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보통 사람들의 일상 대화중 3분의 1이 거짓말이란다. 깜짝 놀라겠지만 이중에는 단순히 관습적인 대화가 대부분이다. 영어에서도 날씨가 나빠도 “굿 모닝!”으로 인사를 시작한다.

▲ 남영진 논설고문

우리도 “안녕하세요?”라고 묻지만 굳이 응답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하는 인사가 아니다. 남에 대한 예의나 기본적인 체면을 위해서도 어릴 때부터 거짓을 강요받는다.

이러 거짓은 영어에서도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라고 용인된다. 인생 3대 거짓이라는 유머에 노인의 “일찍 죽어야지” 노처녀의 “시집 안갈 거야” 상인의 “밑지고 판다”가 있다.

믿지는 않지만 받아준다. 여기에 시어머니가 아들집에 왔다가 갈 때 며느리가 “좀 더 계셨다 가세요.”정도를 추가하면 하얀 거짓말은 일상에서의 애교에 가깝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만우절에 앞서 알바몬과 함께 성인 남녀 27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장인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1위는 "술, 밥 한 번 먹어요(37.9%)"였고 알바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오래 일할 거에요(30.8%)"였다고 전했다. 이 두 말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하얀 거짓말이다.

문제는 ‘새빨간 거짓말’과 ‘사기’이다. 일본말에서 유래됐다는 새빨간 거짓말은 ‘불에 비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어서 잘 안 믿지만 영어의 black lie는 진위 판별이 힘들어 상대방에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악의적’(malicius lie)이다.

이것이 이젠 일상이 아닌 국가적, 국제적 차원으로 번져 ‘가짜뉴스’(fake news)가 지난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졌다.

한국일보가 만우절인 지난 1일 한국인 700명에 의뢰한 조사에서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거짓말"중 1위로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 문구가 뽑혔다.

1997년 출시된 뒤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옥시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 광고문구 ‘인체에 안전, 아이에게 안심’이 5점 만점에 4.91점을 받아 '최악의 거짓말'로 꼽혔다.

2위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사망 사건을 은폐한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의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4.89점)였다. 이어 3위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했으니,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4.83점)는 1950년 6·25전쟁 당시 라디오 담화였다. 방송이 나올 때 이승만은 이미 서울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4~5위와 10위도 역대 대통령 발언이었다. 4위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내 전 재산은 29만 원" 발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2차 대국민 담화에서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던 발언 등이 꼽혔다.

10위도 92년 12월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에 패한 뒤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정계를 은퇴하겠다”며 영국으로 떠나 95년 돌아와 97년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이 꼽혔다.

▲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4일 청와대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후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6위는 2004년 황우석 박사의 “복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발표, 7위는 큐레이터 신정아씨의 2007년 “나는 예일대 박사학위를 받은 미술관 현장 전문가”라는 발언 등이 꼽혔다. 8번째는 2005년 음주운전 사고를 낸 가수 김상혁씨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는 발언이었는데 이 말은 이후 “속이기는 했지만 사기는 안쳤다”는 투의 사회적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9위는 가수 유승준의 거짓말. 90년대 한창 인기상승 중 유승준씨는 여러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군복무를 마치겠다”고 하다가 2002년 미국에서 한국 국적을 포기한 뒤 국민들의 비난을 받아 몇 번 귀국을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한국 입국이 불허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공인의 거짓말을 용서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응답자의 71.2%가 “솔직히 시인하고 진심으로 반성, 사죄했을 경우”라고 답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치인이나 공인들의 거짓말에 관대한 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직도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해 구속됐지만 살길은 오직 ‘반성과 사죄’뿐이라는 가르침이다.

※ 남영진 논설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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