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뉴스=오용원 한국국학진흥원 자료부장] 인간은 예견된 죽음 앞에서 과연 초연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푸는데 일말의 단서를 제공하는 게 바로 고종일기(考終日記)이다.

고종일기는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죽음에 직면한 고종자(考終者)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기록하여 죽음을 맞는 시공간(時空間)에 그려진 한 인간의 세계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고, 현실적이며 생명력이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그 일기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주위 환경, 죽음을 맞는 태도와 갖가지 행위 등 주위에서 일어나는 온갖 요소들이 구체적이며 사실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 대산 이상정 선생 글씨/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초 8일 병자. (⋯ 선생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 아이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잠을 자고 싶구나.”라고 하셨다. 그래서 미음(粥飮)을 가져오게 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서 조금 드셨다. 다시 물을 가져오게 하셨다. 양치를 하고 수염을 씻은 후에 자리를 바르게 하고 누웠다. 류범휴(柳範休)가 들어가서 병세를 살펴보고 탄식하여 말하기를, “선생의 병세가 점점 위독하여 기력을 회복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아주 어려운 지경인데도 선생의 마음은 안정돼 있고, 기운은 여유가 있으며, 몸은 바르고 얼굴빛은 부드러웠습니다. 천리에 맡기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자신에게 닥친 병적 고통을 알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대명을 가까이 함과 평일에 기른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考終時日記』

인용문은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 선생이 병석에 누운 지 54일째 되던 1781년(정조 5년) 12월 8일 저녁, 하세(下世)하기 바로 전날에 기록한 일기이다.

대산은 ‘소퇴계(小退溪)’라 불릴 만큼 퇴계를 존경했고, 퇴계학을 정립함으로써 이현일(李玄逸, 1627-1704)에서 이재(李栽, 1657-1730)로 이어지는 퇴계학맥의 적통을 이었다. 25세에 대과에 급제했지만, 이내 사직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생을 보냈다.

다음날 9일 아침, 한 시대의 사도(師道)를 자임했던 선생은 병석에 누워 자신의 삶을 정리한 후, 제자와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자신이 살아왔던 삶만큼이나 정연한 모습으로 잠을 자듯 눈을 감았다.

임종을 목전에 둔 한 노학자의 인간적 풍모와 죽음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대산은 시봉(侍奉)

에게 물을 가져오게 해서 양치를 하고 수염을 씻은 후에 잠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세상에 ‘거(去)’라는 말을 던지고 삶을 마무리하였다.

이런 그의 행위들은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기록된 고종자의 태도는 천리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며 생을 마무리하는 순천자(順天者)의 모습이다.

대개 이런 형식의 일기를 ‘고종일기(考終日記)’ 내지는 ‘고종기(考終記)’라고 칭한다. 고종일기는 개인의 생활일기이긴 하지만 뚜렷한 목적성을 지니고 있고, 일기의 구성 요소 측면에서 생활일기와는 일정한 차별성을 갖는다.

이 일기는 죽음을 앞둔 고종자의 일상에만 초점을 맞추어 기록하였기 때문에 기록의 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주위 환경과 행위를 비롯한 내면세계까지도 엿볼 수 있어 연구 자료로서 특장을 지닌다.

죽음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름대로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곤 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맞는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 죽음에 대한 태도를 고종일기보다 더 잘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기의 본질적인 특성이 현실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기록성에 있기 때문이다.

▲ 대산 이상정 선생 문집/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일기류는 근래 학계의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서구 역사학계에서 발원한 생활사 연구 이론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제 우리 학계의 인문학 전반에도 이를 수용하여 생활사 연구에서 일기류 자료는 중요한 텍스트로 주목받게 되었다.

완성된 전모를 갖춘 고종일기는 죽음을 기점으로 전체적인 내용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어나는 제 행위를 기록한 부분과 사후에 행해지는 각종 상장례(喪葬禮) 관련 과정을 기록한 부분이 있다.

이 두 부분을 포괄해서 기록한 일기를 통칭하여‘ 고종일기’라고 명명하지만, 성책 형식을 갖춘 고종일기는 그리 흔치 않다.

그리고 사후에 행해지는 일련의 상장례 관련 과정을 기록한 것을 종천록(終天錄), 애감록(哀感錄), 불망록(不忘錄), 불망기(不忘記)라고 하는데, 이는 일기 형식을 갖추어 날짜별로 기록한 경우도 있지만, 전 과정을 절차별로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인 범례이다.

현존하는 고종일기류 자료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지만, 몇몇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기록자를 밝혀놓았기 때문에 기록자를 알 수 있다.

개인일기는 본인이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고종일기는 고종자의 주위 인물이 기록한다.

특이한 점은 현전하는 고종일기의 대부분이 문인(門人)이 그 기록자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다수의 고종일기가 스승의 죽음을 기록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결국 일기의 내용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나 환경을 기록하는 경우에 가족과 관련된 내용보다는 사제 간의 관계에서 죽음을 맞는 스승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면에서 고종일기는 어쩌면 혈연(血緣) 문화의 한 소산이라기보다는 학연(學緣) 문화의 한 소산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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