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이재용이 분노한 것일까. 최순실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분노(?)가 세상에 적지 않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우선 이재용(JY)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6일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을 폐지한다고 밝힌 대로 2월 28일 삼성그룹은 경영쇄신안을 발표하며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해체를 공식화했다.

▲ 최성범 주필

JY가 구속된지 얼마 뒤의 일이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을 공식적으로 해체·폐지하고 계열사 자율경영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게 삼성의 공식입장이었다.

이로써 지난 1959년 창업주 이병철 회장 시절 비서실을 모태로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 이름으로 유지됐던 미전실은 58년 만에 사라졌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을 비롯한 미전실 7개 팀장은 이날 전원 사임했고 미전실 소속 임직원 200여명은 계열사 곳곳으로 재배치됐다. 수요 사장단 회의도 폐지됐다.

미전실 폐지는 이미 JY의 삼성전자 등기이사 취임을 계기로 검토한 바 있어 예정된 수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부터다. 미전실의 팀장들은 대부분 사장급이거나 부사장급들로 그룹의 핵심인물들이다.

대개 그만 두더라도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승용차와 사무실을 제공하고 퇴직전 급여의 60~70%를 제공하는 게 상례다.

그러나 이번엔 그야말로 아무런 예우도 제공하지 않거나 사무실 정도만 제공한 게 전부라고 한다. 이러한 푸대접은 윗선의 지시가 있지 않았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결국 이재용의 분노가 미전실 팀장들에게 화를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JY의 상당기간 공석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룹 최종 의사결정권자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점도 그의 현재 시각을 대변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또 다른 분노의 정황은 지난 3월 18일 홍석현 중앙일보 JTBC 회장의 돌연한 사퇴다. 본인은 “광장은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에 제시한 것이 리셋코리아”라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다”고 밝혀왔다는 점에서 정치 참여가 예상돼 왔지만 돌연 사퇴 배경에 대해선 소문이 무성한 실정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돌연 사퇴의 원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수감된 JY로선 홍 회장의 대망론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가 자신이 됐다는 피해의식을 갖게 됐고 이로 인한 분노를 표출하는 바람에 부담을 느끼게 된 홍 회장이 돌연 사퇴했다는 추측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홍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유엔 사무총장으로 거론된 적이 있고 정치 참여 의지를 숨기지 않았던 탓에 결코 막연한 억측만은 아니다.

중앙일보가 삼성으로부터 1999년 공식 분리됐다고는 하지만 삼성그룹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삼성그룹 오너의 분노에 그냥 제 자리에 있을 수만은 없었던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머니 홍라희 여사가 리움 미술관장에서 물러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 구속기소된 채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분노가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이 부회장이 최근 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JTBC의 보도가 탄핵정국의 기폭제가 됐고 JY가 직격탄을 맞은 상황의 배후엔 홍석현 회장이 있다고 판단했던 탓일까? JY가 홍라희 여사의 면회를 한 때 거부하는 등 외삼촌인 홍 회장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다는 소문이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언론사들에 대한 광고비 협찬 금액이 전년도에 비해 대폭 줄었다는 언론사들의 비명도 JY의 분노가 표출된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삼성그룹이 이번에 언론사에 대한 협찬성 광고를 전년 대비 최대 75%, 최저 30% 수준까지 줄였다는 게 언론사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향, 한겨레 광고를 전년 대비 10%로 줄였다고 한다.

특히 중앙일보는 전년 대비 광고비를 30%로 줄이고 JTBC 광고는 아예 없다는 게 JY의 분노가 반영된 결과라는 추측을 낳게 한다. 덕택에 언론사들은 김영란법에 이은 삼성그룹 광고 폐지가 겹치는 이중고로 거의 공황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미전실의 해체로 그룹 차원에서 배정하던 광고가 없어지고 계열사 자체적인 광고로 전환된 게 언론사 광고 축소의 주된 이유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 한 언론사의 고위 관계자는 “그룹의 컨트롤 타워가 붕괴된 상황에서 언론사의 고충을 JY에게 전달하겠다고 총대를 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또한 충분히 예측 가능했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고의가 섞여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JY의 분노가 나름 일리가 있기는 하다. 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쳐 강요하는 상황에서 삼성이 최순실에게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너무 가혹한 법 적용이라는 변명이 가능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희생양이 됐다는 억울함도 있을 것이다. JY로선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에 울분과 자괴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재판 출두시 수의를 고집한다는 게 단적인 예다.

그러나 JY가 분노를 느낄 정도로 정말 억울할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서만 최순실에게 지원했던 피해자였는지, 정말 한 점 부끄럼 없는지는 JY 스스로가 자문해 볼 일이다.

삼성과 JY는 국민 앞에서 과연 100% 떳떳할까? JY의 분노에 국민들이 오히려 분노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게다가 국민들은 글로벌 기업 삼성의 리더로서의 JY의 품성과 자질을 지켜보고 있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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