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우의 세상이야기

[이코노뉴스=남경우 대기자]

▲ 남경우 대기자

주역은 실체를 다 드러내지 않고 매번 독자의 고민의 수준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참 모습을 알 수 없다. 그렇다 하여도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적당한 수준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지리산이 한꺼번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과 같다. 노고단에서 보는 지리산과 천왕봉에서 보는 지리산은 하나의 지리산이지만 각 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도 계절에 따라 능선에 따라 계곡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방문객에게 매번 특별한 모습을 선사한다. 각각의 모습에 우열을 정할 수 없다.

이점은 주역도 같다. 같은 해설서도 6개월 전에 본 느낌과 1년 전에 본 느낌이 다르다. 그렇다고 6개월 전에 본 주역과 1년전에 본 주역이 다른 느낌이라 하여 완전히 분리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또 1년 전에 본 주역이 6개월전에 본 주역보다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1년전 주역과 6개월전 주역은 다른 창으로 바라본 주역의 또 다른 모습들일 따름이다.

이런 면은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기초적인 단계를 넘어선 사람들에게 주역에 대한 이해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각자 자신의 눈으로 주역을 해석할 뿐이다. 다양할수록 좋다.

이렇게 다양하고 다면적이며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종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미궁에 빠기기도 한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경문으로 저 멀리 달아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주역의 바다에서 무엇인가 건질게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주역을 집어든다. 이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듯 하다.

▲ 다산 정약용은 1801년(40세)부터 1818년(57세)까지의 강진 유배기 18년 동안 ‘여유당전서’를 집필했다. 사진은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필사본.(실학박물관 소장)

주역사전을 써 주역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던 정약용 선생의 '여유당전서'의 한 대목을 보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정헌 이가환 선생과 주역에 대해 문답했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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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내가 정헌 이가환(貞軒 李家煥)에게 물었다. “다른 경서는 대략 이해가 되는데 주역만은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 하면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주역에 대해서는 이미 알 수 없는 것으로 판정을 내렸네. 죽을 때까지 서로 논의하지 않도록 하세.”

“성호 이익 선생의 주역 연구서『역경질서(易經疾書)』는 어떻습니까?”

“우리 집안의 책이라 일찍부터 친숙하게 보았지만 주역 자체는 알지 못하겠네.”

“성호 선생 학파의 출중한 학자인 정산 이승휴의 주역 연구서『심해(心解)』는 어떻습니까?”

“이 책으로도 주역은 알지 못하겠네.”

“중국의 유명한 학자 내지덕의 명저『주역집주(周易集注)』는 어떻습니까?”

“주역은 알 수 없네.”

“원나라 때 이름난 학자 오징의 명저『역찬언(易纂言)』은 어떻습니까?”

“알 수 없네.”

“송나라 때 주역으로 이름난 학자 주진의 명저『한상역전(漢上易傳)』은 어떻습니까?”

“알 수 없네.”

“당나라 때 주역으로 이름난 학자 이정조의 명저『주역집해(周易集解)』는 어떻습니까?”

“조금 낫지만 여전히 알 수 없었네.”

정헌공(貞軒公)은 이어서 스스로 여러 학자들의 주역 이론을 열거하며 이야기하고는 ‘모두 보아도 주역은 알지 못하겠더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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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환은 학식이 대단하여 다산이 존경해 마지 않았던 선비였다고 한다. 또 위에 거론된 주역 연구서들은 주역에 관한 명저들이었다고 한다. 정약용과 이가환 모두 명저들을 끊임없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역이 무엇인가에 대해 알 수 없는 경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산은 또 주역연구에 빠져들어 장장 10여년 이상 매달려 그 유명한 '주역사전'을 남긴다.

이렇듯 주역은 무엇인가 그 실체를 드러내다가도 또 시간이 흐르면 그 실체가 무엇인지 사라지기도 한다. 이럴 즈음이면 주역을 손에 놓게 된다. 필자는 이때 소주역이라 불리우는 중용을 들척이거나 도덕경을 손에 쥐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주역 경문을 붙잡고 주역의 바다로 들어간다. 이게 매력이다.

※ 남경우 대기자는 내일신문 경제팀장과 상무, 뉴스1 전무를 지냈으며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연구 모임인 북촌학당에 참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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