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 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9일 국회에서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가 본격적으로 심판 절차에 나서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2일 첫 전체 재판관 평의를 열고 신속하고 공정한 심판 원칙을 밝히는 등 대통령 탄핵 심판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헌재는 9일 국회로부터 소추의결서 정본을 접수한 직후 긴급 재판관회의를 열어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고, 강일원 재판관을 주심으로 선정한 뒤 박 대통령에게 16일까지 답변서 제출을 요구했다.

▲ 김홍국 편집위원

헌재는 12일 회의에서 탄핵 심판 본격화에 앞서 쟁점을 정리·조정하기 위한 준비절차를 위해 수명(受命)재판관 3명을 지정하기로 결정하고, 헌법연구관 20여 명으로 전담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헌재는 현직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재판의 중요성을 고려한 듯 신속성, 신중함, 공정함을 지키기 위해 고심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헌재, 민주적 정당성 원리 따라 ‘헌법·법률 파괴’ 심판해야

헌법 재판은 당초 미국 연방대법원의 사법심사(Judicial review)에서 기원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1803년 마버리 v 매디슨(Marbury v. Madison) 사건에서 사법 심사를 한 이후 전 세계에서 헌법 재판이 일반화되는 추세를 보였고, 오스트리아가 최초의 헌법재판소를 설립한 뒤 세계 각국에서 대법원 또는 헌법재판소가 헌법 재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기원은 제헌헌법이 설치한 헌법위원회다. 헌법위원회는 법률의 위헌여부를 심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1960년 개정 헌법은 헌법재판소를 설치하고, 법률의 위헌 여부, 헌법의 최종적 해석, 국가기관 간의 권한쟁송, 정당의 해산, 탄핵재판, 대통령·대법원장·대법관의 선거에 관한 소송 등을 관할하도록 했다.

1962년 개정 헌법은 법원과 탄핵심판위원회에서 헌법재판권과 탄핵심판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1972년 개정 헌법은 이를 다시 헌법위원회가 담당하게 했다. 1980년 개정 헌법도 헌법위원회를 두고 그 기능을 담당하게 했고, 법원은 명령·규칙심사권과 선거소송에 관한 심사권만을 담당하도록 했다. 현행 1987년 개정 헌법은 헌법위원회를 폐지하고 다시 헌법재판소를 신설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7차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종로구 일대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구속‘ , '헌재도 박근혜 탄핵'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헌법재판은 국가의 입법작용, 행정작용, 재판작용과 다른 제4의 국가작용으로서의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기관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헌재는 이같은 헌법재판의 특성과 법리에 더해 전문성의 원리와 민주적 정당성의 원리가 요구되며, 헌법재판 작용을 통하여 헌법의 최고 규범성을 담보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법기관으로 기능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헌재, 국정마비 최소화하기 위한 신속한 결정 내려야

헌재는 탄핵정국에서 두 가지의 사회적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탄핵안을 가결한 원고 측인 국회와 야당 및 시민사회는 최대한 빠른 결정을 요구하면서 특정 탄핵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그것만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선별 심리’를 압박하고 있다.

반대로 피고인 박 대통령 측은 형사소송법령이 준용되는 만큼 모든 탄핵사유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제2 형사재판’식을 선호한다. 헌재는 이에 대해 헌재법 제30조 명문의 구두변론주의에 따라 탄핵사유의 선별적 심리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심리절차의 신속성을 유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는 국회 소추의결서가 위헌 행위 5개 유형, 위법 행위 4개 범주를 적시하고 있으며, 위반 조항이 헌법 12개 조항, 형법 4개 조항에 이르면서 각 사안의 쟁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언제 내려질지 모르며, 특히 심판이 장기화될 경우 국정마비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헌재의 구성상 박한철 소장과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할 경우 심판 결정마저 어려워질 상황이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한변협 등 법조계에서는 “헌재 소장의 임명권자(대통령)가 사실상 부재한 이상 신임 소장 임명 건으로 또 다른 정국 혼란이 초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헌재는 박한철 소장 임기 만료 전에 조속히 탄핵안을 심판하라”고 성명을 발표하는 등 신속하고 공정한 심판을 요구하고 있다.

▲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뉴시스 자료사진

헌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으로 검찰에 의해 피의자로 지목된 박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과 국정시스템 파괴에 대한 국민들의 엄중한 분노를 인식하고, 국정마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시일내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정치권, 사회 적폐 청산과 민주주의 위한 개혁 나서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에 누적된 불평등, 불공정, 불의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였으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갈망으로 가득한 시민혁명으로 연결됐다.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고, 국민들의 열망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후 민주주의와 정의가 넘치는 나라를 재창조해야 하는 큰 과제에 직면해있다. 대통령의 헌정 파괴로 무너진 민주주의의 회복과 함께 지역주의와 세대 분열에 기대어온 기득권 정치를 탈피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는 커다란 무게감을 갖는다.

기득권 세력이 아닌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시민의 이해가 반영되고 사회적 약자가 참여해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라는 역사적 과제인 것이다. 이번 탄핵은 헌법과 정의와 역사와 미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돼야 하고,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광장민주주의가 제도민주주의로 진화함으로써 새로운 체제,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정치사회적 불평등·불균형 극복 위한 비전·전략 제시해야

대한민국은 사회 전반의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정의의 정신이 실현되는 민주사회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을 방임하고 은폐하는 데 도움을 준 친박 중심의 당정청 시스템, 경제를 왜곡시킨 재벌 위주의 경제시스템, 증거인멸 등을 방치하며 정치적 행보를 보여온 검찰을 비롯한 권력기관, 감시견의 기능을 잃어버린 무기력하고 부정직한 언론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대대적인 개혁에도 나서야 한다.

▲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3차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정치권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를 잠식해온 불평등·불균형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실천에 나서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 확충을 통해 사회적 잠재력을 높이고, 지나친 재벌 유착 경제를 벗어나 서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져 내수경제가 활성화되는 사회적 경제시스템 건설도 이뤄야 할 것이다.

중앙으로의 과도한 권력 및 사회자본의 집중을 막고 지방자치를 활성화함으로써, 권력의 과도한 집중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정치적 불균등·불균형 해소도 주요한 사회적 과제다. 국회의원 선출에서 비례성을 강화하고 주요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 등을 포함한 정치제도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광장의 촛불이 진정한 시민혁명이 되도록 법제도 정비해야

정치권은 바람직한 리더십을 창출하기 위한 대선 경쟁과 더불어 민주사회를 정착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작업에 나서야 한다. 최근 일부 대선 주자들의 내년 대선에만 집착하는 행태는 근시안적이며 정략적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철저한 반성과 개혁이 절실한 상황이다.

승자 독식의 정치, 제왕적 대통령에 의해 주도되는 정치는 권력의 부패와 무한 갈등, 사회적 혼란을 낳곤 했다. 광장의 촛불이 진정한 시민혁명이 되도록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국회 차원에서 개헌을 포함한 국가 시스템의 재편을 공론화하고, 대선 과정에서 실천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탄핵 사태는 독단적인 권위주의적 권력을 사적으로 무소불위의 행태로 휘두르며 나라를 망가뜨린 대통령을 시민이 나서서 탄핵한 시민혁명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역사적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국민의 탄핵을 받은 박 대통령에 대한 심판 절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치권 역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무너진 대한민국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국가로 재건하기 위해 사회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 위대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재건하기 위해 온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 할 절체절명의 시대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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