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의 시사서평

[이코노뉴스=김선태 편집위원]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이 최근 미국의 대형 자산운용사인 포트리스인베스트먼트 그룹을 33억 달러(약 3조7600억 원)에 인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 김선태 편집위원

이는 소프트뱅크가 추진 중인 1000억 달러(약 114조원) 규모의 ‘비전펀드’ 조성과 맞물려 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 손정의(60) 회장은 이 펀드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로봇 등 차세대 기술에 투자할 것이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펀드의 절반인 500억 달러를 미국 기업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소프트뱅크를 일본 4차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로 키우겠다는 야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누가 주도하는가?’ 본질 벗어난 공방

제4차 산업혁명은 우리 정가에 핵심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며 이미 많은 대권 후보들이 앞 다투어 관련 공약과 주장을 펴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의 공방이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들고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확대하는 한편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할 과학지능기술부를 신설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1일 발표한 경제 청사진의 한 대목이다. 기술혁명과 제도혁명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국가가 선도한다는 ‘큰 정부론’을 내놓은 그는 특별히 민간 산업에 활용할 빅데이터 구축과 네거티브 규제를 통한 기업 활동 지원을 약속했다.

안철수 대표는 이에 대해 “국가가 앞에서 지휘하면 잘 따라올 것이란 박정희식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방식”이라고 비판하면서, “정부와 민간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일”을 강조했다.

지난 6일 행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와 같이 밝히면서, 안 대표는 교육혁명, 과학기술혁명, 창업혁명의 분야별 기반을 구축하는 일에 정부가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와 민간 주도, 얼핏 보면 매우 뚜렷한 이 차이가 실은 제4차 산업혁명의 전개에 따른 우리 사회의 대응 전략 수립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이런 구분이 실은 대안의 우선 순위를 모색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오늘날의 산업 변화를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변화 양상이 세계 산업 구조를 재편할 정도로 강력하며 그 동력이 이전 세대의 산업혁명과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가령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제1차 산업혁명은 철도와 증기기관에 힘입어 기계 생산과 대영제국의 시대를 열었다. 19세기 말에 진행된 제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생산라인에 힘입어 공장제 대량생산을 본격화시키면서 제국주의 체제를 공고히 했다.

이후 유럽을 넘어 세계 각지로 확산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은 1960년대 들어 반도체와 컴퓨터에 힘입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했으니, 그 여파로 사회주의 소련이 해체되고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가 성립된다. 이처럼 산업혁명은 한 나라의 경제구조뿐 아니라 국가 나아가 체제간 역학관계마저 뒤흔드는 거대한 변혁이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양면성 직시해야

그렇다면 오늘날 세계 경제 내부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변화가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정도로 강력하다 할 수 있을까? 세계경제포럼의 연구를 바탕으로 발간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은 다양한 근거를 들어 ‘그렇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 클라우스 슈밥, 새로운현재.

책은 우선 몇 가지 핵심 동력에 의존했던 기존 산업혁명들과 달리, 21세기형 산업 변화가 첨단 IT 시스템을 중심으로 현존하는 모든 과학기술과 생산 도구를 무작위로 연결시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기존 재래식 공장이나 농촌 심지어 인간의 취미 생활까지도 디지털화하고 여기에 모바일, 센서, 인공지능, 기계학습 등을 전천후로 융합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 변화의 폭과 깊이 속도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일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사례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아이폰은 휴대전화에 컴퓨터 칩과 운영체제를 장착한 1세대 스마트폰으로 2007년 출시 첫 해에 370만대가 팔렸다. 이마케터(emarketer) 조사에 따르면 2016년 말 전 세계 스마트폰 사용자수는 21억550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되고, 이어 2018년에는 25억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1996년 두 명의 대학원생들이 인터넷 검색 서비스를 선보이며 출발한 구글은 15년 만에 알파고와 자율주행 자동차를 내놓을 정도로 성장, 지난 2월 1일 A형 보통주(기호 GOOGL) 기준 시가가 5300억8000만 달러(639조4200억 원)에 달했다.

이 사례들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기본 특징을 추출할 수 있다. 첫째 이 변화가 산업의 독점 내지는 국가 독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지배적이며, 둘째 그 결과 체제적 불평등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생산과 소비가 시장을 지배하는 강력한 몇몇 소수 글로벌 기업으로 집중”되는 이른바 ‘플랫폼 효과’에 대해 슈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부 소수의 사람들에게 혜택과 가치가 집중되는 현상이 가중되는 이유는 플랫폼 효과 때문이다. 디지털 기업들은 이 효과를 사용하여 폭넓은 상품과 서비스로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시키는 네트워크를 창출해 규모수익의 증대를 누린다.”

