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의 정치 시평

[이코노뉴스=김홍국 편집위원] 동양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맹자(孟子)는 인간의 네 가지 본성을 ‘사단’(四端)이라고 했고,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그 네 가지 요소로 들었다.

맹자는 ‘의’(義)를 ‘수오지심’이라고 불렀고, 이를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 김홍국 편집위원

맹자는 제나라에 머물 당시 혹독한 정치를 펼치는 군주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며, “사람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선왕에게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는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는 정치를 행하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을 것이다.”(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 可運之掌上)이라고 설파했다.

맹자가 양혜왕(梁惠王)을 방문했을 때, 양혜왕은 “선생께서는 나에게 어떤 이(利)를 주려고 천리 길을 오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이에 맹자는 “왕께서는 어찌 이를 말씀하십니까? 저에게는 다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맹자의 말처럼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은 옳지못함에 대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인데,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를 망각하고 무분별한 불통과 독선, 부정부패와 국정 농단의 행태를 거침없이 하고 있으며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이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갑작스러운 대국민담화, 정치권 발목잡은 대대적 공세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제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후 브리핑룸을 나서고 있다./뉴시스

지난 11월 26일 전국에서 190만개의 촛불이 활활 타올랐다. 온 국민이 분노한 가운데서도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집회가 열린 데 대해 전 세계는 경이와 감탄의 시선을 보냈다.

<로이터통신>은 “1987년 민주화 항쟁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 중 하나”, 중국 <신화통신>은 “한국 국민이 평화롭고 축제 형태인 집회의 새 장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국무부가 “평화적 시위와 집회에 관한 우리의 입장은 알려져 있다. 전 세계에서 계속 그런 것을 지지해 나갈 것이다. 국민은 정부에 대해 그들의 우려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촛불집회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입장을 표명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집회 참여 인원이 매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국민들의 민심은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과 국기 문란에 대한 분노와 함께 국정을 비선실세인 최순실씨에게 넘긴 채 헌법과 법률을 어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구속 수사를 외치는 등 악화일로에 있다.

이같은 국가 위기의 모든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다. 최순실·안종범·정호성씨의 검찰 공소장은 박 대통령이 국가 공권력을 사유화하고 최씨의 국정 농단을 비호했던 혐의로 가득했고, 박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어긴 공범인 피의자로 규정됐다.

이로 인해 국민적 분노는 높아졌고, 주말마다 수백만명이 서울 도심과 전국 각지에 모여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온 것이다.

이에 대해 답하듯 박 대통령은 29일 전격적인 3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 발표 1시간 전에 갑작스럽게 언론에 알리는 등 사전에 공지되지도 않았고, 질문을 하려는 기자들에게 답변하지 않겠다며 퇴장하는 등 워낙 갑작스러워 정국은 급격하게 출렁거렸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조건부 퇴진 의사를 밝혔다.

부정직하고 노회한 정치공학 승부수, 도리어 더 큰 위기 불러

▲ 대형 풍선에 매달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현수막이 3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 공중에 떠 있다. 이 현수막은 공공비정규직 노조가 아동복지교사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며 설치했다./뉴시스

문제는 박 대통령의 담화가 솔직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자신의 정치공학적인 공세를 통해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승부수라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국정 농단 사건의 공범이며 피의자라는 검찰 조사를 전면 부인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법적 책임을 벗어나겠다는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정치적 측면에서는 여당의 분열을 획책하며 야당의 행보를 저지하는 등 노회한 정치적 수를 던지며, 정국을 혼란 속에 빠뜨렸다.

야당과 여당내 비박계가 함께 추진해온 탄핵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자, 전격적으로 국회에 공을 떠넘기는 음험한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는 정국 수습을 위해 퇴진 입장을 기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또 다른 정치적 변곡점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촛불집회에서 국민들이 요구한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과 국기 문란 사태에 따른 퇴진 문제에 답을 한 것이며,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사퇴하는 문제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이 복잡하게 뒤엉킨 국면으로 진입했다. 자신의 책임을 전면 부인하며, 공을 정치권에 떠넘긴 셈이다.

