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한필이 칼럼니스트]

傳文4

본말(本末): 근본과 말단에 대하여

​이제 <대학> 전문 4장으로 들어갑니다. 근본과 말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4장은 오늘 글로 모두 마무리 되는데 요즘 표현으로 하면 '속과 겉', '본질과 현상', '핵심과 주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자왈 청송 오유인야 필야사무송호 무정자불득진기사 대외민지 차위지본

이를 해석하면 이렇다고 하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송이 걸렸을 때 누구 말이 옳은지 들어보는 것은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다를 바가 없으나, ​반드시 다툼이 없게 만들고자 한다.” 참된 마음이 없는 자로 그 말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백성들의 뜻을 크게 두려워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근본을 안다 이르는 것이다.]

내용이 처음 보면 이상하지요. 우리가 살다보면 다툼이 발생합니다. 이해관계일 수도 있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대개 이제 판단을 해달라고 제3자에게 가서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면 누구 말이 맞는지 들어야 합니다. 그 듣는 행위는 공자님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희들끼리 잘 상의해서 해결해 봐라”라는 말을 하지 않고 반드시 결론을 내준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즉, 진실을 보는 눈이 계시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진실을 밝히는가.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단말인지 구분하는 눈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무정자(無情者)를 어찌 해석할거냐는 관점이 갈릴 수 있습니다. 보통 ‘참된 마음이 없는 자’로 해석 되어 있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자’, 혹은 ‘남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밖에 모르는 자’란 의미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첫번째로 참된 눈은 우선 그런 마음을 가진 자를 가려내서 볼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두번째로 참된 눈은 ‘백성을 크게 두려워 하는’ 눈이 됩니다.

첫째 눈이 본질을 보는 눈, 깊이 보는 눈이라면, 둘째 눈은 현상을 두루 살피는 눈, 넓게 보는 눈이 됩니다.

이를 ‘도는 원리’ O(영)사상으로 보면 이리 됩니다. 참된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관(觀)할 수 있으려면 근본의 마음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 자리를 뚫고 들어가서 살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즉, 마음의 힘과 마음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공관(空觀)이라 했는데 불상을 보면 항상 중앙에 본존불과 좌우로 협시불이 있지요. 좌우 한쪽은 힘을 상징하는 보살이고, 다른 쪽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이름은 다양합니다만 힘과 지혜를 두루 거느린다는 개념은 같습니다. 우주의 근본소를 O(영)으로 본다는 것은 O관(O觀)이 되는데 공관(空觀)과 유사한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O의 특성은 ‘가장 강해서, 또 가장 부드러워서 가장 힘이 세고, 한 없이 늘어나기도 하고, 한 없이 줄어들기도 해서 아주 작은 것이건, 아주 큰 것이건 자유자재로 잴 수 있어서’ 지혜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입니다. 즉, ‘알고자 하면 알 수 있고, 제어하고자 하면 무엇이든 통제 할 수 있다’가 됩니다. 본말은 안다는 것은 이렇듯 마음의 근본자리 O을 체득해서 힘과 지혜를 두루 갖추고,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법을 공부하신 어느 분이 “촛불은 민심이 아니다”라고 하셨는데 세상법으로 보면 그리 말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우주법으로 보면 완전히 틀린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지혜의 마음은 현상과 본질을 심판하는 절대적 계시를 하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마음을 하나님 마음이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한 세상 살면서 어느 법을 따를지는 오직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샬롬!

 

 

 

저작권자 © 이코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