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에서 탈출하고 있다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5%를 기록했다. 시장예상치 0.4%를 웃도는 수치로 지난해 1분기 이후 5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이다.

▲ 이동준 교수

일본 경제가 5분기 이상 플러스 성장을 보인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내각 때(2001년4월~2006년 9월) 6분기 연속 플러스를 기록한 이후 11년 만이다.

일부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4년 반 동안 흔들림없이 추진해온 아베노믹스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2012년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2차 정권과 함께 시작된 정부의 강력한 경제정책이 미국과 신흥국 등 글로벌 경기회복 조짐과 맞물리면서 상승작용을 내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은행(BOJ)의 양적완화와 정부의 재정확대라는 돈풀기와 경제체제에 대한 구조개혁을 결합한 아베노믹스는 기업실적 개선을 통한 투자·임금인상(소비확대)이 핵심이다. 이와 함께 법인세 인하, 일하는 방식개혁 등 전방위적 구조개혁으로 20년 넘게 지속돼온 디플레이션 심리를 깨려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아베노믹스는 결국 돈풀기라는 비판이 여전하다. 현재의 상황은 지속 불가능하다며 ‘아베노미스(아베의 실수)’라는 비아냥도 있다.

실제 ‘1억 총활약 사회,’ ‘아베노믹스의 새로운 3개의 화살’ 등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쏟아져 일본 국민들이 어리둥절해 할 정도였다.

‘1억 총활약 사회’는 현재의 1억 인구를 50년 후에도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새로운 3개의 화살’에는 ‘GDP 600조 엔’ 등 고상한 슬로건이 즐비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지표만 봐서는 아베 정권이 자랑할 만 하다.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소비는 1분기 0.4% 늘었다. 글로벌 경기회복세를 타고 수출도 2.1% 증가했다.

최근 10년 동안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한 해 30만명 가까이 인구 자연감소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5분기 연속 플러스를 기록한 것은 경기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에 취해 일본은행은 지난 4월 경기판단을 완만한 회복'에서 9년 만에 '완만한 확대'라고 수정했다. 잠재성장률 0%대의 일본 경제는 한 분기가 플러스면, 다음 분기는 마이너스로 떨어지기를 반복해왔지만, 최근 들어 고착화돼 패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한마디로 일본은 경기가 선순환 구조에 접어들었고, 상당한 수준의 재도약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올해 봄에 졸업한 대학생들의 취직률(4월 1일 기준)도 전년 동기 대비 0.3%포인트 오른 97.6%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대졸 취직률은 1997년 조사 시작 이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가 지난 2015년 9월 24일 도쿄 자민당사에서 ‘아베노믹스의 2단계 방편인 새로운 세 개의 화살’(양적완화·재정확대·구조개혁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도쿄=AP/뉴시스 자료사진】

그러나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사뭇 다르다.

실제 일본의 경제 현실을 자세히 따져보면 엄청난 규모의 양적완화가 만들어낸 성과치고는 왜소하거나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지난 2013년 4월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연 80조엔(약 812조 원)의 양적 완화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4년간 풀린 돈(본원통화)만 무려 303조엔에 달했다.

그런데도 일본 국민들이 효과를 느낄 수 없는 근본적 이유는 민간 소비의 부진 탓이 크다. 수치상으로는 경기가 좋아졌다지만, 임금인상 등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메이지야스다(明治安田)생명의 최근 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회사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의 20~79세 기혼 남녀 1618명을 대상으로 가정 경제와 관련해 설문조사한 결과, 경제활동이 왕성한 20~50대 부부의 경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용돈이 남편 월 3만1764엔, 아내 월 1만8424엔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 조사 때와 비교해 각각 3186엔, 5632엔 줄어든 수치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액수다.

일본은행이 개인소비 촉진을 통해 2%의 물가상승을 달성하겠다며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부와 언론에서는 경기가 좋아졌다고 말하는데 소비자들은 거의 체감하지 못하는, 부조리 현상이 이어지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