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 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교수신문>이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지난 12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의 교수 6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2.4%(198명)가 ‘군주민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 김홍국 편집위원

‘군주민수’는 순자(苟子) 왕제(王制)편에 나온다. 원문은 ‘君者舟也 庶人者水也(군자주야 서인자수야). 水則載舟 水則覆舟(수즉재주 수즉복주). 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군이차사위 즉위장언불지의)’로 풀이하면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군주민수’를 추천한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 교수는 “역사를 변화시키고 전진시키는 첫 발은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촛불을 나눠 밝히려는 권리선언으로부터 시작된다”며 “민주공화국의 세상에는 더 이상 무조건 존경받아야 하는 군주도 없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하고도 슬픈 백성도 없다”며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비선 실세와 대통령 자신에 의한 전대미문의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으로 총체적인 국정마비와 부정부패에 빠진 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구하기 위해, 매주말 연인원 892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평화롭게 집회를 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공자가 사용한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와 같은 뜻이다. 중국 고대 역사서인 후한서(後漢書)에서 공자의 말을 인용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정치인들이 민의를 잘 받들어야 함을 강조할 때 사용되곤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2년 서울시정 방향으로 이를 제시하고,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물’을 뜻하는 시민을 언제나 받들겠다는 각오로 시정을 펼치겠다고 설명했다.

군주민수, 역천자망, 노적성해…국정농단 국기문란 상징

교수들은 이어 ‘역천자망(逆天者亡)’을 올해의 두 번째 사자성어로 선택(28.8%, 176명)했다. ‘역천자망’은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로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란 뜻이다. 이를 추천한 고려대 철학과 이승환 교수는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농단은 입헌민주주의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원리를 거스른 일”이라며 추천 이유를 밝혔다.

이어 ‘노적성해’(露積成海·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가 18.5%(113명)의 지지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 이를 추천한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작은 이슬방울들이 모여 창대한 바다를 이루듯, 과거의 낡은 시대를 폐기하고 성숙한 공화정인 2017년으로 나아가는 한국 역사의 큰 길을 촛불 바다가 장엄하게 밝혔다”고 말했다.

▲ 촛불집회에 참가한 부부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건물옥상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을 들어올리고 있다./뉴시스

<교수신문>은 2015년에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의 혼용무도(昏庸無道),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거짓된 세상),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순리를 거슬러 행동하는 것),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깨어있다고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든 처지), 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음), 20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머리는 숨겼지만 꼬리는 숨기지 못하고 드러낸 모습으로, 진실을 숨겨두려고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는 것), 2009년 방기곡경(旁岐曲逕·일을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 2008년 호질기의(護疾忌醫·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꺼려 듣지 않는다) 등을 선정하는 등 사자성어를 통해 우리 현실을 성찰하고 투영해왔다

정치인들 사자성어 활용·DJ 경천애민, YS 대도무문

‘사자성어’는 4개의 한자로 이루어졌으며, 흔히 중국의 역사와 고전, 시가 등 옛 이야기에서 유래해 고사성어(古事成語)라고도 부른다.

사자성어는 주로 중국에서 유래됐으나, 일본이나 서양에서 나오기도 하며 우리말 속담에서 유래되어 한자어로 만들어진 사자성어도 있다. 사자성어는 교훈이나 비유, 상징 등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대화 속에 널리 사용된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붓글씨/전주시청=뉴시스 자료사진

대표적인 사자성어가 자화자찬(自畵自讚), 금시초문(今時初聞), 타산지석(他山之石), 유비무환(有備無患), 십시일반(十匙一飯), 일석이조(一石二鳥), 오비이락(烏飛梨落) 등 다양하다.

사자성어는 현대사회에서 정치인들이 주로 사용한다. 정치 환경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각오 등을 사자성어를 활용해 알리고 정치적 파급력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3김씨는 사자성어를 활용한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천애민(敬天愛民)’,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大道無門)’, 김종필 전 총리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은 당시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회자됐다.

다난흥방(多難興邦, 박희태), 상창난기(上蒼難欺, 정세균), 절전지훈(折箭之訓, 정동영) 등이 정치인들에 의해 사용됐고, 유시유종(有始有終), 출곡천교(出谷遷喬), 동주공제(同舟共濟), 호시마주(虎視馬走), 승풍파랑(乘風破浪), 성윤성공(成允成功), 등고자비(登高自卑), 마부정제(馬不停蹄), 역풍장범(逆風張帆), 도남지익(圖南之翼) 등도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다.

국회 특검 헌재, 총체적 진상규명-처벌-민주주의 회복해야

올해의 사자성어 최종 후보에는 빙공영사(憑公營私(빙공영사·공적인 일을 핑계로 사익을 꾀함), 人衆勝天(인중승천·사람이 많이 모여 힘이 강하면 하늘도 이긴다) 등도 올랐다. ‘빙공영사’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를 담았다. ‘인중승천’도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통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점을 표현했다는 분석이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도무문/뉴시스

교수들은 “군주민수, 역천자망, 노적성해, 빙공영사, 인중승천은 올해 후반기에 불거진 가파른 정국 변화를 꼭 찌른 사자성어들”이라며 “민주주의의 원칙과 재권주민의 의미를 밝혔고, 공적인 일을 빙자해 사익을 챙긴 이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평가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국기문란, 이후 증거은폐와 위증교사 등 추가 범죄에 분노한 민심은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매년 교수 대상 설문조사로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국정시스템 파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모욕감은 매일 거리에 촛불과 횃불을 태우면서도 평화롭고 질서정연한 축제와 같은 집회로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국회 국정조사, 특검, 헌법재판소는 이같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엄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로 국정농단, 국기문란과 관련한 범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고, 파괴된 국정을 정상화시켜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들은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유럽과 미국이 한국의 촛불집회를 본받고 교과서와 같은 모델로 삼을 정도로 높은 국민들의 민주주의 수준과 의식을 고려해 민주주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데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규정한 민주공화국과 주권재민을 실현하는 새로운 도정과 실험을 꼭 성공시켜야 할 것이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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