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임태형 대기자]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壟斷)으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온 국민이 최씨의 행각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데, 필자는 특히 그의 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특례입학 의혹에 주목하고 있다.

최씨는 26일 오후 국회 '최순실 국조특위' 소속 여야 의원들과 서울구치소 면회실에서 접견 조사를 가진 자리에서 정유라씨의 이대 입학에 대해 "입시부정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 임태형 대기자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그는 "딸은 이화여대에 정당하게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자식 가진 부모로서 일말의 동정심이 일기도 하지만 최씨의 뻔뻔함에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다.

교육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최순실씨에게 분노하는 이유도 바로 우리의 이같은 믿음을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에는 환경이 열악한 학생들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주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기억이 생생한 일이 있다. 서울 중구의 어느 IT회사 마케팅 부서는 봉사활동을 위해 한 조손(祖孫) 가정을 찾았다.

까만 곰팡이가 벽 천정을 덮은 10평 남짓의 공간에서 칠순의 할머니와 초등학교 6학년, 3학년의 자매가 함께 살고 있는 지하방이었다.

부서원들은 이들 자매를 접하고는 측은한 마음에 학습지도를 하고 때때로 약간의 선물을 마련해 가며 활동을 이어갔다.

그런데 봉사활동이 3개월 경과한 즈음, 활동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그간 각자의 느낌과 제안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자매의 지나친 군것질로 인한 영양불균형과 치아 손상,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습한 환경 등 많은 문제점들이 나왔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접근했던 봉사활동은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을 접하며 봉사자들을 고민에 빠뜨렸다.

그 후 봉사활동은 조손 가정의 실질적인 변화추구로 방향을 틀었다. 봉사팀은 후원금이 입금되는 통장과 자매의 용돈을 관리하고, 학습지도뿐 아니라 생활지도, 식단까지 챙기면서 공부와 건강을 꼼꼼히 챙겼다.

▲ 삼성전자가 지난 17일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지역아동센터 청소년과 대학생 멘토 등 300여 명을 초청해 진행한 '희망클래스'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또한 손상된 치아치료, 참고서와 도서 구입을 계획하고, 임대주택 입주라는 만만치 않은 목표도 정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봉사팀은 임직원의 구두를 닦고 자선호프데이와 같은 모금 이벤트도 시도했다.

이후의 결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할머니와 자매는 임대주택에 입주를 하였고 최하위권 성적을 헤매던 자매는 정상적으로 진학하고 취업을 하고 자립했다.

봉사팀은 사내 모금활동을 통해 팀워크와 업무실적 향상이라는 예상치 못한 큰 선물을 덤으로 챙겼다.

그런데 실제로, 대상자의 삶이 해피엔드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잖게 접한다.

많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하는 이유는 대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자세보다는 공급자 중심의 자기만족형 활동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업의 경우, 종종 대상에게 지원한 현물의 양이나, 사회공헌 관련 수상실적이나 메이저 언론 매체 보도 등을 성과로 표현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이는 ‘INPUT’(투입)이지 OUTCOME(성과)은 아니다. 성과에 대한 이러한 오해가 자원 투입량에 비례하여 변화와 발전이라는 성과를 얻지 못하는 근본 이유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사회공헌이 자원의 투입량을 키워오는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성과와 질(Quality)을 추구해야 한다.

▲ 지난달 19일 경기도 남양주 장애인 맞춤형 스마트팜에서 KT 드림스쿨 외국인 유학생 멘토들이 허브 잎 따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KT 제공

최근 멘토링(Mentoring)이나 프로보노(Probono)가 주목받는 이유는 ‘대상의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과거 다수를 대상으로 한 사회공헌활동이 이제는 적은 대상이라도 확실한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려는 의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대상자의 눈에 띄는 변화는 사회공헌의 참여 동기를 부여해서 지속적인 활동 동력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도 주목하자.

어르신, 장애인, 아동을 자기의지가 없는 보호대상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이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함께 연주하고, 여행을 하고, 스포츠를 즐기고, 경연을 하며 실력을 겨루는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정신과 육체의 건강한 변화라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해외 원조단체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곤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빵으로 당장의 굶주림을 해소하고 약으로 소중한 생명을 구해오고 있지만, 수십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들은 기아와 질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는 가운데, 최근 한 국제구호단체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다지 큰 단체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슬로건은 ‘희망=교육’이었다. 빈곤과 질병으로 부터의 탈출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교육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슬로건 뒤에 또 하나를 덧붙여서 ‘희망=교육=위대한 변화’라고 했더니 그 단체의 회장은 그 변화를 지금 실감하고 있다고 적극 동의해 주신 적이 있다.

다만 교육은 ‘교과목을 가르친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건강하게, 함께 사는 방법을 이해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빈곤과 질병으로 부터의 탈출을 위해서는 교육이 최선이라는 것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를 돌아 보면 증명된다.

중요한 사실은 교육을 통해 빈곤에서 탈출한 이들은 또 새로운 교육시장을 만든다는 것인데, 이것이 다름 아닌 창조적 자본주의이며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이다. 우리 기업들의 교육이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는 국가의 아동과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빈 곳을 채워주면서 희망과 열정을 불어 넣어 주기를 기대한다.

※ 임태형 대기자는 삼성사회봉사단 창설 멤버(차장)이며 KT사회공헌정보센터 소장을 역임하는 등 30년 가까이 기업 현장에서 사회공헌활동을 연구하고 실천한 CSR 전문가입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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