사퇴 문제는 이번 사태를 자초하고 국민들을 분노케 한 당사자인 박 대통령이 스스로 결단하는 결자해지의 자세로 나가면 끝날 문제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공을 정치권에 떠넘기며, 상황을 혼돈의 미궁 속으로 몰아넣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통과가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에 따라 “탄핵을 해볼 테면 해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가, 탄핵안 통과가 본격화되자 정치권의 전열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교란책을 사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대통령이 현 상황에 대해 억울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우려되는 지점이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었다”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주변을 관리하지 않은 잘못”이라며, 최순실씨와 차은택씨 등의 공소장에서 박 대통령이 이들의 이권 챙기기를 적극적으로 도운 ‘공범’으로 적시한 검찰의 조사 결과를 적극 반박하고 있다.

잇따른 거짓말, 신뢰 잃은 대통령, 국정동력 상실

박 대통령은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조사할 때마다 역대 최저치로 급락하고 있다.

지난 11월 25일 한국갤럽의 11월 4주차 여론조사(11월 22~24일 남녀 유권자 1004명을 상대로 실시. 신뢰수준 95%±3.1%포인트)에서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5%에서 4%로 추락했다.

5%에서 3주간 ‘순간 콘크리트 지지율’을 나타내더니 이마저도 1%포인트 떨어져 김영삼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최저 지지율을 나타냈다. 오차범위를 고려하면 0%나 마찬가지고, 실제로 최근 잇따른 여론조사에서 20대와 30대, 호남 지역에서는 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더구나 여소야대 국면에서 어떤 정책을 추진해도 성과를 낼 수 없고, 행정부의 공무원들을 지휘할 리더십이 완전히 붕괴된 상황이다.

거기다 박 대통령은 연이은 거짓말로 국민들의 불신을 자초했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 담화에서 “검찰의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막상 검찰 수사가 눈앞에 닥치자 “인격살인” “시간이 없다”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

그동안 “일정기간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 “특정 개인의 이권이다.”, “기업들의 선의였다.”,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이며 필요하다면 특검까지 수용하겠다.”,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모두 말이 뒤집히거나 거짓말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대통령의 담화는 감동을 주지 못한 채 실망한 지지층의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탄핵안 저지와 시간끌기가 성공할 경우 박 대통령이 또 다시 말을 번복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만에 하나 국회가 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도 곧바로 거부하는 정치적 공세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는 탄핵 추진, 대통령은 민주주의 원칙 수호 위해 퇴진해야

이같은 교착 상황에서 정치권은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와 무관하게 흔들림 없이 탄핵안을 추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담화로 인해 새누리당의 비박계가 탄핵에 주저하는 등 혼란 상황이 나타나고 있지만, 매주 1백만~2백만명이 촛불을 켜며 민주주의와 정의의 회복을 외치고 있는 광장의 민심을 믿고 치밀하되 단호하게 탄핵에 나서야 한다.

▲ 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시민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뉴시스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로 국민이 부여한 권능을 배신하고 헌법과 법률을 어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켜야 할 필요성은 매우 큰 상황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계속 정치적 술수를 부리고, 국회가 제대로 부정부패와 국정농단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할 경우 촛불은 더욱 거대하게 타오를 것이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와 정의, 평화가 피어오를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대장정에 나서야 할 것이다.

순자는 왕제편(筍子 王制篇)에서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水則載舟 水則覆舟)고 했다. 여기서의 물은 백성 곧 국민들의 민심을 가리키며, 배는 지도자를 가리킨다.

국민들은 주말마다 촛불을 켜고 광장에 운집하고 있다. 화가 난 국민들의 마음이 분노의 불길을 지피도록 해서는 안된다. 정직하게 소통하고 투명하게 국민에게 진실을 고하고, 국민을 섬기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다.

수오지심을 가슴에 안고,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그것이 많은 기회를 준 국민들에게 보답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길인 것이다. 박 대통령과 부정부패한 세력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결단을 기대한다.

※ 김홍국 편집위원은 문화일보 사회부·경제부 기자, 교통방송(TBS) 보도국장을 지냈으며, 경기대 겸임교수(정치학)로 YTN 등 보도 및 종편 TV에서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전문 패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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