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이익 극대화’ 지렛대로 활용 가능성 높아

[이코노뉴스=이종수 기자] 미국이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4월 위기설'이 급속히 퍼져나간 데에도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한 우려가 한몫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은 낮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정부는 관련 법에 따라 해당국 기업의 미 연방정부 조달시장 진입 금지 등 제재 조취를 취할 수 있게 된다. 또 제재와 함께 통화 절상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각국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한국과 중국, 인도, 독일 등 16개국을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라면서 "거칠면서도 스마트한 협상으로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다면 미국의 경제성장률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차 독일 바덴바덴을 방문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현지시간) 스티븐 므누친 미국 재무장관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기획재정부 제공

미국의 교역촉진법에서는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 3% 이상 ▲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이상 ▲연간 GDP 대비 2% 이상 달러 매수로 외환시장 개입 등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세 가지 모두 충족해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고, 이 중 두 개만 해당하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된다. 미국 재무부는 이 기준으로 매년 4월과 10월에 환율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은 환율조작의 그랜드 챔피언"이라며 중국에 대한 환율 압박의 끈을 늦추지 않는 등 ‘환율조작국 지정’을 무기로 대미 무역수지 흑자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 “지정 가능성 완전히 배제할 순 없어"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4일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과 관련,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안 된다고 봐야 맞지만 미국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지정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 직후 이렇게 말한 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을 때 실제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실제 임팩트가 어떨지 가정해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전날인 23일 "우리가 우려를 공식적으로 표현 하는 게 바람직하진 않지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번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미국은 환율 정책의 투명성을 특히 강조했다”며 "그런 미국 정부의 입장을 감안해보면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미국) 현행법 테두리로 보면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현 단계에서는 환율조작국이 되지 않도록 사전에 대응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경상수지 흑자, 환율 영향 미미…개입도 안 해"

우리나라는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에서 ▲경상수지 흑자 ▲대미 무역수지 흑자 등 2개 요건에 해당돼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됐다. 다음 달 환율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나머지 요건, 즉 외환시장 개입을 충족시킬 가능성은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0월 우리나라가 연간 GDP 대비 1.8% 달러를 순매도했다고 평가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가 1년 사이 달러 순매도에서 달러 순매수로 급격히 태도를 바꿨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조작국에 지정되면 원화가치 상승(환율 하락)에 따라 수출에 큰 타격을 입어 가뜩이나 안 좋은 경기를 더 침체시킬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해당국 투자 시 금융지원 금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환율 압박, 무역협정을 통한 압박 등의 제재를 취할 수 있다.

때문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한미 양국 간 경제 측면에서뿐 아니라 경제 외적인 부분으로까지 마찰이 생겨날 수 있다.

재무부가 현재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나라는 없고 지난해 10월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비롯해 중국·독일·일본·스위스·대만과 등 6개국을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통상 환율관찰대상국은 환율조작국 지정의 전 단계로 여겨진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지정될 가능성은 적다"며 "중국의 지정 가능성은 우리보다 조금 높은데도 이번에는 중국도 지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 흑자가 대규모인 것은 사실이지만 원화가 지난해부터 강세를 보여 미국으로서는 환율조작국 지정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 미국, 환율조작국 지정 이슈 ‘지렛대’로 활용

실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등과 관련, 관찰대상국 지위를 유지할 뿐 환율조작국으로는 지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워싱턴 상하원 합동의회에서 임기 첫 연설을 하고 있다.[워싱턴=AP/뉴시스 자료사진]

외환위기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세워진 연구기관인 국제금융센터는 최근 “미국이 중국에 대해 환율조작국 지정을 서두르기보다는 지정 이슈를 자국의 통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대안으로 한국, 대만 등 여타 교역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국제금융센터는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며 "설사 주변국을 지정하더라도 중국의 환율정책 변화 가능성은 불분명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향후 환율조작국 지정을 실행할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지정에 따른 갈등 상황의 전개를 고려하면 실제로 지정하기보다는 지정 가능성을 지렛대로 삼아 우리나라나 중국 등과의 교역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취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원은 "미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는 지정할 것처럼 경고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다"며 "미국은 환율조작국 지정 이슈를 끌고 가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줬던 그동안의 예상치 못한 행보를 고려하면 지정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유일호 지난 17일(현지시간)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주요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스티븐 므누친 미국 재무장관에게 “환율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도록 하는 등 한국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하는 등 미국 설득에 힘을 쏟고 있다.

유 부총리는 "최근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는 인구구조 변화, 저유가 등 구조적·경기적 요인에 주로 기인하며 환율의 영향은 미미하다"면서 "환율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도록 하고, 급변동 등 예외적 상황에서 양방향으로 시장안정 조치를 실시하는 것이 우리 환율정책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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