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환의 커피로 보는 남자

[이코노뉴스=한창환 춘천커피통 대표] 얼마전 MBC HD TV에서 방영됐던 다큐먼터리 ‘휴먼로드 지구촌 사람들’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일본, 녹차의 향기를 찾아서’ 편은 규슈(九州)의 차밭을 배경으로 농부의 삶의 모습을 섬세하게 엿볼 수 있게 한다.

▲ 한창환 대표/월간 커피앤티 제공

또한 일본 특유의 정갈한 다원 풍경과 옥로차의 제다과정 공정을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제다 환경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늘 그렇듯 수많은 양질의 프로그램이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중파나 몇몇 유명 채널을 제외하고 시청자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워 사장되다시피 내던져진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HD 화질로 제작되었고 일본의 녹차 전반을 이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다큐 프로그램이다.

 

대대로 차밭을 일구는 농사꾼을 따라서

일본에서 녹차는 일상이며 즐거움이고 예술이자 문화다. 규슈 녹차밭 주인인 농사꾼 카즈오 와타나베씨를 따라 녹차 재배와 수확 그리고 제다(製茶) 과정을 엿보는 여정은 그의 정갈한 차밭에서 시작된다.

쓴맛이 없고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준다는 그는 차광막에서 웃자란 찻잎을 수확하는 시기는 차향이 차오르는 때를 아는 농부의 직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즙이 많고 향이 좋을 때 수확을 해야만 하는 이유다. 정성을 들여 재배한 차는 5월 초부터 10여일 만에 수확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꼭대기부터 이파리 3~4까지만 따야 제대로 된 녹차를 얻을 수 있다. 이 모든 작업은 기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찻잎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대대로 차밭을 가꾸어온 카즈오씨가 첫 수확한 잎을 발효가 진행되기 이전에 빠르게 가공공장으로 옮긴다. 녹차의 색을 유지하기 위해 찻잎의 줄기가 구부러질 만큼 30초 정도 증기로 찐다. 그는 유기농 녹차의 선구자다. 진정한 차를 생산하기 위함이다. 가능한 한 자연 상태에서 재배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다 과정은 긴장의 연속이다. 한 순간 방심하면 녹차 특유의 쌀쌀하고 단맛의 균형을 잃기 때문이다. 찐 찻잎은 덖음 과정을 거치면서 풍미가 생겨난다. 녹차 제다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한번 방심하면 돌이킬 수 없다.

▲ 제주도 서귀포 '서귀다원'은 오래된 동백나무와 돌과 녹차밭이 함께 어우러져 제주도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뉴시스 자료사진

이윽고 사찰에서 일본 특유의 다도를 조명하더니 다시 무대는 차밭이다. 카즈오에게 시집온 그의 아내 마즈코는 차밭에서 일하는 게 너무도 싫었다고 고백한다. 갖은 시행착오도 겪었다는 그는 좋은 토양을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 퇴비를 사용해야 한다고 귀띔한다.

흙이 곧 생명 이라는 말이다. 또한 이 일은 삶의 예술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얘기한다.

카즈오는 전통적인 농사기술에 현대적인 농법을 접목시켰다. 화산재로부터 차를 보호하기 위해 차광막을 씌우게 됐지만, 이 차광막을 사용하면 더욱 차 맛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것이 일명 옥로차의 유래다.

노력의 결실과 대물림

가고시마(鹿兒島)의 차 경매시장에서 녹차 경매인들에게 비교적 좋은 가격에 낙찰된 그의 유기농 녹차는 찻잎의 모양과 향과 맛으로 최종 당락이 결정된다. 그렇지만 음료 시장에서 사들이는 녹차는 저렴한 가격이 우선이고 중국에서 들어온 녹차로 차밭 농가가 아우성이다.

대부분 자국 소비가 대부분이지만 외국에서도 경매에 참여한다. 그 경매인 중 티 헌터 폴 코타씨는 향미가 좋은 소규모 농가를 직접 찾아 나선다.

한편, 녹차가공 공장에서는 카즈오와 그의 아들 테츠야 와타나베씨와 충돌이 잦다. 생산 공정을 기계화하면서 너무 복잡한 기계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제 각기 다른 찻잎의 상태가 다르니 그 때마다 제다공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경험과 직관이 우선인 아버지와 기계 전문가인 아들 사이의 갈등이다.

기계로 쉽게 조작을 해서 단순화할 수 있는 공정을 어렵게 한다는 아들의 주장이 맞물린 까닭이다. 아날로그의 감각적 직관과 디지털 제어 방식에 따른 대립으로 아들은 차밭 대물림 생각이 없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차이가 이곳에서도 여전한 모양이다.

일본 노인들이 기억하는 차의 맛

티 헌터인 폴과 카즈오의 조우, 수제 녹차를 음미한 폴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실 일본에서도 가장 오래된 녹차 제조 방법은 우리의 덖음차 제다와 같이 가마솥에 장작불을 때고 찻잎을 넣어 덖는 것이다.

▲ 일본의 다기/구글 이미지 캡처

이것을 재현하는 사람은 노인 몇몇이 고작이다. 덖고 비비기를 7번 정도 해야 좋은 차가 완성된다는 지론을 펼치는 노인들이다. 그들은 요즘 녹차에서는 예전의 맛을 찾을 수 없고 녹차의 참맛을 아는 사람들이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칠팔십 된 노인들이나 녹차의 맛을 제대로 안다며 옛 덖음차를 재현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일본의 녹차가 본래 찐차가 아닌 덖음차였음을 알 수 있다. 높은 온도로 제다를 해야 향기가 풍부해진다는 얘기다.

전통 방법으로 제다한 덖음차로 동네 회관에서 노인들끼리 시음하는 광경이 정겹다.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어디 있냐며 조석으로 즐기는 차가 제격이란다. 건강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를 입증하듯 12년째 녹차의 효능을 연구하는 아뇨 마루타 박사는 몸안에 염증 때문에 생기는 활성산소를 녹차 성분이 제거한다며 혈액 채취 후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 하루에 열잔 정도의 녹차를 마시면 암을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티 헌터인 폴은 여전히 명차를 찾아 나서고 드디어 미국시장에 맞는 녹차를 찾아낸다. 카즈오씨는 차 시장에 내놓을 제다공정 때문에 밤을 새우며 열심이다. 경매가는 최고수준 결과에 만족해한다는

프로그램에서 알 수 있듯 세월에 따라 녹차의 재배와 제다공정은 변한다. 일본의 녹차 제다의 변천 과정을 영상에 고스란히 담아 전달한 본 다큐가 그 가치를 더하는 이유다. 덖음차에서 찐차로 찐차에서 찐덖음차로 녹차의 제다가 묘미를 더해가며 시대에 맞게 변하고 있다. 차 한 잔에 인생을 담아내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에 세상이 정녕 아름다운 것은 아닐런지.

※ 한창환 춘천커피통 대표 약력

- 커피제조회사 (주)에소 대표 역임

- 고려대 평생교육원 '커피마스터과정' 책임교수(2006년)

- (주)스타벅스커피코리아 바리스타 자격검정 심사위원

- 에스프레소 콜리아 바리스타 스쿨 자문위원(2008년~2012년)

- 연세대 미래교육원 우수강사상 수상(2008년, 2010년)

- 엔제리너스 월드바리스타 그랑프리 심사위원(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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