더불어 제4차 산업혁명이 단일 경제구조에 미치는 영향에는 양면성이 있다. 이는 제1차 산업혁명이 농민을 농촌에서 추방하여 도시 노동자와 산업예비군으로 전락시키며 공장 생산과 자본 축적을 강화한 과정을 연상시킨다.

첫째, 국가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구조적 장기 침체는 고령화와 같은 다양한 요인들에 기인하여 해법을 찾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숱한 기술 혁신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노동생산성이 21세기 내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통계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제4차 산업혁명은 단지 그것을 추진하는 것만으로 일국의 경제 성장을 담보하지 않는다.

둘째, 자본이 노동을 파괴적으로 대체할 것임은 전문기관들의 분석을 통해 갈수록 확실시된다. 제리 카플란은 ‘인간은 필요 없다’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의 예를 들어 이 문제를 냉정하게 파고들었다.

인공지능은 정해진 임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처리하는데 그 능력 또한 인간과 달리 비약적인 속도로 발전한다. 이 인공지능 센서가 정교한 작동장치와 결합하면 로봇이 된다. 그리고 도처에서 같은 로봇의 수많은 센서가 수집한 정보는 그들의 경험치와 분석 능력을 제고시키며 네트워크를 통해 전체 로봇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로봇은 내비게이션 시스템, 마트의 결제 시스템, 자동화된 농기구, 드론이기도 하며 화재진압 로봇이거나 초미세 의료 로봇이기도 하고, 포괄하여 그 업무 영역에 제한이 없는 ‘정교한 인조 노동자’라 볼 수 있다.

한국 경제의 길목을 가로막은 스핑크스

논의가 이 지점에 이르면 제4차 산업혁명이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불가항력으로 전개되는 산업 재편 과정이자,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글로벌 플랫폼 전쟁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잃을 게 너무 많지만 그렇다고 미루거나 회피할 수는 더더욱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이디푸스의 앞길을 스핑크스가 막아서듯, 한국 경제의 앞길을 이 거대한 괴물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낙관적인 기조 아래 진행되는 우리 정치권의 논의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더욱이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을 정부 주도로 할 것이냐 민간 주도로 할 것이냐 하는 공방은 본질을 벗어난 논쟁이다. 슈밥이 “(장기적으로 볼 때) 미시권력이 국가 정부와 같은 거시권력을 제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처럼, 정부가 비록 전략적으로 중요하기는 하나 그 역시 주어진 조건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하나의 변수일 뿐이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그 대부분은 관리와 지원에 투입되는 것이지 생산과 시장에 투입되는 비중은 미미할 수밖에 없고, 그것으로는 일거에 수 조, 수백 조를 투입하며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과, 스케일,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소프트뱅크의 사례를 살핀 것이 이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 다급한 것은 갓 시작된 변혁기를 맞아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춘 국내 산업 기반에 정부와 기업의 ‘융합’ 역량을 집중하는 일일 것이다.

조만간 절대 다수 국민이 원하는 대로 탄핵이 가결되어 제대로 된 정부가 들어선다면 이와 관련하여 풀어야 할 의문들이 있다. 가령 민간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개인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며 그 앞길을 가로막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제는 메가트렌드로 굳어진 고령화 장벽 앞에서 저성장을 극복해 낼 우리 고유의 신수종 산업은 무엇인가. 노동의 존재 양식을 뒤흔들고 있는 인공지능의 도전 앞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 형태와 고용 창출 기회는 어떤 식으로 구축할 것인가.

이들을 비롯하여 현안으로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점과 해결책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도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스핑크스가 던진 수수께끼처럼 우리는 국가 경제의 사활이 걸린 질문 앞에 서 있다. 새 정부는 성급하게 해답을 내놓기보다 이 수수께끼의 역사적 구조적 총체적 맥락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야 하며, 그 끝에 가서야 우리의 미래를 밝힐 해법이 고개를 들 것이라 생각한다.

※ 김선태 편집위원은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북토피아 이사, 전 내일이비즈 대표를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출판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현재 휴먼앤북스 출판사 주간과 (사)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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