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의 청호 칼럼

[이코노뉴스=남영진 논설고문] 지난 주말 고향인 충북 영동에 재개관한 영화관에서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다룬 ‘판도라’를 봤다. 지난해 ‘부산행’ ‘터널’ 등과 함께 재난영화로 화제가 된 영화여서 벼르다가 새해 벽두에 보게 된 것이다.

그동안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과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참상 및 후유증 이후 폐허화된 상황을 언론과 르포 기사를 통해 여러 번 보았다.

▲ 남영진 논설고문

그런데 남의 일이 아닌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 9월 12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 밀집지역 부근인 경북 경주 지역에 규모 5.3의 강진이 일어나 서울까지 그 진동이 전해지자 전 국민이 불안해했다. 새해 들어서도 3도 정도의 여진이 계속돼 마음 한구석에 항상 원전 쪽이 찜찜했다.

영동의 ‘레인보우’ 영화관은 지난해 10월 재개관돼 1달여 만에 2만명의 관객이 찾았다. 1970년대 15만명이 살던 영동군은 이농으로 다 도시로 나가고 80년대 들어서는 3분의 1인 5만명까지 줄었다.

여기에 비디오의 등장으로 관객이 줄어 면단위의 극장이 없어지고 유일한 군내 영동영화관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이곳을 군수와 부군수 관사로 썼는데 현 박세복 군수가 2015년 관사를 기증해 아담한 영화관을 지은 것이다.

영화는 예상대로였다. 진도 6.1의 지진으로 울산 원전 인근 마을들이 부서졌지만 주민들은 원전은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지진 여파로 원전 건물에 금이 가고 방사능이 흘러나와 고리 양산 등 인근 주민들이 고속도로를 통해 탈출한다.

급기야 원전이 폭발하고 냉각수가 새어나와 부근에 2차 폭발과 오염 위험이 커져 울산, 부산 등 대도시까지 파급될 상황에 이른다. 현장에서 지휘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원피아’와 양심적인 소장의 대결이 시작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대결도 만만찮다. 젊은 선출 대통령은 인명 피해를 안타까워 하며 애타는 모습이지만 총리를 비롯한 관계 부처 장관, 전력회사 사장은 주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서는 안 된다며 경제논리를 내세워 될 수 있는 대로 상황을 숨기려한다.

급기야 대통령이 “도대체 이 나라는 누가 이끌어가고 있는 겁니까”라며 현장과 직접 화상통화에 나서며 지휘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뉴시스

인근 주민으로 발전소에 다니는 기술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오염 현장에 들어가 결국 한사람의 희생으로 냉각수 폭발을 막는다. 이들은 1차 폭발 후에 오염된 발전소에서 겨우 살아나와 병원에 입원하지만 냉각수 폭발을 막기 위해 다시 들어간다.

이들 중 하나가 머뭇거리는 동료들을 향해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가족들이 다 죽습니다”라고 절규하자 모두 다시 들어간다. 이중 화약 전문가가 마지막 폭탄을 품고 산화하면서 죽는다.

지난해 경주 5.3의 강진은 인근 부산, 울산, 대구는 물론 대전, 경기도 평택, 서울까지 감지될 정도였다. 영화 속의 6.1보다는 작았지만 우리나라 지진 관측 이래 유래 없는 대형 지진이었다. 이후 경주 부근의 여진은 모두 562회나 발생했다. 이중 540회는 규모 3이하였으며 4이상의 지진도 두 차례나 있었다.

정부는 우리 원전의 경우 내진 설계가 진도 6.5~7정도까지의 지진은 견딜 수 있고 특히 영화에서 폭발한 원자력 증기공급 등 주요 구조물은 규모 7.2에서도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6.1의 지진으로 원전 중대 사고는 기술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진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주요안전 계통의 내진 기준을 상향 조정해 2018년 4월까지 완료키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원전은 일본과 달라 가압 경수로의 경우 원자로가 정지되지 않아도 원자로 출력이 제어되는 구조란다. 또 중대 사고로 인해 엄청난 수소가 발생해도 그 평균 농도가 격납 건물에서 전체적인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격납 건물은 사고로 아무리 압력이 증가해도 대형 파손 이전에 누설(Leak)이 발생해 압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폭발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경주 지진의 진앙은 '양산단층'으로 지목됐다. 양산단층은 경북 영덕군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170km 정도 길이의 단층대다. 1등급 단층으로 분류되고 있는 이 양산단층은 1980년대부터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일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경주 지진 이후부터는 이러한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영향권에 경주 울산 양산 부산 등이 들어있다.

▲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뉴시스

문제는 당장 폭발이 아니라도 외부 충격이 누적되면 방사능 누설이나 냉각수 유출 등의 사고로 이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국민 불안감이 고조되자 우리 원전 내진설계 기준은 부지반경 320km 이내의 그간 일어난 지진과 육지 및 해상단층을 조사하여 최대지진 값을 산정한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여기에 안전 여유도를 더해 내진설계 값을 결정한 것이므로 지진 후 폭발우려는 없다고 발표했다.

영화 판도라는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에서 영화사상 두 번째 투자수익 성공사례다. 업계에서도 이를 계기로 영화 분야 펀딩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해 11월 7억원 규모의 펀딩이 됐는데 1월 4일 관객 수 448만 명으로 투자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영화 펀딩 중 투자수익에 성공한 경우는 ‘인천상륙작전’이 유일했다. 이 영화는 관객수 705만 명으로 투자자들은 25.6%의 투자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는 그리스 신화다.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제우스의 경고를 어기고 뚜껑을 열었더니 그 속에서 온갖 재앙이 뛰쳐나와 세상에 퍼지고,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내용이다. 뜻밖의 재앙의 근원을 말하기도 한다.

그 안에 있었던 희망은 빠져나가지 않아 사람들은 상자에서 빠져나온 악들이 자신을 괴롭혀도 희망만은 절대 잃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 원전 폭발이라는 지옥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콘트롤 타워는 붕괴됐지만 항상 떠날 생각만 했던 원전 노동자가 냉각수 폭발을 막는다. 높은 사람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하지만 ‘찌질한’ 노동자가 목숨을 희생하며 사고를 막는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유의 하나가 세월호 참사 때의 행적이다. 불쌍한 309명이 희생됐다. 당시 물살 센 바닷 속에서 구조 중에 숨진 민간잠수사도 있다. 과연 누가 더 애국자이고 희생적인가?

※ 남영진 상임고문은 한국일보 기자와 한국기자협회 회장, 미디어오늘 사장, 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지내는 등 30년 넘게 신문·방송계에 종사한 중견 언론인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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