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범의 경제산책

[이코노뉴스=최성범 주필 겸 대기자]

▲ 최성범 주필

올해 한국경제의 성적표는 한마디로 낙제점이다. 온갖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성장률은 2.6%에 불과했으며, 현대경제연구원의 전망에 따르면 올해 성장률은 당초 목표 3.1%에 훨씬 못 미치는 2.5%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경제 성장률도 2.6%로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과 KDI는 2.7% 내외를 내다보고 있지만 LG경제연구소와 한경련은 2.2%로 전망해 더 비관적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경제활성화를 국가적 과제로 줄곧 내세웠던 걸 생각하면 너무 참담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경제 참담한 성적표…국내외 문제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국내외의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자 한국의 주력 수출시장인 중국은 내수중심, 질적 개선, 경제안정 중시를 골자로 한 신창타이(新常態)를 내세우며 6%대의 중속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유럽은 브렉시트(Brexit)이후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으며, 일본은 경기 침체에서는 벗어나고 있지만 그 회복세는 미약하다.

수출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감소세를 면치 못했고 경기둔화의 주된 요인이 된 것도 대외 여건이 나빠진 영향이다. 미국만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악재다. IMF는 내년도에도 세계 경제 성장률은 3.4%에 그쳐 그 회복세가 극히 미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외 여건은 전체적으로 그다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에선 악재가 하나도 사라지기는커녕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악재가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각종 대책에도 불구, 설비투자는 살아나기는커녕 2016년도에 오히려 전년도 대비 2.5%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설비투자가 감소했으니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부양 시책과 저금리에 힘입어 건설투자가 7.3%나 증가해 그나마 경기가 이 정도라도 버티는 형편이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1300조원에 달하면서 부동산 부양책에 급제동이 걸렸다. 더구나 미국이 저금리 시대 종언을 선언했지만 가계부채라는 덫에 걸려 금리인상을 단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게다가 내수 부진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민가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1.9%에 이어 내년도에도 2.0%로 경제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 살아나지 못하던 민간소비는 하반기 들어 김영란법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의 와중에서 더욱 위축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내년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게다가 조선업 등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고용 사정이 더 악화될 게 뻔하다.

한마디로 대내적으로는 성장 동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계부채에 잡혀 있고 저출산 고령화라는 대형 악재는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구조조정의 부담마저 커졌다. 게다가 정치적 상황마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는 점도 설비투자와 내수 회복의 장애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대외 여건은 여전히 안 좋다.

정부로선 중국경제의 둔화 등 대외적 악재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세월호, 메르스, 김영란법, 탄핵 정국 등 내수 부진을 부추기는 국내 요인이 겹친 탓이어서 백약이 무효라고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정말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 이유가 과연 경기 순환적 요인 탓으로만 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외 경기의 탓이 있긴 해도 한국경제가 갖고 있는 구조적 취약점이 더 문제다. 대외적 요인이 호전된다고 해도 한국경제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우선 중국이 부상하면서 한국의 제조업 기반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이제는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급속도로 빼앗아 가고 있다. 최근 철강과 조선은 이제 중국에 선두자리를 넘겨줬으며 전자와 자동차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도 위협을 받는 등 거의 전 품목이 한마디로 중국의 맹추격에 쫓기는 실정이다.

하지만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경제의 위상이 애매하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한국이 더 이상 후발자(follower)가 아니라 선도자(first mover)가 돼야 할 상황이지만 아직 선도자가 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혁신에 실패한 탓이다.

선도자가 되려면 기술력과 창의와 혁신이 주도하는 경제가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이를 육성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일이 시급하다. 권위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창의와 혁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문화로는 원가경쟁력이 필요한 후발자라면 몰라도 선도자가 되기에 부적합하다. 국가차원의 제4차 산업혁명을 서둘러야 재도약이 가능하다.

둘째, 산업정책 측면에선 성장을 이끌어 나갈 주력산업을 발굴하지 못했다는 게 결정적인 약점이다. 섬유·봉제·신발,  철강·조선· 반도체, 전자·자동차·휴대폰 등 경제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이후 새로운 수출 주력상품을 계속해서 발굴했던 것과는 달리 21세기에 들어서서 새로운 성장 엔진을 발굴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만 했을 뿐이다.

▲ 최근 들어 참담한 성적표만 내고 있는 우리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올해 초 이세돌 9단이 미래먹거리중 한 분야인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바둑대결을 벌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자료사진

그 사이에 세계 산업의 조류는 바이오, 전기차,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으로 완전히 넘어가고 말았지만 한국경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육성하지 못했다. 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드론이나 태양광 산업마저 중국에 빼앗기고 말았다.

과거 IMF 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이 IT산업 육성이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오늘날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어떤 면에선 당연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장황하게 신성장동력 실행 계획을 발표했을 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육성하는 데 실패했다. 국가적 에너지를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결과다.

셋째, 재벌 위주의 경제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경제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재벌 체제는 과거에 자본과 인적자원이 제한돼 있을 때 한국경제의 성장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이젠 그 역할을 다했다. 과거의 재벌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공장을 짓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국경제의 기적을 일궈냈지만 오늘날의 재벌들은 전혀 딴판이다.

설비투자는 안중에 없고 현금을 쌓아 놓고 수성에만 관심을 두는 게 일상화돼 있다. 기껏해야 면세점, 부동산개발 등 소비성 사업에만 관심을 두거나 M&A를 통한 사업재편에만 관심을 두는 게 고작이다. 지난 6월말 현재 10대그룹의 사내 유보금은 무려 550조원에 달하며 거의 매년 50조원 가까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저성장 시대에 맞게 제도 정비하고 경제 구조 혁신해야

대기업들이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투자에는 관심이 없으니 경제가 굴러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는 경제성장률 저하가 설비투자 부진이 결정적이라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결국 재벌 위주의 경제 구조가 과거의 고도성장에는 기여했는지 몰라도 이제는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공정거래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중소기업들의 경제활동을 돕는 동시에 창업이 주도하는 경제로 이행해야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성장 동력의 상실은 과거 성장 모델이 붕괴한 반면 새로운 모델을 만들지는 못한 결과다. 과거와 과감하게 결별하지 않고선 근본적인 경제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사회적 경제적 구조상 이미 잠재성장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활성화를 외쳐 봐야 국민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것일 뿐이다.

저성장 시대에 대비하는 제도를 정비하고 경제 구조를 혁신해야만 앞으로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촛불 혁명도 새로운 틀을 짜라는 의미다.

※ 최성범 주필은 서울경제 금융부장과 법률방송 부사장, 신한금융지주 홍보팀장,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를 지내는 등 언론계 및 학계, 산업 현장에서 실무 능력과 이론을 쌓은 경제전문가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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