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유지와 일본 정부의 ‘안보 우려’ 등 걸림돌

[이코노뉴스=어 만 기자] SK하이닉스가 최근 일본의 도시바(東芝) 경영권 인수와 관련, "입찰 제안서를 받으면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혀 인수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 2위 낸드 플래시 제조 업체인 도시바는 미국 원자력발전 사업의 대규모 손실로 자본잠식 위기에 빠지자 알짜배기인 반도체 메모리 사업을 시장에 내놓은 상태다.

도시바는 이달 30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반도체 사업에 대한 분사 승인을 받은 뒤 자회사 '도시바메모리'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 SK하이닉스 홈페이지 캡처

일본 언론은 자본잠식 위기에 놓인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부 지분을 전부 매각해 최대 2조6000억엔(약 26조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착수한다고 보도했다.

도시바는 당초 20%로 제한하려 했던 반도체 사업부 지분 매각 규모를 100%로 확대하고, 경영권 프리미엄 20~30%를 추가해 2조4,000억~2조6,000억엔의 매각대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을 인수하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함께 낸드 플래시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국 웨스턴 디지털(WD),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대만 팍스콘, TSMC, 중국 칭화유니그룹, 미국의 애플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낸드 플래시는 D램과 함께 메모리 반도체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분야다. 낸드 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저장장치에 주로 쓰인다.

특히 정체된 D램과 달리 낸드플래시는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큰 폭으로 시장이 확장되면서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2일 도시바 인수전과 관련,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하게 되면 세계 2위 업체로 도약하며 시장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며 “특히 도시바의 컨트롤러 기술을 확보하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경쟁력을 크게 강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지난해 낸드 플래시 시장은 삼성전자가 점유율 35.4%로 1위를 굳힌 가운데 도시바(19.6%), 웨스턴디지털(15.4%), 마이크론테크놀로지(11.9%), SK하이닉스(10.1%) 등이 각각 분점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자금력과 관련해서는 올해 EBITAD(이자·세금·감가상각·청산 이전 순익)이 14조4500억원으로 예상된다며 낙관적으로 보았다. 또 올해 투자금액이 7조5300억원이고, 2016년말 기준 순차입금이 2,000억원 수준에 불과한 만큼 자금조달 여력이 충분하며, 재무적 투자가와 함께 전략적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진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도시바의 매각 과정에서 중국 업체에 넘어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모두 긍정적일 것”이라며 “특히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도시바와 함께 3D 낸드 부문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삼성전자를 추격하고 있어 산업 구조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난관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도시바는 자금력은 물론 ▲1년 내 매각 ▲고용 유지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있어 이를 만족시킬 업체는 제한적일 뿐 아니라, 각국의 독점금지법 심사를 받게 되는 등 조건 충족이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대신증권은 이날 ‘SK하이닉스: 도시바 인수전보다 낸드(NAND) 업황 개선이 무게 중심’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도시바 인수 시나리오 관련 변수 확대 ▲ 일본정부 의지와 일본 내 정서적 측면 등의 영향을 고려할 때 특정 기업에 유리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 자료: 블룸버그, 유진투자증권

실제 도시바에 군침을 흘리는 인수 후보와 업체 간 제휴설이 무성하다. 도시바는 1차 입찰 마감은 오늘 29일로 정했고 입찰기업에게 2조엔 이상으로 견적을 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1차 입찰에만 SK하이닉스, 애플의 아이폰을 조립하는 폭스콘,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웨스턴 디지털,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등이 대거 입질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IT(정보기술) 공룡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도시바 메모리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애플은 현재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낸드 플래시의 대부분을 도시바와 SK하이닉스에서 공급받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순현금이 182조원에 달해 인수 여력도 충분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애플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한국과 중국, 대만, 미국 업체들이 각축을 벌이는 경쟁 구도에 자천타천으로 거명되는 글로벌 전자회사들이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후보군을 점점 불리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일본 정부가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도시바 인수전에 참가하는 입찰 기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을 불러올 로봇공학, 인공지능(AI), 커넥티트 기기 등에서 기본 축이 되는 부품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다양한 분야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을 적합한 인수자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도시바의) 플래시 메모리와 원자력 발전 사업은 일본의 성장 전략에 매우 중요한 분야”라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현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이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의 인수 추진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낸드 사업 부문 이익 개선에 무게 중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낸드 사업 부문 이익 기여도는 2016년 2%에서 올해 12%까지 크게 향상될 전망이며, 낸드 공급사가 2D-낸드 생산라인을 3D-낸드로 전환하고 있어 2D-낸드 공급 부족이 지속될수록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신증권은 이런 이유로 매수 의견을 제시했으며 목표주가로 6만7000원(2월 27일 현재 주가 4만6,000원)을 제시했다.

※ 어 만 기자는 LG투자증권과 우리투자증권에서 15년 동안 근무하면서 기업 분석과 투자 등에 관한 실무와 이론을 익힌 시장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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