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김정숙 영남대 국사학과 교수] 한옥은 더불어 사는 마음이 있다. 대문을 꽉 막아 닫지 않고, 개가 드나들 정도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 세심함, 또 먼지를 쓸어서 내보낼 수 있도록 마루턱에 작은 구멍을 내는 마음, 그리고 옹이 박힌 나무라도 제 결을 살려서 지은 집은 자연의 마음 그대로를 드러낸다.

나무도 사람의 팔과 다리처럼 그 굽이에 따라 놓여질 위치가 정해진다고 믿으며, 나무와 흙, 그리고 종이가 대화하며 만든 조화의 공간이 바로 한옥이다.

▲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뉴시스 자료사진

특히 한옥의 문은 마술사였다. 그 크고 작은 많은 수의 문은 한옥 자체를 아름답게 단장할 뿐만 아니라 바로 한옥을 어떤 생활의 경우에도 어울릴 수 있도록 조절해 주고 있다. 공간을 경우에 맞도록 조정하여 큰방, 작은 방으로 변하게 하기도 하고, 환기나 온도를 조절해 주기도 한다.

이제 이런 집은 매우 드물다. 대신 아파트가 대세가 돼 버렸다.

한국인도 처음에는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대구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아파트 매매 가격과 아파트 전세 가격이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아파트 거주 가구의 비율이 전 국민의 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으로 분류하기 시작한 지도 꽤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건축되기 시작하던 시절의 초기에는 대한수자원공사, 주택공사가 아파트 건설을 맡았다. 공공기금과 AID(국제개발처) 차관 등과 같은 미국 자본의 재정 지원과 독일 회사 등 외국 기술자들이 건설 계획에 참여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실행 과정에서 급성장한 대기업들이 뛰어들어 오늘날과 같은 아파트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제는 농촌에까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우리나라 최초 아파트는 1958년 서울 종암동의 5층짜리 아파트 3동이었다. 그때는 연탄난방이었다. 1960년대에도 연탄난방에 승강기가 없는 소형 아파트들이 건설되었다. 이 무렵 마포아파트가 서면서 비로소 단지 안에 아파트 독자적인 관리사무소, 유치원과 놀이터 등이 갖추어졌다.

1971년이 되자 3,000세대가 넘는 서울 한강 북변의 동부이천동 단지가 완공되면서 대단지의 모델을 제시했다. 3년 후에는 부유층을 겨냥한 반포 단지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대단지 아파트 시대의 막이 올랐다. 1977년에는 2만 세대를 수용하는 잠실 초대형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다.

첫 아파트인 종암아파트 낙성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아파트의 현대성과 수세식 화장실의 편리함을 역설했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아파트는 서구식이고 편리한 생활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갔다.

우리의 아파트는 서구인들이 보면 한국형이라고 생각할 만큼 한옥적인 요소를 그대로 옮겨 왔다. 나는 어렸을 때 도봉동에서 의정부로 빠져 나가는 곳에 있던 군인아파트에서 살았다. 13평짜리 연탄난방 아파트였다. 방이 두 칸이었는데, 한 칸은 안방격으로 좀 더 넓었고, 다른 방은 자녀들 방으로 좁았다.

아파트들은 구조만 한옥을 옮기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아파트 내의 생활방식도 서구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바닥 난방을 한다. 그것이 가스보일러라 할지라도 온돌 개념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은 자연히 좌식생활을 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한국인은 대부분 부엌에 식탁을 놓고 살면서도 큰 잔치를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혹은 TV 시청 시 간식을 들때, 주로 방바닥에다 다시 밥상을 놓고 차린다. 물론 웬만하면 바닥에 앉아 이야기한다.

한국 아파트가 서구식 현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가. 한국인들은 한옥에서는 신을 벗고 밥상을 들고 오르내려야 하기에 불편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파트에서는 한국인 스스로 전근대적이어서 불편하다고 하는 밥상 들고 다니거나, 신발 벗고 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어느 외국인이 물었다.

한국의 아파트에는 서로 다른 두 생활문화가 겹치듯이 서로 다른 가구들이 겹치는 현상도 있다. 침대와 식탁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사실 바닥을 덥히는 곳에서는 침대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파트로 들어가면 대부분 침대를 마련한다.

또한 밥상을 들고 다니면서도 식탁은 부엌 쪽에 마련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 아파트란 서구화된 주거이고, 그것은 바로 현대화된 공간이다’는 인식이 만들어진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동선 배치와 건축 자재가 발달한 결과이지, 서구화나 현대화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근래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한옥으로 사무실도 짓고, 호텔도 짓고 있다. 따라서 현재 많은 한국인의 주거형태인 아파트는 한옥과 구별되는 건축물이 아니고 최고의 자재, 최선의 동선을 그려가는 우리 주택의 결과물이라 하겠다.

한국인의 주거양식은 서구식 건물을 그대로 누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 남의 것을 베끼지 말고 우리에 맞는 스타일을 늘 재창조해 나가야 한다. 집은 사람이 쉬는 곳이며, 사람의 의식생활을 좌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파트가 한옥을 끌어안을 때, 한옥이 아파트를 끌어안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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