문화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비상 상황에 대비한 관리 매뉴얼이 각 구단 별로 잘 갖추어져 있고, 어느 이벤트든지 사람 수에 따라 경찰 인력과 의료진을 배치하는 시스템도 완비돼 있다.

경기장들은 점차 지속가능성과 안전 및 팬 동선을 고려해 설계되고 있다. 그리고 각 국제 스포츠 단체들은 스포츠 문화개선을 위한 연구와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부정적인 스포츠 문화가 집단적 삶의 방식으로 고착돼 폭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2011년에 프로야구 SK의 성난 팬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방화를 저지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팬 집단에 어떠한 내재적 폭력성이 존재했다기 보다는 자기 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넘쳐서 구단운영에 항의하려는 맥락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수준이 떨어지는 분야도 많아 보인다. 격식을 중요시하는 골프에서도 매너 좋기로 유명한 선수들 조차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경기에서는 관중들의 무례함에 고개를 젓는다고 한다.

관리는 통제의 수단이 되지만 문화의 개선은 근본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룬다. 스포츠 관계자들은 늘 스포츠 발전의 방향성을 잊지 말고 풀뿌리 문화로부터 건전한 문화의 개선을 이끌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소셜 미디어로 자리매김한 페이스 북에는 ‘싫어요’ 버튼이 없다. ‘좋아요’에 더해서 사랑이나 기쁨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지(emoji)를 늘린다고 한다.

스포츠에서도 ‘화남’과 ‘분노’보다는 기쁨과 행복으로 수렴되는 응원문화가 세계적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단과 팬들의 노력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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