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청와대 정책실장인 장하성, 공정거래위원장 김상조. 재벌 개혁을 주창해 온 대표적인 학자들이 청와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책임을 맡았다.

▲ 최성범 주필

문재인 정부에서 정책 방향을 총괄하는 자리인 정책실장에 재벌개혁을 상징하는 장하성 교수를 임명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개혁과제의 핵심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재벌 개혁을 실행할 공정거래위원장에는 재벌저격수로 알려진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임명됐다. 김상조 교수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부터 참여연대와 경제개혁 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소액주주 보호와 재벌 지배구조 개혁에 앞장서온 원조 재벌 개혁론자다.

특히 삼성 그룹의 지배 구조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온 인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학자들을 정책 입안과 실행의 양대 사령탑으로 임명한 셈이다. 이는 현 문재인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가 얼마나 강고한 지를 한마디로 대변한다. 국정개혁의 알파요 오메가가 재벌개혁이라는 선언인 셈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재벌개혁에 지속적 관심을 갖고 정책적 제도적 개선노력을 기울일 게 분명하다. 가시적 결과를 얻어내려고 노력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과격한 개혁이나 사정이 아니라 온건한 제도적 개혁과 실행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선 국민들의 기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

두 사령탑 모두 재벌 개혁론자이자 시장경제 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관심은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재벌 체제에 대한 비판이지 재벌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에 기초한 재벌개혁론이 결코 아니다. 이들을 임명한 것은 재벌개혁을 하되 사정(司正)이 결코 아니며 한국 경제에 장기적인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향으로 생산적 시스템적 개혁을 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 장하성 정책실장 내정자(사진 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자료사진

우선 장하성 정책실장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이 다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 경제를 만들어보겠다”며 “두들겨 패는 식의 재벌 개혁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재벌 개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강자, 새로운 성공신화 이런 것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으로, 기존의 재벌들에게 인위적으로 강제적 조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시장경제주의자로서의 장하성 실장의 생각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한국자본주의(2014)’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소득 불균형의 심화로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는 신자유주의로 알려진 시장 근본주의 정책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다르다. 장 실장은 이렇게 지적한다. “한국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그 원인과 과정이 선진국들과는 크게 다르다. 선진국들의 문제들이 시장 근본주의적인 정책의 산물이라면 한국의 문제들은 시장 경제를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1980년대까지 정부주도 하의 계획경제 즉 관치 경제 체제였고, 그 후에 정부의 규제가 완화되고 시장경쟁 체제에 접어들었지만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소수의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했고 소수의 승자들이 독식하는 결과가 됐다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이전엔 정부가 모든 걸 결정하는 관치경제로서 시장경제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 이후 이른바 자율 개방의 정책기조 하에서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됐으나 기득권자인 재벌이 시장을 교란하는 바람에 시장 실패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제 시장을 정상화해야 할 시점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이던 시절 1999년엔 삼성전자 주총에 참석해 8시간반 동안 집중 투표제도입과 경영투명성 확보를 위한 정관 개정을 요구해 결국 표결을 이끌어 낸 뒤 생겨난 강성 이미지와는 달리 한국경제를 보는 그의 생각은 매우 합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취임 일성으로 “공정한 시장 질서를 재확립해 한국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겠다”라고 밝혀 재계를 놀라게 했지만, 이는 공정거래 정책의 완화를 의미한다기보다는 공정거래 제도의 강화가 한국경제가 사는 길이라는 그의 소신을 피력한 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장 실장이 시장경제의 기능이 살아나도록 소액주주 보호운동에 중점을 둔 반면 김 내정자는 제도적 개선에 관심이 많다는 게 다른 점이다. 재벌 저격수로서 경제력 집중 억제와 지배구조 개선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왔고, 지배구조와 순환출자 등 민감한 재계 현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어떤 면에선 제도주의자에 가깝다.

김 내정자의 생각은 그의 저서 ‘종횡무진 한국 경제: 재벌과 모피아의 함정(2012)’에서 엿볼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 재벌과 관료이지만 한국 특유의 여러 법적 제도적 환경 안에서 실제로 재벌의 전횡을 효과적으로 막고 경제 효율성을 꾀할 수 있는 제도를 찾기 위해 다양한 관점과 시점에서의 토론에 해답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단순한 주주권리의 강화만으로 재벌의 전횡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내정자, 법과 제도 중시하는 시장중심의 온건한 개혁주의자 평가

단순한 경제민주와의 관점에서만 재벌 문제를 볼 게 아니라 고용, 성장 등 다양한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합리적인 이론이다. 당초 문 대통령의 공약에 들어있던 기존 출자해소도 현실적으로 투자나 고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최종 단계에서 사라진 것도 이 내정자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민주화 공약 중 전속고발권 제도를 전면 폐지, 공정위 조사권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김 내정자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집단소송제의 전면 도입도 예상할 수 있다. 김 내정자가 공정거래 제도의 강화에 중점을 둘 것임을 엿볼 수 있다. ‘평소 대기업을 전담하는 조직을 강화해 4대 재벌을 우선 감독하면 나머지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라는 지론에서 그의 공정거래 정책이 어떤 식으로 집행될 지를 점칠 수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기존의 구도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가 주목거리다. 그는 평소 ‘우리 사회는 삼성의 권력 앞에 무릎 꿇는 삼성 공화국(2005년)’, ‘삼성이 또 다시 불법 편법의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2014년)’, ‘삼성 미래 전략실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지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2016)’며 삼성 에버랜드 CB와 삼성SDS BW 헐값 발행 논란 등과 관련해 소송에 앞장서는 등 집요한 삼성 저격수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국민연금 손해액은 최소 3500억 원에서 최대 800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물산 합병 문제가 불거지기 몇 년 전에 “삼성이 어떤 3세 승계 방법을 택하든 이재용부회장의 지분 지배력은 그리 높지 않은 게 분명하고, 부족한 지분을 채우는 것은 결국 비전과 리더십”이라고 충고한 바 있다. 현 사태를 예견했던 셈이다. 삼성의 승계 문제에 관한 한 집요한 모습이다.

두 사람 모두 싸움꾼으로 알려져 있어 기업들로선 긴장할 수밖에 없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시장중심의 온건한 개혁주의자라는 평가를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시장 경제 기능의 정상화가 국가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시원한 사이다가 아닌 미지근한 숭늉 식의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갑질 행위나 탈법적 상속 등에 대해선 가혹하게 법 적용을 할 게 분명하다.

또한 재벌 사정이나 경제력 집중 억제를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중소기업이 중심이 되는 경제정책 입안에 심혈을 기울이는 게 큰 방향을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선 재벌정책이 아닌 중소기업 활성화 대책이 핵심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법과 제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정거래 관련제도의 강화가 또 다른 한 방향이 될 것이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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